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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에 숨겨진 천년의 고찰 보석사

영천암

2014.10.30(목) 17:20:17맛난음식(linecplan@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금산에 가면 다른것보다 더 유명한 은행나무가 심어져 있는 보석사라는 사찰이 있습니다.

은행나무가 있을것 같지 않았던 그곳을 찾아가보니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고 사찰이 크지는 않지만 아늑한 느낌이 드는 곳이였습니다.

보석사는 천년의 고찰이며 은행나무의 은행을 간직하고 있으면 무병장수한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은행나무가 심어져 있는곳을 거닐어봅니다.

보석사일주문

▲ 보석사일주문

주차장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이렇게 보석사의 일주문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가을이라서 그런지 더욱더 정감있어보이는 느낌이 듭니다.
저 일주문을 통해 보이는 숲길이 새로운 세상을 열어줄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부처의 세계 혹은 깨달음 그런것을 느낄 수 있을것 같네요.

전나무길

▲ 전나무길


자갈길을 지나면 가을의 느낌을 제대로 전달하는 낙옆에 수북히 쌓여있는 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곳의 해우소에는 다불유시라는 팻말이 걸려져 있는데 시간이 있기는 하지만 많지는 않다는 말입니다. 정말 그런것 같습니다.

보석사 언덕길

▲ 보석사 언덕길


천천히 걸어서 올라가봅니다. 이곳 보석사는 금산에서 모두 전사했던 700의총의 주인공 승병장 영규 대사가 머물렀던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갑사에서 일어나 왜군에게 짓밟힌 조선을 구하기 위해 나섰던 인물 영규 대사

조구대사가 창건한 보석사

▲ 조구대사가 창건한 보석사


885년 조구대사가 창건했던 신라시대의 사찰이였지만 임진왜란때 모두 불에 타버려서 보석사지라고 불릴 수도 있었던 곳이였습니다.
이후 명성왕후가 이곳을 다시 창건해서 지금의 보석사를 만들어놓았습니다.

보석사로 들어가는길

▲ 보석사로 들어가는길


우스개소리로 보석사는 보석이 많이 나왔던 곳이라서 그런가 했는데 실제로 보석이 연관이 되어 있더군요.
절 앞산에서 캐낸 금으로 불상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런 절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문화재자료 18호

▲ 문화재자료 18호




충남 금산군 남이면 석동리에 위치한 보석사는 문화재자료 제 18호로 지정이 되어 있습니다.
보석사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은행나무는 나라에 큰 일이 있을때 소리를 내어서 대비하도록 알려주는 마을의 수호신으로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범종루

▲ 범종루


가을의 정취를 물씬 머금은 보석사는 아담하고 정갈하면서도 편안함을 간직한 사찰입니다.
보석사를 둘러보려면 이 범종루를 거쳐 들어가야 합니다.

은행나무대신제

▲ 은행나무대신제



이곳은 금산의 은행나무대신제가 단오일에 개최되기도 합니다. 소원을 올리는 소지올리기와 목신제 절올리기 행사등을 진행한다고 하네요.

보석사의 불상

▲ 보석사의 불상


대웅전에 위치한 불상의 모습이 무언가 앙징맞아 보입니다.

영규대사의 흔적

▲ 영규대사의 흔적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경내를 둘러보니 아늑한 사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곳 대웅전 앞에는 영규 대사가 거처하던 의선각이 자리잡고 있는데 지금은 요사채로 쓰이고 있습니다.


보석사의 가을

▲ 보석사의 가을


천연기념물 365호로 지정되어 있는 천년이 넘는 세월을 간직한 은행나무, 영규대사 영정을 모신 진영각, 의병승장비, 보석사와 같은 시기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이 암자의 이름은 영천암입니다. 이 모든것이 자그마한 사찰 보석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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