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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아래 숨어있던 ‘유구한 역사’가 살아나다

<역사로 보는 우리고장> 청동기시대 주거지, 초기철기시대 토광묘 등 유물 출토

2015.10.06(화) 19:35:00충남포커스(jmhshr@hanmail.net)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의 허가를 받아 (재)충청문화재연구원(원장 박영복)이 발굴조사 중인 충남 서산시 동문동 765-1번지 일원 주택재개발 정비사업부지 내 유적에 대한 현장설명회가 지난 2일 오후 3시 발굴현장에서 개최됐다.

▲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의 허가를 받아 (재)충청문화재연구원(원장 박영복)이 발굴조사 중인 충남 서산시 동문동 765-1번지 일원 주택재개발 정비사업부지 내 유적에 대한 현장설명회가 지난 2일 오후 3시 발굴현장에서 개최됐다.

발아래 숨어있던 ‘유구한 역사’가 살아나다 사진

발아래 숨어있던 ‘유구한 역사’가 살아나다 사진


 


서산지역이 청동기시대부터 역사적으로 상당히 중요지역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역사유물이 출토됐다.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의 허가를 받아 (재)충청문화재연구원(원장 박영복)이 발굴조사 중인 충남 서산시 동문동 765-1번지 일원 주택재개발 정비사업부지 내 유적에 대한 현장설명회가 지난 2일 오후 3시 발굴현장에서 개최됐다.

발굴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주거지 1기, 초기철기시대 토광묘 1기, 조선시대 주거지 1기·수혈유구 2기 등 총 5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한성필하우스아파트 공사장 부지 내에서 진행된 이번 발굴조사에서 가장 주목되는 점은 초기철기시대 토광묘 1기가 확인되었다는 점이다.

조사단에 의하면 토광묘는 표토 및 현대 교란층을 제거하자 흑갈색 사질점토가 채워진 유구의 윤곽선이 확인되었다. 토광묘는 적갈색 풍화암반토를 기반으로 조영되었으며, 내부토의 토층분석결과 목관부식토가 확인되어 목관을 사용했음이 밝혀졌다. 벽면은 수직에 가깝게 굴착하였으며, 바닥은 별다른 시설 없이 생토면을 정지하여 사용하였다.

묘광은 장축(남-북 방향)이 등고선과 직교하며 평면 형태는 세장방형으로 규모는 길이 240cm, 너비 84cm, 잔존깊이 58cm이다. 목관의 규모는 길이 212cm, 너비 46cm이다. 유물은 목관 내부에서 세형동검 1점과 세형동검의 부속구인 검파두식 1점과 검초하부 연결금구 1점, 철사 1점, 흑도장경호 1점이 출토되었다.

그리고 목관과 묘광 사이에서 동과 및 주조철부 각 1점, 묘광 바닥에서 석촉 1점 등 총 8점이 출토되었다. 세형동검은 검 끝이 구릉 위쪽인 북쪽을 향하며, 동과와 주조철부는 끝이 묘광 하부를 향해 거의 수직으로 서 있는 상태로 출토되었다. 이로보아 피장자의 머리는 구릉 하부인 남쪽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청동기시대부터 서산지역의 중요성 입증

토광묘에서 출토된 세형동검과 동과의 형태는 당진 소소리 유적에서 확인된 세형동검과 동과와 유사하며, 주조철부와 철사는 장수 남양리 유적에서 출토된 것과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를 통해 금번에 조사된 초기철기시대 토광묘는 초기철기시대 후기인 기원전 2세기경에 해당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동검은 전기의 요령식동검(遼寧式銅劍, 또는 비파형·만주식 동검)과 후기(또는 초기철기시대)의 세형동검(細形銅劍)으로 대별된다.

요령식동검은 창(槍)과 같은 상반부와 거기서 일단 좁아졌다가 다시 볼록하게 아래로 퍼지는 비파와 같은 특이한 형태로 밑에는 짧은 슴베[莖部]가 달려 있다. 자루[柄]는 나무·뼈 또는 청동으로 따로 만들어서 끈으로 묶어 맨다. 이것은 대부분 요령지방에서 발견되어 그렇게 불리나 최근에는 평양 서포동, 황해도 금곡동, 부여 송국리, 창원 등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서기전 300년경부터 서기전후까지에 해당되는 청동기 후기에는 요령식 동검과는 형식이 다른 세형동검과 잔무늬거울[精文式細文鏡]이 나타난다.

세형동검은 평양지방을 중심으로 하는 한반도 전역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한국형 동검으로 불린다. 그런데 세형동검은 요령식 동검의 하반부가 길어지고 칼자루가 없으며 허리 양쪽의 팸이 형식상으로 남아 있어 요령식 동검의 영향을 시사해준다. 세형동검의 형식은 두 가지로 분류되어, 검신 등대[背脊]의 모가 허리[缺入部]에서 끝나는 Ⅰ식과 슴베 바로 위까지 더 내려온 Ⅱ식으로 나뉜다.

Ⅰ식은 서기전 4세기 말∼서기전 3세기 초·2세기 중엽, Ⅱ식은 서기전 2세기 후반∼서기 1세기 말경에 속한 것으로 추정된다. Ⅰ식 단계의 검은 기능상 실용적이나 백동질이어서 부러지기 쉽다. Ⅱ식 단계의 검은 칼끝[鋒部]이 길고 의기적인 칼집장식과 마형(馬形)·안테나식[鳥形] 등의 칼자루장식이 나타난다. 이 검은 처음부터 신분의 상징 또는 의기적인 면이 강한 것으로 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세형동검은 남한 전역에 걸쳐 고루 분포한다. 그러나 최근 예외적이기는 하지만 요하(遼河)유역의 심양현(瀋陽縣) 정가와자(鄭家窪子)에도 그 존재가 알려지고 있다.

또한, 초기철기시대 토광묘는 서산지역에서는 서산 예천동 유적에 이어 두 번째로 확인되었으며, 서산지역의 초기철기시대 문화양상을 파악하는데 있어 학술적으로 그 가치가 크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토광묘는 당진 소소리 유적, 예산 동서리 유적, 아산 남성리 유적, 대전 괴정동 유적, 대전 궁동 유적, 대전 보문산성 유적, 부여 합송리 유적, 보령 교성리 유적, 보령 관창리 유적, 금산 수당리 유적, 청양 분향리 유적, 서천 봉선리 유적 등과 더불어 서산지역 뿐만 아니라 호서지역 초기철기시대 문화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판단된다. 또한 토광묘 내에 각종 무기류를 포함한 위세품들이 다량으로 부장되고 있는데, 이러한 양상은 초기철기시대 사회가 이미 상당한 권력을 소지한 유력자에 의해 통솔되는 권역이 존재하는 사회라는 점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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