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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원성동에서의 신혼살림, 그리고

결혼 반대의 험로 걷지 않은 사람 없다

2014.02.18(화) 07:21:19홍경석(casj007@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듣자하니 자네는 그야말로 쥐뿔도 없다며? 거기에다 없는 집안의 장손이고. 내 말 맞지?” “......” 장모님의 질책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그건 다 이유 있는 질책이었지요.
 
“하여간 우리 딸과 어찌 살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밝혀보게.” “어머님 말씀처럼 저는 가진 게 하나도 없는 가난한 집안의 장손이자 장남입니다. 그러나 혜숙(가명)이만큼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굶기지 않겠습니다. 무슨 짓이라고 하니까 이상한데 아무튼 도둑질만 빼곤 뭐든 다 할 각오가 돼 있습니다.” “......”
 
이번의 침묵과 함구는 장모님 ‘몫’이었습니다. 대저 장모님의 예비 사위 앞에서의 침묵은 사윗감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방증이죠. 그러시거나 말거나 저는 계속하여 밀어 붙였습니다. 그리곤 천안의 원성동에 반 지하 셋방을 얻어 신혼살림을 시작했지요.
 
방안에 곰팡이까지 피어있는 한심한 상황을 정찰(?) 나오셨던 장모님께선 한숨을 쉬시며 그러나 하는 수 없다는 듯 포기하시는 기색으로 역력했습니다. “둘 다 (상대가) 없으면 못 산대서 허락을 하긴 하네만 아무튼 보란 듯이 잘 살게!”
 
“고맙습니다! 그리고 염려 마세요!!” 이어 장모님께서 사주신 비키니 옷장 하나와 수저 두 벌, 그리고 요강 하나로 우리는 부부가 되어 살기 시작했죠. 요즘 같은 엄동설한엔 방안의 자리끼까지 꽁꽁 얼어 동태가 되었지만 우린 서로를 사랑했으므로 행복했습니다.
 
그제 처고모님의 칠순잔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근무라서 못 가고 대신 아내와 아들이 다녀왔죠. 어제 퇴근하니 아내가 칠순잔치에서 있었던 일을 ‘자랑’하더군요.
 
“고모가 왜 당신하고 딸은 안 왔느냐며 굉장히 서운해 하시더라고! 여하튼 아들이 당신 몫까지 잘 놀고 노래까지 썩 잘 부른 덕분에 단숨에 스타로 부상했지 뭐야!” “흠~ 역시 우리 아들은 청출어람(靑出於藍)이란 말야. 그렇긴 하지만 기왕이면 다홍치마랬다고 나까지 같이 갔더라면 오죽 좋았을까!”
 
“그랬더라면 볼만 했겠지, 만취하여 막춤에 곱사춤까지 마구마구 펼쳤을 테니.” “이 사람아, 원래 잔칫집은 그렇게 시끌벅적해야 제 맛이 나는 겨!”
 
“어쨌든 잔치 말미에 고모가 물어 보시더라구, 우리 아들은 애인 없냐고. 그래서 없다고 했더니 참한 규수를 소개해 주시겠다는 거야.” “말씀은 고맙지만 아들이 동의할까?”
 
저는 아들과 딸에게 진작부터 다짐을 한 게 있습니다. 그건 장차 저의 며느리와 사위가 될 사람은 “아무 것도 따지지 않겠다! 다만 네가 좋아하는 대상이라면.” 이라고 못을 박은 거죠. 그것도 매우 단단히 말입니다.
 
따지고 보면 결혼 반대의 험로(險路)를 걷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험산준령을 이겨내야만 비로소 행복과 만족의 정류장에도 도착할 수 있는 것이라 믿습니다.
 
처음엔 그리도 반대하셨던 장모님이셨지만 올해로 결혼 33년차를 맞아 여전히 잘 살고 있는 저를 장모님께선 가장 사랑하는 사위로 꼽으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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