깊은 계곡을 지키는 천년의 소나무는 껍질마다 켜켜이 세월을 담고 있었다. 굽은 소나무 사이에서 불어오는 솔 향도 짙었다. 코끝이 상쾌했다. 소나무 등걸 사이로 맑은 물이 비단 폭 쏟아지듯 하얗게 부서져 내리고 휘돌아 흐르는 물과 너른 너럭바위가 탁 트여 시원한 곳, 바로 내포(內浦) 땅의 가야산(伽倻山) 옥병계(玉屛溪)다. 이곳은 수성봉(壽星峯), 나무꾼들이 꼭 거쳐 가야 하는 곳이기도 했다.
“동부 따는 큰 애기야, 머리끝에 드린 댕기, 공단(貢緞)인가 대단(大緞)인가? 공단이건 나 좀 주게. 뭐하려고 그러는가? 망건탕건(網巾宕巾) 꿰어 쓰고, 자네 집에 장가갈세.”
봉이는 오늘도 제 흥에 겨워 총각타령을 구성지게 읊어댔다. 지게다리를 두드려서는 장단도 맞춰댔다.
“장갈랑은 오소 마는 눈이 올 제 오지 말게. 우산 갓모 걸 데 없네.”
봉이의 구성진 총각타령이 한 고개를 넘는 순간, 작대기 장단이 문득 뚝 끊겼다. 그리고는 고요가 그 자리를 꿰어 찼다.
봉이의 눈이 한 곳을 주시한 채 움직일 줄을 몰랐다.
“저게 뭐여?”
봉이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작대기를 잡은 손이 살짝 떨리기까지 했다.
“사람아녀?”
봉이의 눈이 커지며 몸이 떨렸다. 옥병계 너럭바위 옆으로 가래나무에 사람이 매달려있기 때문이었다. 봉이는 조심조심 걸음을 내딛었다. 이어 화들짝 놀라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옥병계 깊은 계곡을 부리나케 내달리기 시작했다. 놀란 봉이를 따라 계곡의 맑은 물도 하얀 포말을 뒤로 한 채 우당탕탕 요란스레 뒤쫓았다.
멀리 가야봉 언저리에서 기분 나쁜 까마귀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때 아닌 바람이 차게도 느껴졌다. 살갗에 오소소 소름까지 돋았다.
옥병계 너럭바위에는 덕산현감 김사기와 이방 박봉필 그리고 약포 김노인이 당황한 눈빛으로 가래나무 가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빨리 내려라!”
이방 박봉필의 재촉에 관노 칠갑이 형제가 바지를 걷고는 가래나무 아래로 다가섰다. 푸른 기를 머금은 맑은 물위로 휘영청 굽은 가래나무 가지가 있는 곳이었다.
가래나무 가지 아래로 새끼줄에 목을 맨 시신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흰 빛이 도는 얼굴에 늘어진 혀, 불쑥하니 튀어나온 눈은 보기에도 끔찍한 모습이었다. 현감 김사기는 연신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고 이방 박봉필은 못 볼 것을 보았다는 듯 얼굴이 진상이다. 약포 김노인만이 요리조리 둘레거리며 시신을 살폈다.
“나리, 천호방이 목을 매다니 뭔가 이상합니다.”
이방 박봉필의 말에 현감 김사기는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얼굴빛이 흰 것이 아무래도 시쳉인 것 같습니다.”
“시쳉이라?”
시쳉이란 말에 이방 박봉필이 혼잣말 하듯이 되물었다. 현감 김사기는 김노인을 바라보았다. 김노인은 고개만 까닥거려 대답을 대신했다. 잠시 침묵이 스산하게 휘감았다.
시쳉, 살해된 후 목매달아 자살로 위장된 시신을 말한다.
칠갑이와 철갑이 형제는 물 아래에서 호방 천호석의 시신을 끌어내렸다. 고개를 외로 돌린 채 시신을 껴안은 칠갑이와 새끼줄을 끊는 철갑이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호방 천호석의 시신은 새끼줄에서 풀려나자 이내 축 늘어졌다. 칠갑이 형제는 기겁을 하며 시신을 부둥켜안았다.
“조심해라, 이것들아! 물에 빠뜨리면 안 돼.”
약포 김노인의 호통에 칠갑이가 기우뚱한 호방 천호석의 시신을 번쩍 들어올렸다. 철갑이도 힘껏 들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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