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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황에서 아버지였더라면?

고향생각

2014.05.17(토) 01:52:56조연용(whdydtnr71@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여지없이 늦잠을 잤다. 오랜만에 즐기는 늦잠의 달콤함에는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어젯밤 취침 시간이 새벽 3시를 넘겼으니 늦잠을 잘 만도 하다.

최근 내 생활리듬을 돌이켜 보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런 저런 아르바이트로 분주하다가 저녁에는 한국어교원 2급 인터넷 강의 듣기, 그리고 리포트 쓰기가 이어진다. 하루가 엄청 짧다는 생각을 하는 사이 올 한해도 5월의 중턱에 닿아 있다.

그런데 어젯밤에는 강의도 잘 안 들어오고 리포트도 쓸 마음이 안 들어서 취업 싸이트를 뒤적였다. 그러다가 부여군에서 사회복지사를 구하는 곳이 있나 싶어 뒤지다가 익숙한 곳을 발견했다. 바로 내 고향 면소재지에 있는 요양기관이었다.

사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홀로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마음에 쓰였다. 그리고 또 나도 혼자이다 보니 차라리 고향으로 돌아가서 엄마와 같이 지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가만 생각해보면 어머니가 앞으로 살면 얼마나 더 사실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아버지 돌아가신 뒤로는 가능하면 하루에 한 번씩은 꼭 어머니와 통화를 해야겠다고 마음먹는데 그 조차도 잘 실천에 옮겨지지 않는다. 다행인 것은 예전에 비해 전화는 자주 하는 편이다.

저녁에 혼자 Tv 드라마에 마음을 주고 있던 어머니는 내가 전화를 할 때 마다 그날그날 있었던 일들을 속사포처럼 쏟아내신다. 그러면서 내가 딸 하나 안 낳았으면 어쩔 뻔 했니. 이렇게 너하고 얘기라도 하면서 사니까 좋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는 이런 말씀을 하신다.
 
“내가 늙어서 갈 곳이 어디가 있겠니? 우리 며느리들은 나 데리고 살 사람 없을 것 같다. 이대로 조금 더 살다가 혼자 거동 못하면 요양원에 보내달라고 해야 겄다”
 
“엄마 걱정하지 마셔. 엄마가 요양원 들어가시면 내가 그 요양원에 취직해서 엄마 돌봐 드릴께. 그래서 사회복지사 공부한 거예요”
 
내 말이 어머니께 얼마의 위안이 되었을까? 솔직히 내가 모시고 살겠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어머니하고 같이 살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부여군에 있는 직장을 찾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건 무슨 또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그래도 시골 면소재지 치고는 나름 괜찮은 근무조건을 내걸고 있었는데 왜 하필 우리 집안과 악연으로 역인 곳이란 말인가? 그러니까 평생 새마을지도자와 이장으로 마을 일을 도맡아 하셨던 우리 아버지가 느지막이 찾은 직장이 바로 고향 마을에 새로 들어선 요양원이었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셨는데 결국에는 그 요양원 회장의 꼬임에 넘어가 보증을 섰고 그 결과 우리 집은 대대손손 장남에게 내려오던 전답과 집을 한 방에 다 날리게 되었다. 결국 아버지는 보증 문제로 속을 끓이셨을 테고 마지막까지 당신의 병원비를 걱정하다가 눈을 감으셨다.

항상 늘 더 많이 믿고 더 많이 사랑한 사람이 당하는 것이 이 세상의 이치라는 것을 아버지는 평생 모르고 사셨다. 그래서 일명 보증 전문가라는 별명까지 얻으셨으니 사람 잘 믿는 아버지의 성품을 어떻게 탓할 수 있으랴.

하긴 돌아가신 아버지가 일 년에 한 번씩 자식들을 호출 하는 일도 있다. 바로 아버지가 요양원에 선 보증으로 생긴 채무가 전 재산을 다 들어 바치고도 탕감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 상속포기각서를 작성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사돈에 팔촌까지 줄줄이 다 작성해야 하는 상속포기가 복잡했던 관계로 ‘한정승인상속포기’를 채택했다.

그 결과 지금도 일 년에 한 번씩 변호사 사무실에 가서 채무자와 채권자 면담을 해야 된다. 아무튼 이렇게 우리 집안과 악연으로 엮인 곳인데 아무리 어머니 곁으로 가고 싶다고 한들 선뜻 지원서류를 낼 수는 없는 일.

그 요양원에서 낸 구인광고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절대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곳인데 왠지 모를 반항심 같은 것이 가슴에서 밀고 올라왔다. 내가 만약 상식을 뒤집는 선택을 하게 된다면 돌아가신 아버지가 뭐라고 하실까?

다시 생각을 곱씹었다. 그래 맞어!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은 소외된 우리 이웃들과 더불어 사랑을 만들어내야 하는 직업인데 괜한 반항심으로 시작하면 안 되는 거야. 출발부터 삐딱하게 시작할 수는 없는 일이지 암 그렇고 말구!

가끔 사회복지 법인들의 비리와 횡포에 대한 뉴스를 접하다 보면 그래도 돌아가신 아버지가 존경스럽다. 적어도 우리 아버지는 남 등쳐먹지 않으셨고, 불쌍한 사람들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난 어떤 결정을 함에 있어서 늘 아버지를 먼저 떠 올린다. 만약 내 아버지였더라면 이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셨을까? 이 질문이 어느덧 내 삶의 이정표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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