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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새해 七百의총서 참배를 드리고

2012.01.25(수) 청산(yoonsee1@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새해 임진년을 맞이하여 마음을 가다듬고 새해의 각오를 다지고자 경건한 마음으로 호국영령의 혼이 잠든  칠백의총 (七百義塚)을 찾아 나섰다.

금산 대전으로가는 도로변에 화강암으로 조각한 웅장한 돌에 칠백의총 비문이 세워져있다. 안내판이 칠백의총이 가까워짐을 알리고 도로변에는 여름이면 활짝 피었을 무궁화 꽃동산이 지금은 앙상하기만 하다.

  임진년 새해 七百의총서  참배를 드리고 사진  
 
새해를 맞은 칠백의총은 정초라서 그런지 충의사 앞 넓은 광장과 관광휴게소, 매점은 한산한 모습이었지만 참배를 하러온 참배객들이 적잖게 눈에 띄었다. 이들이 무슨 뜻으로 이곳에 왔는지 문득 궁금해지기도 하였다.

  임진년 새해 七百의총서  참배를 드리고 사진  
 
칠백의총 입구에 다다르자 안내문에는 참배객에게 경건한 마음가짐을 안내하고 있다. 사적 제 105호의 비문이 칠백의총임을 알리고 있다. 충남 금산군 금성면 의총길에 있는 칠백의총 (七百義塚)은 1592년 임진왜란시 조국 강토를 지키기 위해 중봉 조헌선생과 승장 영규대사가 이끄는 의병이 왜군 15.000명과의 싸움에서 순절한 700의사의 유해를 모신 묘(墓 )이다.

  임진년 새해 七百의총서  참배를 드리고 사진  
 
종용사(從容祠)에는 임진왜란 당시 금산 싸움에서 순절하신 선열들의 영혼을 모신21위 위패가 안치되어 있다. 1647년 당시 호서 호남지방의 유림에 의하여 건립되었고 1663년 현종께서 종용사라 하였다. 1940년 일제의 항일유적말살정책에 의해 훼손되었다가 광복후 1952년에 군민들의 성금을 모아 의총과 종용사를 다시 지었으며 1963년 1월 국가에서 이곳을 사적 105호로 지정하였다.

기념관은 1976넌 건립된 건물로 칠백의사의 전투모습등 행적을 그린 7폭의 기록화와 칠백의사와 관련된 유물 167점이 보관 전시되어 있다. 유물로는 조헌선생이 24세 때 문과에 급제한 교지와 명나라를 다녀올 때 손수 쓰신 조천일기 조헌선생에게 선조와 고종황제가 내린 교서 등이 있고 6종 7점의 유물은 1989년 8월 보물 제1007호로 지정되었다.

  임진년 새해 七百의총서  참배를 드리고 사진  
 
칠백의사 순의탑이 경내 전경을 바라보며 산 중턱에 우뚝 서있다. 선열의 혼이 잠든 무덤 앞에서 칠백의사 호국영령에게 경건한 마음으로 머리숙여 참배하고 발길을 돌렸다.

  임진년 새해 七百의총서  참배를 드리고 사진  
 
칠백의총 사적  제105 호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왜병과 싸우다 전원 순절한 분들의 유해가 함께 모셔진 호국영령의 성지이다. 1971년과 1976년 2차에 걸쳐 경내외 정화사업을 대대적으로 실시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단장하였다. 주요 시설물로는 의총 종용사 기념관 순의비 취의문 순의탑 등이 있다.

  임진년 새해 七百의총서  참배를 드리고 사진  
 
중봉 조선생 일군순의비  (重峰 趙先生 一軍殉義碑 )는 중봉 조헌선생이 지휘하는 칠백의사가 청주성을 탈환하고 금산싸움에서 순국 하기까지의 사적을 기록한 비문이다.

  임진년 새해 七百의총서  참배를 드리고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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