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전체기사

전체기사

충남넷 미디어 > 소통 > 전체기사

[사람향기] 수학여행

2014.10.22(수) 16:27:05충남포커스(jmhshr@hanmail.net)

밤새도록 비가 내렸는지 창문마다 한때 유행했던 물방울 무늬 옷들이 모조리 입혀졌습니다. 잔잔한 빗소리를 감상하는데 눈치 없이 알람이 일찌감치 울려댑니다. 오늘은 큰아들눔이 수학여행을 가는 날입니다.

동갑내기 친구들이 사고를 당한 후 1학기에 예정되었던 수학여행이 일제히 중단돼 아쉬워했는데, 부모님들에게 의견을 수렴하여 70%의 동의를 얻어내고 결국 수학여행을 가기로 결정한 날, 등치가 산만한 녀석이 어린아이처럼 폴짝 뛰며 ‘오~예!’를 외쳐대며 좋아했습니다. 어렵게 장만한 우리집이 꺼지는 줄 알았습니다. 이해 못할 리 없습니다. 우리도 그랬으니까요.

녀석은 전날 밤 콧노래를 부르며 이것 저것 짐을 챙겨놓고, 게임도 일제히 중단하고 기꺼이 일찌감치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과 정반대로 다른 한 분이 늦은 밤까지 잠을 못 이루고 있었습니다. 밤 11시가 다 되어 문자가 한통 도착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담임입니다. 우선 늦은 밤 문자를 드려 매우 죄송합니다. 즐거운 수학여행을 앞두고 있지만 올해 세월호 사건을 비롯해 많은 여러 가지 사고가 많아 제주도로 자녀들을 보내는 부모님들 마음이 편치 않으시리라 생각됩니다. 아무런 탈 없이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도록 담임인 제가 책임지고 인솔하여 무사히 집에 도착할 수 있도록 할테니 너무 걱정 안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편안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녀석들, 선생님 마음을 알기나 할까......’

“틈 나는 대로 연락하고, 친구들하고 예쁜 추억 많이 만들고 와. 엄마는 수학여행 가서 모닥불 피워 놓고 우리 반 대표로 노래했던 것이 다 추억이 됐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있지만 속내는 우비를 입고 떠나는 녀석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때까지 긴장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보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할 여지없이 기꺼이 찬성표에 동그라미를 그린 것은 수학여행은 선생님과, 친구들과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만들 수 없는 값진 추억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음료수, 네가 선생님께 전해드려. 난 쑥스러워서....”
설악산을 향해 수학여행버스가 앞 유리에 번호를 달고 줄을 지어 이동하던 길, 잠시 머문 휴게소에서 음료수 한 병을 내밀며 같은 반 친구가 부탁합니다. 음료수를 직접 드리지도 못할 만큼 가슴 떨리도록 선생님을 좋아한 것 같습니다. 남선생님이었으면 이해가 가고도 남았을텐데 여선생님을 향한 여제자의 그 마음, “대체 뭐여?” 그때는 도통 이해할 수 없었는데 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워낙 쑥스러워 하던 그 친구, 지금은 연락이 되지 않지만 아마 어른 되어서도 몰래 짝사랑 하면서 애 깨나 태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 친구가 여행 내내 음료수를 전달해 달라고 하는 바람에 정작 내 돈 들여 선생님께 음료수 하나 못 사드린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버스 안에서, 또 유적지를 돌아보면서 친구와 나눈 깊은 이야기들. 몸살 나신 선생님 팔다리에 서로 하겠다고 매달려 안마해드린 일, 일찍 잠든 친구 얼굴에 매직으로 그야말로 ‘매직’을 연출 한 일, 옆 반 선생님 얼굴이 아이들 장난으로 치약독이 올라 붉어져 울상지으시던 일, 철 없이 그 모습이 우습다고 까르르 뒤로 넘어가도록 웃어제끼던 일.

지금은 금지 되었지만 그때는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노래 못 부르면 서러워 살 수 없는 시절이었습니다. 그때는 부끄러움도 모르고 열 번 시키면 열 번 마다 않고 노래하며 주름잡았습니다. 그래도 그 시절, ‘잘한다’며 엄지를 치켜 세우던 선생님과 친구들 덕분에 참 내성적이고 말도 없던 아이가 적극적인 아이로 바뀌었습니다.

“내가 너를 몰라? 너 수학여행 가서 주현미 노래도 하고 이선희 노래도 하고, 그 뭐냐 조미미 노래도 하고 그랬잖아.”

같은 반이 아니었는데도 수학여행 덕분에 나를 기억해주는 친구가 있습니다. 적잖은 세월이 흘렀는데 노래 제목까지 기억합니다. ‘울면서 후회하네’ ‘나 항상 그대를’

우리 아이들, 버스 안에서의 풍경은 우리 때와 참 많이 다르겠지요. 모름지기 100% 스마트폰 부여잡고 가겠지요. 이런 삭막함이 삭막함인 줄도 모르는 이 아이들에게, 어른 되어 되짚어 보며 웃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추억이라도 남는 수학여행이 되길 기도해봅니다.



제4유형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