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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소득과 상실의 교차로에서

올 추석이 그다지 즐겁지 않은 까닭은

2013.09.08(일) 03:54:16홍경석(casj007@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굵어가는 대추의 모습에서 추석의 도래를 새삼 느낍니다.

▲ 하루가 다르게 굵어가는 대추의 모습에서 추석의 도래를 새삼 느낍니다.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秋夕)이 열흘 앞으로 성큼 다가왔습니다. 추석은 음력으로 팔월 보름날임과 동시에 햅쌀로 송편을 빚고 햇과일 따위의 음식을 장만하여 조상님께 차례를 지내는 날입니다.
 
또한 추석(秋夕)이라는 명칭에서 보듯 ‘가을 저녁’의 넉넉함까지를 누릴 수 있는 좋은 날이죠. 추석은 이밖에도 ‘선물’이라는 공식과 등식이 공존의 아름다움으로 동반합니다. 당장 저의 경우만 하더라도 숙부님께 드릴 선물을 준비할 것이며, 추석연휴를 맞아 집에 내려올 우리 아이들 역시도 설마하니 빈손으로야 오겠습니까?
 
선물(膳物)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기왕지사 선물 얘기가 나온 김에 추석에 오고 간 선물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국민들 거개가 먹고사는 문제로 시급했던 지난 1950, 60년대에는 밀가루나 설탕 같은 식품이 인기였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경제발전이 시작된 1970년대엔 콜라와 커피 등의 기호식품과 속옷 등을 추석선물로 주고 받았다네요. 선물세트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때는 1980년대부터였습니다. 이후엔 상품권과 수입양주가 인기몰이를 했는데 따라서 추석 명절 선물과 관련한 소비자들의 유행 패턴은 계속하여 바뀌어 온 셈이죠.
 
아무튼 요즘 사람들은 현금으로 받는 추석선물이 가장 낫다고도 하는데 그보다도 우선되어야 하는 건 물론 선물을 주고받는 정성과 감사함의 느낌이라 하겠습니다. 박복(薄福)한 탓에 저의 생후 백 일 무렵에 생모를 잃었습니다.
 
한창 젊은 나이였던 아버지께선 하는 수 없어 같은 동네서 사셨던 할머니께 저의 양육을 부탁하셨지요. 그러나 그 유모할머니께선 저를 친아들과 친손자 그 이상으로 극진하게 길러주셨습니다.
 
그 은공을 결코 잊을 수 없었기에 할머니의 사후 산소가 개발로 말미암아 사라지기까지 설날과 한식, 그리고 추석엔 반드시 성묘를 했던 것이죠. 할머니의 뒤를 이어 아버지 또한 너무도 휑휑하게 제 아들이 불과 세 살일 적에 이 세상을 버리셨습니다.
 
하여 할머니의 산소 아래에 모셨는데 그 권역이 다시금 ‘공교롭게도’ 천안시청 청사의 바로 앞인지라 개발구역에 들어가게 되었지요. 때문에 수년 전 파묘한 뒤 수목장(樹木葬)으로 대신했는데 따라서 이젠 추석이 닥쳐도 벌초는커녕 성묘조차 할 수 없다는 상실(喪失)의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가득한 것입니다.
 
“할머니, 지가 돈 벌어서 사온 할머니 내복인디 한 번 입어보실튜?”와 “아부지, 아부지가 좋아하시는 술이랑 고기 사왔으니께 많이 드셔유~”라며 제가 추석선물을 드렸을 때는 선물을 한다는 그 흐뭇함이 바로 저로선 어떤 소득(所得) 관념에 다름 아니었지요.
 
하지만 이젠 그러한 ‘소득’마저 죄 사라졌기에 올 추석이 그다지 즐겁지만은 않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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