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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서 온 손님과의 인연

2012.02.05(일) 오명희(omh122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사모님 오늘 영업 합니까? 북에서 온 사람입니다.’ 이른 아침, 요란스레 울린 한 통의 전화벨 소리의 주인공은 얼마 전 나의 가게를 몇 번이나 왔다 간 단골손님인 Y였다. 행여 또 나의 가게 문이 닫혀있을 세라 사전에 문의전화를 해온 것이었다. 그는 동갑내기 부인과 유아원에 다니는 예쁜 딸을 둔 삼십대 중반으로 십오륙 년 전 북한을 어렵사리 탈출하여 중국을 거쳐 남한에 온 사람이다.

그가 나의 가게에 단골이 되기까지는 이년 전 타지에서 대전 근교의 온천지로 이사를 오면서 부터다. 자그마한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와 앳된 그의 첫인상이 영락없는 대학생 같았다. 그런데 말씨가 한국인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에 나의 가게를 처음 방문한 손님인데도 불구하고 궁금증에 조심스레 ‘어디서 오셨어요?’ 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씩씩하게도 ‘북에서 왔습니다.’ 라고 했다. 이제는 그도 당당하게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었다는 듯이 말이다.

남성치고는 꽤나 용모에 신경을 쓰는 Y는 맨 처음 나의 가게에 왔을 때 보글보글 파마를 한 것처럼 웬만한 여성손님 보다도 더 자주 나의 가게를 찾아와 그만의 파마와 커트를 번갈아 하곤 한다. 그러한 그는 한국에 온 줄곧 컴퓨터 부속품의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단다. 그리고 주말에는 대전의 모 유명백화점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 최대한 멋져 보여야 하지 않느냐며 이제는 너스레까지 떠는 여유를 보인다.

이제는 그들 가족 모두가 나의 가게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그런데 그의 부인이 대전의 모 대학을 다니고 있어 그는 늘 귀염둥이 딸아이를 데리고 오는 날이 많다. 그런데 그 꼬맹이는 나이에 비해 성숙해서인지 어찌나 재롱을 잘 떨던지 나의 가게에 올 때마다 손님들에게 인기폭발이다. 하지만 Y는 자신의 유년시절, 북에서 잘 먹지 못해 키가 크지 못했다며 자신의 피붙이가 북에서는 상상도 못 할 것들을 다 누리고 산다면서 무척이나 흐뭇해하는 눈치였다.

굶주려야만 했던 그의 십팔 세 소년시절, 그렇게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해 중국으로 갔다고 한다. 그곳에서 불법체류로 십년을 숨어살며 농사일이며 온갖 허드렛일들, 그야말로 안 해 본 일이 없다고 했다. 그렇듯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다 새로운 인생을 선택한 곳이 대한민국이었는데 벌써 육년이 되었단다. 그러면서 언젠가 기회가 되면 조그마한 평수의 토지를 구입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유인 즉 자신의 딸아이에게 흙의 심성을 가르치기 위해서라니 그 얼마나 반듯한 사고력의 부모인가.

땅거미가 내리는 지난 주말, 어디선가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는 반갑게도 그 단골고객 Y였던 것이다. 그는 특유의 북한 사투리로 ‘사모님 내일 영업합니까?’ 라고 묻더니 내가 미쳐 대답을 하기도 전에 ‘북에서 온 사람입니다.’ 라고 했다. 그렇게 나의 가게에 아주 특별한 고객이 된 그 손님은 이튿날 예약시간에 맞춰 자신의 딸아이를 데리고 웃음 띤 얼굴로 나타났다. 그리고는 그날 그의 가슴 속에 오래 동안 묻혀 있던 수많은 사연들을 슬그머니 끄집어냈던 것이다. 그만의 특유한 호칭법인 사모님이란 단어를 마치 상큼한 소스처럼 맛깔스레 뿌려대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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