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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결혼식

2011.10.08(토) 오명희(omh122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그날, 핑크빛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친구의 모습은 마치 활짝 핀 복사꽃처럼 화사했다. 그것도 양가의 장성한 자식들의 아낌없는 축복 속에 이루어지는 결혼식이었으니, 그 얼마나 뜻깊고 감격스런 일인가.

나의 초등학교 동창생인 J는 이십여년 전 그러니까 삼십대 중반에 남편과 사별을 했다. 그때 J에게 남겨진 유산이라고는 달랑 허름한 집 한 채와 홀로 된 시어머니, 그리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남매들 뿐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업주부였던 J는 남편을 보내고 가장으로서 넋 놓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J는 두 아이들을 위해 씩씩하게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온상 속에서만 살던 J가 삭막한 사회를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겨웠을 것이다. 식당으로 모텔의 카운터로 또는 병원의 간병인 등으로 수없이 직업을 바꾼 데에는 그 어려움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가끔씩 나를 찾아 올 때마다 그녀는 눈가에 작은 이슬방울을 그렁그렁 매달고 왔다. 그리고는 이내 내 가슴까지 쓰리도록 펑펑 울음을 쏟아내곤 했다. 한없이 착하고 정이 많은 J는 모진 세파에 시달리느라 차츰 얼굴의 웃음기까지 사라져 갔다.

그러나 그러한 역경 속에서도 남편과 사별했을 때 초등학생이었던 딸을 나름대로 잘 키워 출가시켰다. 듬직한 사위를 맞아 이제는 두 손주의 할머니가 되어 웃음 띄며 손주들 자랑을 한다. 아들 또한 장성하여 사회인으로서 당당하게 제 앞가림을 하고 있으며, 어여쁜 신부를 맞을 채비가 되어 있단다. 혼자의 힘으로 두 자녀를 독립시켰으니 이만하면 자식농사를 성공적으로 해낸 것이 아닌가.

그런데 J는 언제부턴가 이따금 나를 찾아와 활짝 웃기 시작했다. 1년 전 자신의 동생을 통해 알게 된 어떤 분과 데이트를 하는 중이라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분의 종교를 따르고자 성당에 나가 교리공부를 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렇게 J의 밝아진 모습에서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편안함과 행복감까지 엿보며, 내심 좋은 일이 있을 것을 직감했었다.

그러던 지난 9월 하순경의 일이다. 둑방길 따라 구절초 향기가 그윽하던 어느날, J가 예고도 없이 날 찾아와 뜻밖의 소식을 전해왔다. 세례는 한 달 전에 받았으며, 신부님의 주관 아래 며칠 후 조촐하게나마 성당에서 혼인성사를 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남편 될 분이 다니는 대전 근교의 K성당에서 말이다.

그날 나는 K성당에서 혼인성사가 진행되는 내내 고개 숙여 간절히 기도했다. 부디 친구의 밝게 웃는 모습을 오래도록 볼 수 있게 해달라고..... -J는 그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가 되어, 그 성당 혼인성사장을 환히 밝혀 주었다.

이튿날 J는 그동안 묵묵히 짊어져야만 했던 고독한 삶의 무게를 다 내려놓고, J만큼이나 선량해 보이는 신랑과 필리핀의  팔라완 섬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그 후 아직은 J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때 해맑던 J의 모습은 지금껏 내 가슴에 남아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있다. 아마도 그 감동적인 순간만큼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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