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언 30년, 계룡산을 지척에 두고 내가 살고 있는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 는 면소재지로 충청남도에서 최초로 세워진 충현서원(1581년 선조14)이 있으며, 곳곳마다 구전되는 옛이야기로 어우러진 문화유적의 마을이다.
![]() |
||
▲ 둠배산에서 바라본 공암리 전경 |
![]() |
||
▲ 충현서원 전경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0호) |
‘구멍 뚫린 산’ 즉 공암굴은 공암교에서 국도(32)를 따라 동쪽으로 100미터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굴바위다. 며칠 전 현장답사를 했다. 몇 년 전 답사 때와는 달리 빗돌에는 큰 굴이 있어 ‘공암리’ 가 탄생한 지명유래와 굴의 높이는 20척에 폭은 12척이며, 깊이는 30척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 |
||
▲ 공암굴 전경 |
공암굴의 내부에 흐르는 바위틈새의 물기와 자연적인 발생이 마치 여성의 음부같았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우리 지역의 면민들과 무속인들에게 생산의 풍요로 신성한 구전의 대상이 되었단다. 특히 자손이 귀한 사람들이 대를 잇기 위해 굿과 치성을 드려온 걸로 전해진다.
몇 해 전 나는 만학도로서 전공과목이었던 구비문학 과제물을 하기위해 그곳을 찾았었다. 그때만 해도 누군가 기도를 드린 듯 타다 말은 촛불만이 덩그라니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초입에는 잡초만이 무성할 뿐 굴 안은 철조망에 가로막혀 더 이상 들어 갈 수가 없었다.
대신 누군가 표지판에 써놓은 경고의 안내 메시지가 먼저와 맞아주었다. ‘개인 사유지로 무속행위 출입 금함. 위반 시 고발조치 하겠음. 주인백’. - 신비의 공암굴, 그 굴 안팍을 사진기에 담을 땐 잠시나마 청량한 기를 받은 듯 가슴이 뜨거웠다. 그러나 돌아서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 우리 지역의 고유한 문화유산인데 저렇듯 방치해도 되는 건지 가슴 한켠 씁쓸했다.
![]() |
||
▲ 철조망에 가로막혀있는 공암굴 |
![제4유형](/images/communication/ccl4.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