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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주)안토니 김원길 대표]
“구두 만드는 일은 나를 행복하게 하죠”

구두 기술자에서 CEO가 된 남자</br>편안한 구두를 만들겠다는 열정이 힘

2013.05.16(목) 21:59:58관리자()

약력
- 당진 대호지면 도이리 출생
- 도성초등학교 졸업
- 미호중학교 졸업
- 전 고양이업종교류회 회장
- 전 케리부룩 지사장
- 한국중소기업학회 부회장, 국민법제관
- 중소기업동반성장추진위원회 추진위원
- 이업종교류회 북부지회 부회장
- 안토니 대표이사

 

[인터뷰-(주)안토니 김원길 대표]</br>“구두 만드는 일은 나를 행복하게 하죠” 사진

 


 

 



대호지면 도이리 출신인 김원길 대표는 1994년 안토니(주) 설립해 전국 53개 매장, 50%에 가까운 시장점유율로 연매출 430억을 기록하는 컴포트 슈즈업계의 선두주자다.

그는 미호중학교를 졸업하고 돈을 벌 수 있다는 중장비업이며 막노동까지 어지간한 일은 안 해 본 일이 없다.

하지만 어떤 일을 하든 재미를 느낄 수는 없었단다. 그러던 중 서산의 작은아버지 제화점에서 구두 만드는 일을 시작한 그는 평소 손재주 좋기로 유명했던 소질을 살려 구두 만드는 일에도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또 다른 일 보다도 구두 만드는 일에서 색다를 재미와 행복을 느꼈다. 김 대표는 40여년 가까이 구두만 바라보며 살았어도 단 한번 재미없다는 생각을 갖지 않았다.

구두 업계에 몸을 던지다
“구두를 만드는 일에 재미가 붙기 시작하자 이왕 시작한 일 끝을 보자는 생각에 구두 업계에 몸을 던졌죠. 18세의 젊은 나이에 가방하나 달랑 들고 상경해 영등포의 작은 구둣가게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무작정 상경해 독한 마음으로 구두 업계에 뛰어들었지만 일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어린나이에 당진 촌사람이 영등포에서 일자리를 구하겠다고 얼마나 들이대며 돌아다녔는지 모른다.

어렵게 구두 회상에 취직했지만 적은 임금에 생활을 쉽지 않았고 고된 일과 속에 기술을 익히기도 쉽지 않았다. 김 대표는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성실함을 바탕으로 일했다.

겨울철 연탄가스를 마셔 좋지 못한 몸 상태에서도 출근해 악착같이 기술을 연마할 정도였다.

<어린 구두 기술자에게 찾아온 기회>
기술을 연마하며 구두 기술자로서의 길을 걷던 그는 인생의 황금 같은 기회를 얻게 된다. 1984년 제19회 전국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하기로 했던 회사 내 선배가 금메달에 대한 압박감을 이기지 못해 잠적해 버린 일이 벌어졌다.

선배의 출전이 어렵게 되자 김 대표는 회사 사람들에게 “나를 내보내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공장장을 비롯해 주위 직원들 사이에서 김 대표의 실력이 뛰어나기로 이름이 나이었지만 여성화를 전문으로 만들어 왔던 그가 남성분야로 스타일을 전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았고 결국 그가 대회에 출전하게 됐다.

<실패에 굴하지 않은 구두에 대한 집념>
“금메달일 거라 생각했죠. 실수도 없었고 바느질도 술술 잘 풀렸으니까요. 자신도 있었구요. 주변에서도 금메달일 거란 칭찬이 많았구요. 하지만 생각처럼 일은 풀리지 않더군요.”(웃음)

대회 3일 후 결과를 발표하는 날 행사장은 소란스러웠다. 주최 측에서 준비한 구두 재료가 질이 떨어져 접착제를 말리는 3일 동안 가죽이 오그라드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가죽이 오그라든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모든 출품작 뒷품에 주름이 지고 말았다. 바느질에 자신이 있었던 김 대표는 뒤축을 더 팽팽하게 만든 탓에 주름이 더 심했다.

결과는 동메달이었다. 재료의 문제가 없었다면 금메달도 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동메달도 충분한 가치는 있었다.

하지만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던 회사 차원에서는 금메달이 아니면 큰 의미가 없었다. 직원들도 나를 보고도 못 본체 했고 쉽게 회사를 다닐 수 없는 분위기 였다.

휴가를 신청해 마음을 다잡은 김 대표는 회사에 돌아와 더 열심히 일했다. 시간이 지나자 직원들도 다시 그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남성 제화부분 동메달을 수상한 이후 김 대표는 구두 기술자로 전성기를 달렸다.

구두 기술자로서의 기술력 향상 뿐만 아니라 관리 및 영업 업무까지 거치면서 구두회사 경영의 모든 프로세스를 습득했다.

김 대표는 “모두가 외면하는 상황에서도 다시 구두 기술자로 일할 수 있게한 원동력은 구두에 대한 집념 이었다”며 “즐거운 일을 접하고 편안한 구두를 만들겠다는 꿈이 내게 다시 일어 설 수 있는 힘을 줬다”고 말했다.

<국내 유일한 기능공 출신 CEO>
6년의 세월이 흘러 독립한 그는 신규 브랜드의 한계와 전국 경제상황을 얼어붙게 한 IMF를 맞아 부도위기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구두 업계에 종사하며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구두’를 개발하겠다는 전략이 성공해 11년째 흑자 경영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 김 대표가 운영하고 있는 안토니(주)는 200여명의 직원과 콤포트 슈즈(편안함이 강조된 구두) 업계 1위의 자리를 지키는 중견 기업으로 성장했고 국내 내로라하는 구두 브랜드 중 유일한 기능공 출신 CEO로 자리 잡았다.

이 정도로 회사를 키워놓았으면 으리으리한 사무실에서 무게 잡으며 일할 법도하지만 여전히 아침이면 구두공장에 제일 먼저 들러 기능공들을 격려한다.

그래서 본사 역시 도심 한가운데 화려한 건물보다는 일산 외곽 공장 한켠에서 기획과 디자인 등 모든 작업을 진행한다.

특히 김원길 대표는 직원들에게 업계 최고 연봉과 상여금을 지급하고 승마, 수상스키 등 다양한 레포츠활동을 지원하며 세계적인 구두 메카로 연수지원도 아끼지 않는 등 일하고 싶은 중소기업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 중이다.

더불어 안토니장학회를 만들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스포츠 꿈나무에게 연간 2억원 이상을 지원하며 7년 전부터는 가정의 달을 맞아 ‘바이네르 효도잔치’를 열고 있다.

이밖에도 장학회설립, 복지시설(박애원, 아름다운가게 외)기부, 아프리카 우물파기 등과 같은 기부사업에도 활발하게 참여 중이다.

김 대표는 “매출 1위 등 눈에 보이는 성과보다는 행복한 회사 만들기와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게 더 중요하다”며 “직원들과 사회에 공헌하고 환원함으로서 구두를 만드는 보람을 더 값지게 얻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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