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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시장의 신발장수, 나의 어머니

2012.02.22(수) 이영희(dkfmqktlek@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친정 어머니는 우리 천안의 재래시장에서 신발 장사를 한다. 벌써 40년 가까이 되었다. 고무신 장사로 시작해서 지금은 잘 신지 않는 고무신 대신 일반 운동화 장사로 바뀌었을뿐 어머니에게 변한건 없다. 한 곳에서  오랫동안 장사해 온 어머니께 재래시장은 삶 그 자체이고 인생의 전부다.

어머니가 처음 장사를 하시던 그때, 즉 40년 전에는 고무신과 장화가 최고 품목이었다. 도로포장이 안돼서 집 밖으로 나서기만 하면 사방이 진흙탕이니 장화의 인기는 시들 수가 없었다.

나이 드신 분들은 그때의 타이아표 고무신과 장화를 기억하실 것이다.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살 정도로 비와 눈만 오면 도로나 시장이나 온 사방이 진흙탕이었으니 너나 할 것 없이 이런 장화 한두켤레씩은 다 갖추고 살았던 시절이다.  

검정고무신 한켤레가 6~7백원 하던 시절... 그 시절에는 농구화가 절대 인기였고 겨울철엔 털신이 짱 이었다.  

어머니가 장사하는 시장엔 없는 거 빼고 다 있다. 막걸리 집에는 젓가락 장단에 고단한 인생과 노랫가락이 흘러나왔고, 가지고 나온 물건을 팔아 재미를 본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헐값에 처분한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집에서 기다리는 자식을 위해 고무신, 옷 등 생필품도 사고 고기도 한칼 끊어서 누런 푸대 종이에 둘둘 말아 새끼줄에 묶어서 들고 집으로 향했다. 

때로는 기분이 넘쳐 아버지는 얼큰하게 취한 김에 그날 만든 돈을 술값으로 다 써버리고 장이 파하고 어둠이 깔린 후에야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노래하며 비틀비틀 밤길을 걸으며 자식들에게 줄 선물을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한때는 시장에 사람들의 다리가 걸려서 못 다닐 정도로 붐볐다.  씨름판도 열리고 반대편 우시장 쪽에서 소, 돼지, 오리, 닭, 염소, 강아지 등 온갖 짐승들까지 거래 될 때는 한마디로 장사도 할만 했다. 그래서 상인들은 다른 일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오후가 되면 앞에 찬 전대가 배불러 올 만큼 대단했다. 그때 당시는 장날이면 모든 일손을 놓고 논밭에서 가꾼 농산물이며 집에서 기른 동물 등 쓰고 남는 것들은 팔아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는 물물교환을 하는 장소였고, 그것으로 돈을 만들어 자녀들의 교육비를 마련하던 우리 모두의 생활터전이었다.
오죽하면 할 일 없이 남이 하는 걸 따라하는 이를 보며 “남이 구덕 메고 장에 간다고 투가리 쓰고 따라가느냐”라는 말이 있었을까.

얼마나 장에 가고 싶었으면 옆집 장보러 가는데 들고 갈 것은 없고 투가리 들고 따라 나섰을까 하는 이런 표현은 서민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긴 은유적 속담이었다. 

그게 재래시장의 모습이고 서민들 삶의 애환이 담긴 터전이었다. 어머니 역시 그렇게 40년 신발장사로 우리 자식 키워서 공부시키고 시집장가 보냈다.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 중 보통 20, 30년 이상을 버틴 베테랑 장사꾼들이 많다. 경제 불황이 심할수록 서민들은 더욱 어렵기 마련인데 요즘은 시장 주변에 야금야금 들어와서 몰래 문을 여는 대형마트들 때문에 더 어렵다.

“별수 있겄어? 여기서 버틸라믄 손님들에게 잘해주는 방법밖에 없잖여”라고 호방하게 웃는 시장 사람들. 여기서 밀리면 마트는 커지고 시장은 죄다 파리만 날리게 될걸 아는 재래시장 사람들의 생존 방식이다.
 장사를 천직으로 알며 낙천적으로 생활하는 시전 상인들에게 지금은 분명 어려운 때다. 이 시기를 버텨야만 좋은 날을 맞이할 수 있다는 생각에 오늘도 수백개나 되는 물건 값을 외우느라 정신없고, 들어오고 나가는 물건 때문에 더욱 분주하다. 

내일은 또 어떤 하루가 될까하고 눈감고, 내일 아침은 또 어떤 하루일까 하고 눈뜨는 장사꾼의 삶이지만 지금 그 일이 어머니에겐 천직임을 그리고, 그 천직에 한꺼풀의 티끌도 없이 살아 오신 나의 어머니.
 “사랑합니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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