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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웃들 많아 청양 생활이 더 행복해요”

청양에 둥지를 튼 사람들-비봉면 부르니길 이봉연 씨

2014.03.24(월) 17:48:56관리자(ladysk@hanmail.net)

“좋은 이웃들 많아 청양 생활이 더 행복해요” 사진

 ▲ 이봉연 씨가 자신의 작품집을 소개하고 있다. 벽에 걸린 작품도 그의 것이다.
 

“좋은 이웃들 많아 청양 생활이 더 행복해요” 사진

 ▶ 이봉연 씨는 제자들에게 한글을 지도했고 초대작가를 다수 배출했다
 
  오늘은 비봉면 부르니길(지번주소: 비봉면 장재리 3번지) 끝자락, 산과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은 이봉연(70) 씨를 소개한다. 그는 홍성 혜전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퇴임 후 지금은 청양에 개인 연구소를 마련해 생활하고 있다.

봄 햇살이 따사롭던 날 그의 집을 찾아갔다. 그리고 커다란 창으로 눈부신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거실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좋은 곳 찾아 발품 ‘청양 정착’
그를 만난 것은 이른 아침시간이었다. 하지만 그의 집에는 벌써 비슷한 또래의 이웃 주민이 놀러와 차를 마시며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또 둘은 한 목소리로 “우리 나이가 되면 부지런해져요”라면서 기자에게도 따끈한 차 한 잔을 권하며 반겨줬다.

이어 이씨는 “남들은 천 냥을 주고 좋은 이웃을 만난다는데 전 공짜로 좋은 이웃을 얻었어요. 그래서 청양 생활이 더 행복해요”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강원도 동해에서 태어난 그는 고향에서 대학까지 졸업 후 상명대학교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대학에서는 회계학과 경영학 복수전공을, 석·박사 과정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했다.

“제가 대학 입학할 때만해도 시골 어른들은 자식이 경영이나 법을 공부하기 원하셨죠. 그래서 저도 그 뜻에 따랐어요.”

이후 그는 홍성 혜전대학 경영정보과 교수로 부임해 학생들을 가르쳤다. 1982년부터로, 혜전대학도 그 해에 개교했다. 그리고 28년 근무하다 2010년 2월 퇴임했다.

그는 특히 대학에 근무하면서 항상 ‘퇴임하면 전원생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단다. 홍성도 도시는 아니지만 아파트 생활을 하고 있던 터라 더 조용하고 공기 좋은 곳으로 이사하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그 때문인지 그는 퇴임 전부터 짬짬이 시골 곳곳을 돌아다녔단다. 

그러다 버스를 타고 가다 비봉면 부르니 마을이 유난히 마음에 들어 무작정 내렸고 마을 끝자락 산 밑에 있던 집터를 발견했다. 그리고 이웃의 도움으로 땅을 구입하고, 공사를 시작해 2011년 11월 이사를 와 그 때부터 청양생활을 시작했다.

서예지도 30여년 초대작가 다수 배출
경영학 박사로 오랫동안 제자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던 그. 하지만 그는 어릴 적부터 문학이나 서예 등에 관심이 많았고 나이가 들어서는 서예도 하고 시도 지으면서 생활하고 싶었단다. 그래서 틈틈이 교본을 보고 혼자 연습하고, 또 시도 열심히 습작했다고 전한다. 그러던 중 대학에 부임 후 1년 만인 1983년부터 주민들의 부탁을 받고 서예지도를 시작하게 된다.

“초등학교 자모들에게 강의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부모가 서예를 하면 자식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했더니, 가르쳐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처음엔 학생들만, 1988년부터는 어른들도 지도하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 홍성은 서예 불모지였어요. 지금은 많이 하십니다.”

그는 한글만 지도한다. 그리고 현재까지 초대작가 10여명을 비롯해 많은 제자들을 양성했다. 또 퇴임 후인 지금도 그는 매주 목요일 충남도청에서 일반인 대상 서예지도를 한다. 청양대 평생교육원에서 개설한 것이다. 또 화요일에는 홍성도서관에서 지도하고, 금요일에는 제자들이 자신의 집으로 와 서예를 배우고 있다. 이처럼 그는 요즘도 제자 양성에 바쁘다.

우당서체 개발하고 교본 발행도
이렇게 서예에 대한 관심과 끝없는 습작을 통해 그는 자신의 호를 딴 ‘우당서체’를 개발, 교본으로 만들기도 했다. 3년 동안 작업했고 2002년 완성해 발표했다.

“한자는 해서 초서 전서 예서, 한글은 궁체(정자 반흘림 진흘림)와 판본체가 있어요. 한글 정자와 한문 해서, 한글 궁체 반흘림과 한자의 행서, 한글 진흘림은 한자 초서, 판본체는 예서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한자 전서에 해당되는 것이 없더군요. 그래서 전서와 비슷한 한글 글자를 만들어 봤고 처음에는 한글 전서라고 이름 붙였었어요. 그러다 우당체로 바꿨죠.”

하지만 그는 자신의 제자들에게는 우당체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 혹, 비판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전통적 예술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도 좋은데 현대인의 생활양식, 미적 감각에 맞게 새로운 것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우당체를 만들게 됐습니다.”

독학으로 서예 실력을 키우고 제자양성은 물론 자신의 호를 딴 서체를 개발한 그. 그는 자신이 직접 지은 시로 서예작품을 만들어 한·중·일 서화가 초대작가전을 비롯한 다수의 초대전에 참여했다. 서울 예술의 전당·백암미술관·중국 등을 비롯해 여섯 차례에 걸쳐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특히 그는 서예 실력에 더해 중학교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1989년 문학세계를 통해 등단한 시인이기도 하다. ‘그래서 바닥은 보이는 것이 좋다’와 ‘돌아보며 바라보며’라는 제목으로 두 권의 시집을 발간할 정도다. 특히 ‘돌아보며 바라보며’는 정년퇴임을 앞두고 발표한 것으로, 그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시, 서, 화를 삼절이라고 하죠. 시와 서는 중학교 때부터 해왔고, 화는 그 사이사이 조금씩 연습을 했어요. 그것을 토대로 작품을 만들고 시도 지어봤습니다. 고전, 사서삼경, 노자, 장자 등 인문학에도 관심이 많아요.”

한글 이론서 정립 위해 계속 공부
그는 어렸을 때부터 문화예술을 하고 싶었고 때문에 퇴직하자마자 전공을 버렸다고 말한다.

특히 퇴직하면서 ‘무대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무대를 바꿔 서는 것’이라고 말을 했단다. 대학이 아닌 무대를 바꿔 서예를 가르치면서 삶을 멋지게 꾸려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 청양으로 이사와 작업실도 꾸몄다고 말한다. 또 그는 이곳에서 한글 이론서를 만들기 위해 계속 공부해 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한문과 관련한 이론서는 있는데 한글 이론서는 없는 것 같아요. 한 번 해 보고 싶습니다. 글씨를 쓰는 것은 가치를 찾는 과정이에요. 가치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입니다.”

그는 청양의 자연이 너무 좋단다. 멀리 외출 할 때도 버스를 타고 또 걸어 다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자연을 즐기기 위해서다. 특히 이웃들을 잘 만나 하루하루 더 즐겁단다. 그리고 혹시 청양에 도움이 되는 일이 있다면 적극 참여해 보고 싶다고도 말한다.

청양에 자리를 잡은 우당 이봉연 씨는 강릉이 고향인 부인 김명희(60) 씨와 결혼해 두 딸을 두었으며, 큰 딸은 수학전공으로 이화여대에서 박사과정을, 둘째 딸은 의상디자인 전공으로 관련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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