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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끈한 고부지간, 서로 하기 나름

어머니를 배웅하며 -11

2012.03.23(금) 오명희(omh122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한 끼 밥은 굶어도 약 없이는 단 하루도 못 견디는 구순의 나의 시어머니가 며칠째 약을 드시지 않았다. 단지 약이 쓰다는 이유에서다. 웬일일까? 순간 얼마 전 어머니가 내게 혓바늘이 돋았다며 칭얼대 날마다 꿀을 종지에 떠다 드렸던 생각이 났다. 그래서 나는 그날 이후 어머니에게 꿀을 일절 드리지 않았다. 혹 단맛으로 인해 생긴 후유증은 아닐까 해서 말이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약을 먹지 않겠다고 했다.

얼마나 다행인가. 그렇잖아도 몇 년째 어머니를 담당하는 주치의 말씀이 이제는 어머니가 너무나 연약해 지셔서 지금껏 복용해온 일정 약의 양을 줄여야 한다고 했으니 말이다. 내심 나는 스스로에게 쾌재를 불렀다. 이제는 병원에 가 처방전을 받을 일도, 시시때때로 약국에 가 약을 사와야 할 번거로움이 없을 테이니 라는 그 당시 내 짧은 생각으론 그랬다.

그런데 그 기쁨도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어머니가 항상 드셨던 저녁 약에 수면제가 포함되었다는 것을 내가 그만 깜박 잊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이틀간을 불면증으로 심한 치매증세 까지 보이셨다. 그러니 시간관념도 없이 새벽 한 시든, 두 시든, 거실까지 기어 나와 막무가내 언성을 높였다. 세숫물 떠다 달라, 밥 달라, 침대에 올려 달라, 이만저만 보채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연이틀 어머니와 전쟁을 치르며 식구들 모두가 잠을 설쳐야만 했다. 활기차게 할 하루하루를 졸음증으로 무척이나 시달려야만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날 밤 나는 어머니에게 수면제를 챙겨 드렸다. 극구 약을 먹지 않겠다고 사양하는 걸 내가 왕 애기처럼 살살 달래어 간신히 약을 드시게 한 것이다. 당신 스스로가 가장 즐기는 ‘목욕하기’를 무기로 그렇게 어머니 마음 빼앗기 작전에 돌입 한 것이다. ‘어머니 이 약 드셔야 내일 목욕 시켜 드릴 거예요.’ 라고 어르고 달래면서 말이다.

이튿날 아침, 나는 간밤의 어머니에게 한 약속을 떠올리며 예정에 없던 어머니의 야윈 몸을 말끔히 씻겨 드렸다. 그렇게 나의 노동력을 아낌없이 발휘하여야만 했다. 그러한 나의 수고로움의 대가인 듯, 초 새벽마다 어수선 했던 우리 집 분위기가 진정되었다. 드디어 이틀만에야 우리 가정의 평화를 찾게 된 것이다.

호된 일을 겪은 그 며칠 후 평소 보다 다소 이른 나의 퇴근길, 도착 즉 어머니 방에 들어서니 어머니는 초저녁인데도 천연스레 세상모르고 주무신다. 마치 어린 아이처럼 쌔근거리며 꿈나라 여행 중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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