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지역신문뉴스

지역신문뉴스

충남넷 미디어 > 생생뉴스 > 지역신문뉴스

전국최초 지방문예지

<문예광> 영인본 발간

2013.06.03(월) 16:15:03무한정보신문(jsa7@yesm.kr)

전국최초 지방문예지 사진

 


 1930년 2월 10일 창간된 전국 최초의 지방 문예지로서 일제의 검열로 출간 즉시 압수돼 단 한 권만 살아남은 국내 유일본 <문예광>이 영인본 형태로 출간됐다.
영인본은 예산문단사(文壇史)와 함께 <일제하 문예광의 의미와 그 지평>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엮였다. 지역의 문인후배인 이재인(전 경기대 교수, 한국문인인장박물관 관장), 전하정(수필가, 예산초 교감), 임종본(시인, 내포문화예술원장)씨가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창간호(국판 56면) 복사본이 표지부터 마지막장까지 모두 실려있어 국한문 혼용체, 지금은 사라진 한글표기, 세로쓰기 편집상태 그대로 만날 수 있다.
책에서는 공저자 3인이 쓴 문예광에 대한 소개<아래 상자 기사 참조>와 예산문학의 역사가 실려있다.
저자들은 예산지역 문예지의 시원을 <문예광>으로 규정하면서 이후 △시인춘추(1937년 6월 8일 창간) △무한천(1950년 1월 10일 창간) △버중나무(1951년 8월 창간) △도향(1952년 4월 10일 창간) △육석(1957년 9월 15일 창간) △조용한 하루(1972년 7월 30일 창간) △무한(1984년 4월 7일 창간) △탁마(1985년 12월 1일 창간) △무의문학(1987년 9월 4일 창간)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예산의 대표문인으로 이해문, 방인근, 이희철을 꼽고 이들의 문학활동과 이후 현재 활동하는 지역문인들의 이름과 작품들을 소개해 놓았다.
<예원서림>에서 판매하고 있다.
<문예광>은 아나키스트 문학?
일제 불온서적 규정 수거… 단 한권 남아
    
 

전국최초 지방문예지 사진

 


 <문예광>은 1930년 2월 10일 예산의 문예광사에서 발간된 문예지다. 이 잡지는 발간과 동시에 출판물법 위반 혐의로 판매금지 처분을 받게된다. 성진호의 소설 ‘머슴사리’에서 폭탄을 투척하고 정의의 혈전장으로 자유의 승리자가 되자는 내용을 불온한 뜻을 품고있다고 판단한 일제의 조치였다.
<문예광>에 대한 지금까지의 인식은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 문학이라고 말하고 있다. 발행인 성진호의 사상적 배경을 두고 하는 말이다. 참여작가들 역시 많은 수가 아나키즘적 성향을 지니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실제 참여문인들은 아나키스트라고 단정하기 어려우며 오히려 계몽주의적 성향이 짙다.
<문예광>에는 작사가 송응순, 남석종, 김기주 등이 참여해 아동문학 작품을 발표하고, 평양시인 허문일과 후일 국문학자로 이름을 날린 박노춘도 참여하고 있다. 시조시인 김시훈, <시인춘추> 발행인 이해문, 수필가 이상호 같은 중진 작가의 이름도 올라있다.
아나키스트적 성향을 지닌 이들로는 함남단천청년동맹원 김웅렬, 동아일보태천지국기자 선우만년, 경성 청년동맹주남지부원 조영하, 취산청년동맹원 채규철 등이 참여했다.
반면 일제시대 중추원 참의를 지냈고 후일 정치활동을 한 성원경, 제헌의원을 지낸 윤병구 등도 이름을 올렸다.
동아일보 등 당시 여러 언론에 보도됐던 <문예광>은 세상에 빛을 보기도 전에 모두 수거에 들어가 소각 처분된다. 일부 지식인들이 몇 권을 몰래 반출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당시 신문보도에 따르면 중외일보 예산삽교지국 홍병철 지국장이 4~5부를 빼내 친구들에게 배포한 혐의로 체포돼 조사를 받았고, 그 중 하나가 남아있어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기증돼 있다.
<문예광>은 예산문인 뿐만 아니라 예산지역 사람들의 자랑이다.
-‘일제하 문예광의 의미와 그 지평’에서 발췌

제4유형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