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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2013.01.20(일) 17:22:36오명희(omh122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도 어느새 달포가 지났다. 긴장이 풀려서일까. 그동안 남편과 나는 잠에 취해 살았다.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니 그야말로 순 잠꾸러기가 된 것이다. 중환자였던 어머니 병시중을 하느라 늘 정신없이 바빴는데 아침이면 남편과 나에게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 듯 멍해졌다.  기력이 다 빠져버려 그저 눕고만 싶어진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남편과 나의 건강 챙기기였다. 아침에 30분 일찍 일어나서 걷기 운동하고, 저녁엔 족욕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는 내 생애 처음 거금을 들여 가족 모두가 몸보신을 하기로 결심을 했다.  이제 환자를 돌보지 않아도 된다는 큰 부담감에서 벗어난 결과일까.  얼마 전 부터 아침저녁으로 홍삼 달린 추출액을 복용하면서 몸이 다소 회복이 되는 듯하다.

흐르는 세월 잡을 수가 없다더니 벌써 어머니의 49재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춥기만 한데 날씨마저 썰렁해 어머니 방 정리는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어언 31년 동안 나와 함께 희로애락 했는데 이제 가신님은 말이 없다. 그러나 평생을 함께 한 손때 묻은 어머니 가재도구와 옷가지들은 고스란히 내 곁에 남아 가슴을 짠하게 한다.

지난 연말은 유난히도 추웠다. 유독 눈이 많이 오는 등 날씨마저 무척이나 사나웠다. 그러나 어머니가 이승의 끈을 놓으실 땐 일기변화를 잘 헤아려 주셨다. 당신 자식들의 노고를 다소나마 덜어 주려는 듯 신기하게도 장례식과 삼우제 날만큼은 날씨가 좋았다. 나의 염원을 하늘도 무심치 않았던지 행사 때마다 아주 맑은 날로 점지해 주셨던 것이다.

구순의 시어머니는 중증치매로 남편과 나의 마음고생을 많이도 시켰다. 어떤 날은 연거푸 용변을 보신 후 이부자리에 여기저기 묻혀 놓아 하루에 이불을 몇 채씩이나 빨아야 했다. 그러니 사는 게 마치 전쟁터 같았다. 급기야 마지막 순간까지 어머니는 내가 보는 앞에서 대변을 푸짐하게 보고 가셨다. 저승에 가실 땐 배안 똥까지 싸고 가신다더니, 어머니는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평소 깔끔한 성격답게 당신 뱃속 청소까지 말끔히 하고 떠나신 것이다. 

중환자인 어머니를 배웅하며 내게 가장 큰 과제는 무엇보다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그러나 끝내는 씩씩하게 이겨 냈다. 그 결과는 아마도 생전에 내게 무한한 사랑과 믿음을 주셨던 아버님의 영향이 컸지 싶다. 내게 처한 고통은 결국 깨달음을 주었다. 잃은 것 보다는 얻은 게 더 많았던 것이다. 때로는 무관심한 동기간들을 향한 섭섭함에 잠을 못 이루며 아버님이 계신 묘소를 향해 하소연을 한 적도 허다했다. “아버님 부디 오늘 밤 당신 자식들 꿈에 나타나셔서 차례로 혼내 주세요.” 라고 되뇌이면서 말이다.

그때는 그랬다. 아버님께나마 내 속내를 그렇게라도 털어놓는 것이 나의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 “너만 믿고 간다.” 라고 하신 아버님의 유언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기에 때로는 내게 무거운 짐을 안겨준 아버님이 많이도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끝내는 아버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며느리가 되고자 최선을 다했다. 남편과 내가 묵묵히 맏이의 본분을 다했기에 집안이 편안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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