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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에는 마침표가 없다

2015.06.04(목) 03:37:36홍경석(casj007@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할머니~ 언능 와유! 그렇잖아두 젖이 불어서 죽을 지경이었는디 마침맞게 잘 오셨네유!” 20대 중반의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새댁은 할머니를 보자마자 마치 불원천리 딸을 찾아온 친정어머니를 대하듯 그리 반가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차피 일부러라도 젖을 짜야만 퉁퉁 불어터진, 그래서 다시 도진 젖몸살을 그나마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할머니 또한 그 맘씨 고운 아낙이 눈물 나게 고마웠음은 당연지사였다.
 
심청의 동냥젖만큼이나 젖이 간절했던 대상이 바로 할머니였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자신의 등 뒤에 포대기로 업은 아기를 앞으로 뱅글 돌렸다. 그리곤 끈을 푼 뒤 추워서 홍시처럼 얼굴이 붉어진 아기의 뺨부터 어루만졌다.
 
“어이구~ 불쌍한 내 새끼. 배가 많이 고팠지? 저 천사 같은 아줌마가 젖을 또 준다니께 어서 먹어! 배가 터지도록 말여.” 할머니의 차가운 손이 닿는 촉감에 금세 눈을 뜬 아기는 목이 터져라 울어댔다. 그러한 아기였으되 눈동자 하나만큼은 흡사 샛별처럼 그렇게 반짝거렸다.
 
한 시가 급했던 아낙은 할머니에게서 아기를 빼앗듯 낚아챘다. 그리곤 냉큼 아기의 입을 자신의 젖꼭지에 갖다 댔다. 아기는 숨 쉴 틈도 없이 그 아낙의 넘치는 젖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아기의 젖을 빠는 힘은 어찌나 셌던지 아낙은 마치 자신의 젖이 구멍 난 하수도 아래로 터진 수돗물이 콸콸 일거에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여하튼 자신의 퉁퉁 불었던 젖을 아기가 걸신들린 거지인 양 마구 쪽쪽 빨아대자 아낙은 차라리 전율과도 같은 희열마저 속일 수 없었다.
 
그럼 그 젊은 아낙은 왜 자신의 젖을 피 한 방울조차 섞이지 않은 이웃집 할머니의 아기에게 선뜻 먹였던 것일까? 그러니까 그들의 정체는 먼저, 당시에 동냥젖이 절실했던 그 아기는 바로 나의 지난날이었다.
 
또한 그 아낙은 실로 불행하고 애석하게도 자신이 낳은 아기가 생후 얼마 되지도 않아 그만 저 세상으로 떠나고 말았단다. 이는 물론 할머니로부터 후일에 전해들은 얘기임을 밝힌다. 현재와 달리 과거엔 그처럼 갓난아기가 죽는 일도 잦았다고 한다.
 
어쨌든 그 같이 참으로 고마웠던 그야말로 천우신조의 천사표 마음씨를 지닌 젊은 아낙 덕분에 엄마가 없었던 나였지만 거뜬히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같은 동네서 사는 아낙에게서 동냥젖까지를 구해 엄마도 버린 핏덩이였던 나를 친손자 이상으로 길러주신 할머니는 약 40여 년 전에 타계하셨다.
 
그렇지만 지금도 그 할머니를 결코 잊을 수 없는 건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도 깊은 은혜 때문이다. 더욱이 따지고 보면 그 할머니는 내게 있어 친할머니도, 또한 외할머니도 아닌 유모할머니셨었다. 가끔 입맛이 없을 때면 수제비를 만들어 먹든가 사 먹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옛날 할머니가 끓여주셨던 그 수제비의 맛은 영 느낄 방도가 없다.
 
헌데 그건 현재의 수제비엔 할머니의 손맛과 함께 흔흔한 손자 사랑의 양념마저 빠진 때문이지 싶다. 너무도 없이 살았기에 설날과 추석이 되어도 떡국과 송편, 그리고 쌀밥을 맘대로 먹을 수 없었던 참으로 고단했던 시절이었다.
 
그 같이 가난의 극점에서 살았으되 할머니께서는 언제나 이처럼 당부하셨다. "너는 부모 복은 못 받고 태어난 놈이다만 그러나 하늘은 공평한 법이여. 그러니께 앞으로도 착하게만 살어. 그럼 이담엔 반드시 다른 복이 네게도 찾아올 거니께."
 
할머니의 그러한 예언은 맞아 떨어졌다. 지금 내 곁엔 여전히 사랑하는 아내와 미루나무처럼 올려다봐야 할 듬직한 아들,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딸이 있으니 말이다. 또한 이들 가족은 오늘도 내가 이 세상을 더욱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당위성의 모체이다.
 
어느새 또 머리가 반백이 되었기에 염색을 시작했다. 거울을 보며 염색약을 바른다. 그러나 잠시 까맣게 만든 머리카락도 불과 보름만 지나면 다시 또 백발로 바뀌리라. 그러나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변화가 없을 것이다. 그리움에는 마침표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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