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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향기] 핑계

2013.12.11(수) 22:25:01충남포커스(jmhshr@hanmail.net)

오줌을 쌀 때는 가운데다 잘 겨냥해서 얌전히 싸야지, 이렇게 여기저기 튀기면서 싸면 방금 청소했는데 엄마가 힘들게 또 물청소해야 되잖니.”
“오줌이 말을 안 들어요.”
기껏 청소했건만 금새 일 저질러 놓고 만 녀석에게 나름 위엄 있게 잔소리를 주구장창 늘어놓고 있는데, 이 어처구니없는 다섯 살 늦둥이 녀석의 귀여운 핑계는 더 이상의 잔소리를 할 수 없게 만듭니다.

“아들 장염은 좀 괜찮은거야?”
“일주일 동안 집에서 쉬면서 다 좋아졌는데, 아침에 어린이집 가자니까 느닷없이 배 아프다면서 주저앉아 안 가겠다는 거야. 어린이집 가는 걸 좋아하는데 안가다가 가려니까 싫었나봐. 결국 설득해서 보냈지. 아주 잘 놀고 있댄다.”

이집 저집 늦둥이 녀석들의 핑계가 참 가지각색입니다.

어린아이도 아닌 어른이 지금도 생각해 보면 마음에 걸리는 참 철없는 핑계를 댄 일이 있어 부끄러워집니다.

20여 년 전 직장생활 1년차 시절, 감기가 된통 걸려 콧물은 줄줄 흐르고,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고, 음식을 먹어도 무슨 맛인지도 몰라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그렇게 화장끼 없는 얼굴로 출근을 했습니다. 3교대 빽빽한 스케줄에 감기 정도로 '나 아프니 오늘 쉬겠다'고 말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되었습니다.

화장끼 없는 얼굴을 한 데는 숨은 의도가 있었습니다. ‘나 아프니 알아달라’는 뭐 그런거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비어 있는 침상이 하나도 없습니다. 평상시 같으면 세 명의 환자 정도만 맡아 간호하면 되는 것을 그날따라 다섯 명의 중환자가 내게 배정되었습니다.

마음속에 밀려드는 부담감 때문이었는지 이상하게 코는 더 나오는 것 같고, 두통까지 더해져 아파옵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막 납니다. 마음씨 착한 책임간호사가 조용히 내 손을 끌고 안쪽으로 들어갔습니다. 쇼파에 누이고는 링거를 꽂아주었습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해야지. 세상에 입술 좀 봐. 아무것도 못 먹은거야? 환자는 다른 간호사들과 한 명씩 더 보면 되니까 아무 걱정 말고 쉬고 있어.”

참 철없게도 그때는 내게 부담이었던 환자들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사실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파도 좋았습니다. 그때 그렇게 아프다는 핑계로 누워 내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편안하게 누워 있을 때 동료들이 고생했을 것을 생각하니 미안하기 그지없습니다.

20년 세월이 흘렀고, 조금씩 철이 드나봅니다. 얼마 전 첫 쌓인 눈길에 미끄러져 세 귀퉁이가 부서져 폐차하고는 교통사고를 핑계로 입원해 목에 기부스도 하고 평상시 아팠던 어깨도 물리치료도 받으면서 누워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마음대로 입원도 할 수 없습니다. 큰 눔이야 제 앞가림 하니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늦둥이 녀석은 누가 챙기나 싶어 첫 번째로 걸립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신문편집이 두 번째로 걸립니다. 이런 저런 책임감은 어디가 동강 부러지지 않은 다음에야 웬만한 아픔 따위는 박차고 일어나 거뜬히 이겨낼 수 있게 만듭니다.

20년 전 그때, 내게 지금의 책임감이 있었더라면 그까짓 감기로 드러누워 동료들에게 부담을 주는 일은 없었을 것을.

‘핑계’는 곧 ‘무책임’에서 오는 것임을 지금에야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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