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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대지에 피어난 별빛…마음을 훔치다

충남의 재발견(32) 청양 고운식물원

2014.01.15(수) 14:50:53도정신문(deun127@korea.kr)

마술공연장을 찾은 방문객이 작은새를 손위에 얹고 즐거워 하고 있다.

▲ 마술공연장을 찾은 방문객이 작은새를 손위에 얹고 즐거워 하고 있다.


충남 지역 최고의 야간 빛축제 ‘인기’
풍선쇼 등 아기자기한 재미도 가득



매서운 겨울, 식물원을 찾는 일은 큰 기쁨이다. 1월의 대지에는 고개 떨군 꽃과 나무들의 앙상함이 전부지만, 누구 하나 부유한 잎사귀를 지니지 않고 같이 헐벗은 모습은 아름답다. 이 속을 거닐면 함께 살아가는 의미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매해 겨울이면 식구와 산을 찾는다.

올해 찾은 청양 고운 식물원은 특별했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빛 축제가 2회째 이어져 한밤에도 식물원을 거니는 호사가 가능해졌다.

고운 식물원의 빛축제는 눈부시다. 식물원을 둘러싼 청양 특유의 산악 지형이 이곳의 겨울밤을 깊은 우주처럼 짙고 어둡게 만들기 때문이다. 온전한 어둠 덕에 고운 식물원을 뒤덮은 전구의 빛은 은하수 같이 펼쳐진다. 이 빛 속을 거닐면 모두 견우와 직녀의 마음을 얻는다. 유독 이곳에 연인과 가족들이 붐비는 이유다.

고운식물원의 무지개 터널

▲ 고운식물원의 무지개 터널


빛에 마음이 동(動)하다

금요일 저녁, 불야성 같은 도심의 복잡함을 뚫고 한 시간여를 달려 청양에 도착했다. 청양에서 고운 식물원까지의 길에는 고요한 어둠이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두껍고 지루한 책을 보는 듯 무심한 마음에 길을 내달리면 저 멀리 고운 식물원에서 한 줄기 빛이 동아줄처럼 내려온다. 해바라기처럼 빛을 좇아 나아가면 넓고 큼직한 식물원의 주차장에 도달한다.

고운 식물원의 야경은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억으로 시작한다. 입구에 있는 오색찬란한 빛을 둘러 입은 소나무와 머리에 내려앉은 북극성은 찾는 이의 마음을 동심으로 돌려놓는다. 바로 뒤편에는 밤하늘의 별을 연상케 하는 빛의 그물에 눈의 결정과 선물상자가 매달려 있다. 진짜 별도 선물도 아닌 것들에 마음이 절로 동해진다. ‘파블로프의 개’와 다를 바 없는 육체와 정신의 반응이지만, 때로는 삶의 습관이 행복의 조건이 되기도 한다.

매표소 앞에는 식물원을 향해 길게 뻗은 무지개 빛 터널이 리듬에 맞춰 명멸한다. 그 속을 따라 오르면 길가 옆에 조각된 거대한 비너스 상을 만나게 된다. 회색의 돌을 질료로 한 여신상의 육중한 둔부에는 엷은 자줏빛 조명이 스며든다. 이 광경은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차가운 돌에 맺힌 빛의 파장에는 냉정함과 온화함이 함께 담겨 있다. 빛은 그 자체로 자족의 미(美)을 이루지만, 세상과 관계할 때에 비로써 온전함에 도달한다는 사실을 여인의 둔부가 말해주고 있었다.

빛송이가 펼치는 세상

비너스 상을 지나면 본격적인 빛의 여행이 시작된다. 산책로를 따라 길게 늘어진 헤아릴 수 없는 작은 빛의 덩어리들이 관능적으로 망막에 도달한다. 이 순간 빛을 그리기 위해 밤을 기다렸던 ‘빛의 화가’ 렘브란트의 감성에 도달한다. 저마다 마음에 감췄던 화폭을 꺼내 든다.

산책의 시작 지점에는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흰색 조명의 나무가 서 있다. 그 옆에는 소나무를 묘사한 붉은빛과 초록빛의 조명이 색감을 더한다. 단순한색과 선으로 이뤄진 나무들이지만, 겨울 숲의 쓸쓸함을 표현하기에는 충분했다.

빛의 나무를 기점으로 오른편으로 돌면 낮은 경사의 오르막과 나무 난간으로 꾸며진 산책로가 시작된다. 오르막에는 전구로 꾸민 음표와 선물 상자 모형이 나무에 걸려 있고, 그 옆에는 아이와 사슴, 꽃이 함께 한다. 나무 난간 위에는 길게 매달린 빛의 줄기가 유성우처럼 지상을 향해 돌진한다. 이모든 풍경은 세상 만물의 존재가 빛으로 표현될수 있음을 보여주거나, 혹은  “태초에 빛이 있으라”고 명한 성경의 기록처럼 애초부터 우리가 빛의 존재였을 것이란 의구심을 들게 한다. 태초에 생긴 빛이 어떻게 나무와 돌, 사람과 꽃 등에 각각 떨어져 스며들었는지 알 수 없다. 가끔 우리가 돌 속에 빛이 있고, 가슴 속에 불이 있고, 바닷속에 별이 있다고 믿는 것만이 그 증거가 될 뿐이다.

이곳에서 장식물 모두 빛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데, 무엇보다 가장 멋진 것은 전구 하나하나를 모아 전체를 이루도록 한 점묘법(點描法)식의 표현 방법일 것이다. 3차원의 세상에 속한 우리에게 가장 원초적인 표현은 점이다. 점은 순간의 빛을 놓치지 않는다. 이 점들이 모여 선을 이루고 면에 도달해 하나의 구조로 피어난다.

빛 송이의 점들이 이뤄내는 구조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숲의 형상이 나타난다. 빛 너머 아래에는 겨울철 바짝 마른 나뭇가지와 잎사귀, 넝쿨들이 몸을 웅크리고 있다. 빛은 아무리 작은 몸짓이라도 부딪치는 면과 선의 방향을 거스르지 않고 흐른다. 결이 거칠면 빛의 흐름도 난폭해지기 마련이다. 여기에 빛의 진정성이 있다. 이 빛의 진정성은 고운 식물원의 야경을 가장 부드럽고 사랑스럽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11만평 규모의 고운 식물원에는 6000여 종의 꽃과 나무들이 가득하다. 어찌 이곳에 스며드는 빛이 부드럽고 향기롭지 않을 수 있을까. 산책길 내내 빛 아래 흐르는 사물을 자세히 살피는 일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된다.

웃음꽃 피우는 풍선쇼

고운 식물원의 또 다른 즐거움은 산책로 입구 왼편에 자리한 공연장에 있다. 공연장에는 2월 9일까지 시간에 맞춰 마술공연과 풍선쇼가 열리는데, 마술사 선생의 솜씨가 그만이다. 마술을 관람하는 일은 대단히 즐겁다. 마술사 선생은 달인과 스타킹에서 수차례 섭외할 정도로 실력자나, 행색은 옆집 아저씨처럼 구수하다. 마술사 선생의 손에서 풍선은 생명을 얻는다. 화살에서 백조, 나무 타는 원숭이까지 무척 다양한 풍선 인형이 만들어진다. 만든 인형은 가장 먼저 손을 드는 관람객에게 선물로 준다. 특히 꽃과 원숭이 풍선은 인기가 좋아 경쟁이 치열하니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공연장이 즐거운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작은 새와 구관조를 직접 만져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강당 안에는 아이 주먹보다 작은 새들이 자유로이 돌아다닌다. 손가락을 발 앞에 대면 사뿐히 내려앉는데, 갓난아기가 손가락을 쥐어 잡는 느낌이 전해온다. 이 느낌은 작은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맞닿게 된다. 아이들이 경험해보면 좋을 듯하다.

모든 여정을 마치고 나가는 길에는 허브샵이 있다. 추위를 녹일 겸 커피나 차를 마실 수 있다. 사탕과 쿠키, 목걸이 등 다양한 기프트 상품도 판매하는데, 그중에도 가장 좋은 것은 흰머리의 친절한 주인아주머니다. 들뜬 기분에 너스레를 떠는 손님의 수다와 우울증을 호소하는 아주머니의 긴 이야기들도 제 일처럼 잘 들어준다.

커피 한잔을 하는 동안 작은 꽃망울을 지닌 반지에 즐거워하는 아가씨와 원색팔찌에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중년 여인,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가족 한 무리를 만났다. 추위에 내몰렸던 사람들 모두 이곳에서 친구가 된다.

추운 겨울, 대지에 떨어진 별과 가슴에 숨겨진 빛을 보고 싶다면 청양 고운 식물원을 찾아가면 될 듯하다.
/박재현 gaemi2@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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