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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량상단

[연재소설] 청효 표윤명의 미소1

2014.01.06(월) 15:35:48도정신문(deun127@korea.kr)

가량상단 사진

가량상단 사진본지는 신년 기획으로 우리 지역의 역사인 백제부흥운동을 배경으로 한 소설 ‘미소(微笑)’를 매호 연재한다.

백제 멸망 후 백제부흥운동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소멸되었는지 그 과정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미소’는 백제부흥운동의 중심축이었던 흑치상지와 지수신 장군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부흥운동의 중심지였던 예산 임존성과 가야산 보원사, 그리고 백제의 미소로 알려진 서산 마애삼존불상의 조상과정을 그려냈다.

저자 표윤명(48·예산)씨는 소설을 통해 백제를 배신한 뒤 당나라로 건너간 흑치상지 보다는 끝까지 백제를 지킨 ‘지수신 장군’을 재조명했다. 2014년 새해를 맞아 독자들을 역사속으로 초대한다.


 
가량협이 들썩였다. 떠나는 사람들과 보내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던 것이다. 훌쩍이며 눈물을 찍어내고 토닥이며 달랜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짐을 실은 마차는 기우뚱거리며 굽은 길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상단주(商團主)인 송천이 시간이 없다며 서두르라 연신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질녘까지는 포구에 당도해야 한다. 서둘러라!”
상단주의 재촉에 단은 마음이 급했다. 연은 안타까운 얼굴로 단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잡은 손이 파르르 떨렸다. 눈동자가 일렁였다. 단의 눈빛에서 연은 느꼈다.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지 말이다.

“다녀올게.”
짧은 한 마디가 연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무언가 말을 해야 했으나 입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그 순간 손이 허전했다. 단이 발길을 돌린 것이다. 그제야 연은 다급히 입을 열었다.

“잘 다녀와.”
너무도 일상적인 말이었다. 이웃 마을에 다녀 올 때나 하는 소리 같았다. 그러나 지금 그보다도 더 애절한 말은 없었다. 그제야 눈물이 쏟아졌다.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떠나는 사람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참았던 눈물이다.

연의 시야에서 서서히 단은 멀어져갔다. 어쩌면 다시 보지 못할 아픔일는지도 모른다. 애꿎은 치맛자락만 자꾸 주름이 졌다.

단은 되돌아보았다. 그러나 이제 연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고갯마루 너머로 흔들리고 있는 마른 나뭇가지만이 손을 흔들어대고 있을 따름이다.

그제야 가슴이 뭉클해졌다. 왜 그런지 모를 일이었다. 울음이 쏟아질 것만도 같았다. 먼지 날리는 길을 굴러가는 마차 바퀴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혀까지 깨물었다. 아픔을 이겨내기 위함이었다. 그때 묵직한 손길이 어깨를 눌렀다.

“젊은 날의 봄은 그런 아픔도 다 약이 되는 게야.”
흠칫 놀란 단이 고개를 들었다. 가량상단 단주 송천이었다. 거친 입가에는 미소까지 머금어져 있었다.

“이제 처음 떠나보는 게지?”
송천의 물음에 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입가에는 억지웃음까지 묻어나 있었다.

“의현대사께서 특별히 부탁을 하셨네. 자상한 분이시지. 우리 가량상단을 위해 애써주시기도 하고.”
특별한 부탁이라는 말에 단은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일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특별한 부탁이라니요?”
단의 물음에 송천은 껄껄웃음을 터뜨렸다.

“자네 말일세. 연이라는 처자와 혼인을 위해 길을 떠나는 거라고?”
단은 고개만 끄덕였다. 제 욕심만 내세우는 것 같아 미안해서였다.

“한 번 상단 길을 갔다 오면 그 정도는 충분할 걸세. 물품만 잘 거래하면 꽤 살림밑천이 되지. 인삼이나 마직이나 모두 좋은 물품들이니 말일세. 그리고 이번에는 잠사까지 더 했으니 오죽하겠는가? 저들은 백제의 인삼이나 잠사라면 사족을 못 쓰거든. 돌아오는 길에는 또 좋은 비단을 들여오면 짭짤한 수입이 되고.”
말을 마친 송천은 또 다시 껄껄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니 잠시의 헤어짐은 잊고 상단 길에나 집중하게. 배를 띄우면 정신이 없을 게야. 그런 사치스런 생각에 빠져 있을 겨를도 없지. 집 채 만 한 파도는 그렇다 쳐도 언제 어디서 바다도적들이 나타날지도 모르고.”
바다도적이란 말에 단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그제야 상단에 몸을 실었다는 것이 실감이 되었다.

“그 놈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놈들이야. 무조건 죽이지. 그 놈들에게 걸려들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단이 한 둘이 아니고.”
말하는 송천의 아귀에 분노가 깊이 박혀 있었다. 혀에는 가시까지 돋아있었다. 단의 가슴 속에도 그제야 두려움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후회가 스멀거리며 일기도 했다. 뒤늦게 소름까지 돋아 올랐다. 

“어쩌다 우리 백제가 이렇게 되었는지 몰라. 예전에는 감히 바다에서 그런 일이 있을 수 없었지. 바다는 곧 백제의 안마당이었거든.”
송천의 말에 한 숨이 깊었다.

“그럼 어떻게 대처하는지요?”
단의 물음에 송천이 다부진 얼굴로 대답했다.

“싸워야지. 그래서 우리도 무기를 가지고 가는 게야. 가장 좋은 것은 저들과 만나지 않는 것이지만 그것은 부처님께서 도와주실 일이고.”
송천의 말끝에 또 다시 한 숨이 묻어났다.
“그래서 보원사에 그렇게 보시를 하시는군요?”
단의 물음에 송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그렇지만 그 큰 절을 유지하려면 누군가 도움이 필요하지 않겠어. 그래 내 좀 도움을 드리는 것에 불과한 거라고 그건.”
말을 끊었다 송천은 다시 이었다.

“이 어려운 시기, 가련한 백성들이 의지할 곳이라곤 보원사뿐인데 그런 보원사의 어려움을 외면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무엇보다도 의현대사의 인자하신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지.”
송천의 말에 단도 고개를 끄덕였다. 의현대사를 이야기하자 다시 연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아무튼 힘을 내게. 어려운 일은 내게 말하고.”
송천의 위로에 단은 큰 힘이 되었다. 그를 보자 믿음이 생겼다. 듬직했던 것이다.
마른 길을 상단이 지나자 먼지가 뽀얗게 일었다. 인삼과 마직 그리고 잠사 등을 실은 마차로 포구로 가는 길은 빽빽했다. 일 년에 한 차례씩 볼 수 있는 장관이기도 했다.

고갯마루로 올라서자 멀리 햇살아래 쨍하고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는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눈부신 바다의 주름에 단은 이마를 찡그렸다. 저 바다에 올라서면 이제 기약이 없을 것이다.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는 말이다. 걸음이 내키질 않았다. 그러나 가야만 한다.

고갯마루에 올라서 바다를 바라본 이후로 단은 어떻게 포구에까지 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만큼 단의 심정은 복잡하기만 했다.

“서둘러라! 바람이 불 때 돛을 올려야 한다.”
상단주 송천의 외침에 사람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포구의 사람들도 모두 나와 있었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장관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인삼과 잠사는 후미로 실어라!”
“뭐하는 게야. 서두르지 않고.”
단은 정신이 없었다. 그제야 상단에 몸을 담은 것이 실감이 되었다. 사람들을 따라 단은 짐을 날랐다. 묵직한 보따리가 어깨를 짓눌렀다.

상단주 송천은 사람을 부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 모습을 설핏 본 단은 마음 한 편으로 존경심이 일었다. 무언가 열중하고 있는 모습에서, 성공한 장사꾼으로서 단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단은 부지런히 짐을 날랐다. 요령이 없어 부족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

포구에는 구경나온 사람들과 배웅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손을 흔들고 소리를 지르고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겨났다. 그러나 그도 잠시, 짐을 싣고 나자 배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포구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포구의 사람들을 남겨두고, 텅 빈 포구만을 남겨 둔 채 먼 바다로 멀어져가기 시작한 것이다.

가물가물 멀어져가는 포구의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되자 그제야 뱃사람들도 돌아섰다. 그리고는 조용히 먼 바다를 바라보며 지친 몸을 쉬었다. 단은 뱃전에 앉아 흘러가는 섬을 무연히 바라보았다. 바람은 빠르게 배를 움직였다. 찢어질 듯 돛이 바람을 받아 사공을 기쁘게 했던 것이다.

망망대해에 이르자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사방 천지 온통 시퍼런 물 뿐이었다. 가끔씩 뒤따르는 갈매기만이 외로움을 덜어주곤 했다. 끝없이 펼쳐진 이런 까마득한 물은 단에게는 그저 두렵고도 낯선 것이었다. 처음 접해보는 묘한 감정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 일기도 했다. 원초적 두려움이었다. 그런 마음을 아는 지 옆에 있던 천판노인이 말을 걸어왔다. 젊어서부터 송천을 도와 상단을 이끈 부단주였다.

“그래, 이런 경험은 처음이지? 시퍼런 물만이 온통 휘감아대고, 들리느니 물소리뿐이고.”
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천판노인은 거친 수염을 한 차례 훑고 나서 다시 말을 이었다.

“처음엔 나도 그랬어. 무섭더라고. 흔들리는 배에 치솟는 파도가 어찌나 겁이 나던지. 그래도 이건 얌전한 편이야. 파도가 치기 시작하면 시퍼런 물이 뱃전을 까마득히 올라가는데. 난 처음 배를 탔을 때부터 그런 경험을 했어. 그래서 그런지 빨리 적응을 했지.”
말을 마친 천판노인은 껄껄웃음으로 지난날을 회상했다.

“걱정할 것 없어. 그게 다 사람 사는 거니까. 그나저나 자네는 이번 상단길을 다녀오면 혼인을 할 거라고?”
단은 여전히 고개만 끄덕였다.

<다음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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