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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비름·바랭이· 비단풀, 이런 풀들과의 협상

2011.08.25(목) 김기숙(tosuk48@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여름이면 으레 풀과 모기와의 전쟁이다. 어릴 적 외양간의 소똥 냄새와 잉잉거리는 모기떼 미루나무 의 왕매미 소리 고향집의 여름밤도 그립다. 우리들의 놀이터는 주로 모닥불이었다. 보리꺼럭과 쑥대나 소 먹이의 꼴을 섞어서 만든 모닥불은 향기도 좋았다. 모닥불이 얼추 타면은 우리들은 깨진 바가지 짝에 감자 몇 개 담아다 불에 묻어놓고 아주까리 잎을 따서 손가락을 감싸 봉선화 물을 들이고 반짝반짝 빛나는 별을 세어본다.

별 하나 따서 독에 넣고 뚜껑 덥고. 별 둘 따서 독에 넣고 뚜껑 덥고. 별 셋 따서 독에 넣고 뚜껑 덥고. 별 넷 따서 독에 넣고 뚜껑 덥고…….열을 채 못 세고 잠들어 버린다.

모닥불이 사위어가면 밀집 방석에도 촉촉이 이슬이 내린다. 이슬을 이불삼아 잠들은 우리들을 어머니는 동생부터 안아 나른다.

모기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모기장을 털고 잽싸게 밀어 넣는다.

여름이면 어머니가 평생 풀과 모기와의 전쟁을 치렀듯이 나도 어머니가 갔던 길 을 가고 있다.

작업복을 입고 호미. 낫. 제초제 챙겨 가지고 풀과 협상을 할 만반에 준비를 한다.

대상자는 쇠비름. 바랭이. 비단풀. 명아주. 제비꽃. 참비름. 쑥. 며느리 밑씻개. 달개비. 개망초. 우술 등 이름 모를 풀들이 널브러진 밭이다. 평생을 풀과 살다 보니까. 약초가 되는 풀도 있고 풀의 성격도 알 수가 있다. 제초제를 주어도 죽지 않는 풀이 있는가하면 잎은 죽었어도 뿌리에서 새순이 나오는 놈도 있다.

“나와 협상을 할 대표자 나오슈!”

풀 마디가 소 무르팍 을 닳은 우술이가 톤 있는 목소리 “제가 먼저 협상을 하겄슈!”

“제 뿌리는 관절이 있는 사람이 삶아서 물을 먹으면 관절이 싹 났거든유”

“음!”

“나도 관절이 있는디 우술이 한테서 첨으로 입맛 당기는 소리 듣겄네!”

“우술님!”

뒤이어 며느리 밑씻개가 “내가 어지간하면 참으려고 했는디유 화가 치밀어서 참을 수가 없슈”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미워서 잔가시가 톱니처럼 붙은 풀로 며느리 밑을 닦으라고 했단다. 그래서 며느리 밑씻개로 불린다고 한다. 밭가에만 나는 풀이라 낫으로 열심히 베면 이마에는 뜨거운 땀방울이 흐르고 등에서는 소금꽃 이 핀다.

한 집안에서 씨줄 날줄을 엮어 가지 못하는 고부간의 갈등을 풀로 표현한 서글픈 이야기다.

쇠비름에게 “독한 제초제를 드릴까유. 아니면 호미로 제거 할까유?”

쇠비름 曰 뻘거 득득 핏대를 세우며 “뽑아서 뙤약볕에 놓아도 죽을 염여는 없으니깨 맘대루허유”

“나도. 요즘 옛날에 서태지만큼 뜨고 있거든요 효소를 만들고 삶아서 땀띠에 바르고 나물도 먹는다고 해유” “날 꼬시지 마 나 한 테는 잡초일 뿐이야!”

“지독한 것!”

달개비는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나는 쇠비름보다 더 강한 여인이여! 마디마다 뿌리가 있어서 도막도막 잘라 놓아도 절대적으로 안 죽거든” 하고 빈정댄다.

“바랭이 너는 기가 질기고 머리가 너무 흩트러져 어쩌면 좋으냐?”

“호미로 머리끄덩이를 잡던지 말든지 한 번 죽지 두 번 안죽으니깨 날도 더웁고 하니 분사기로 시원하게 약이나 주유”

암에 효험이 있다는 비단풀은 땅바닥에 바짝 붙어서 산다. 제일 낮은 자세로 살면서 있는 듯 없는 듯 봉사를 많이 하는 것이다 어느 누가 상처가 나면 자기 몸을 뚝 잘라 끈끈한 하얀 액을 발라준다. 뿌리는 외 뿌리임을 자처 하면서 호미로 한방이면 날아 가니깨 하고 외로움을 성토한다.

씨와 뿌리로 퍼져 번식력이 강한 제비꽃은 한 번 자리를 차지하면 어떻게 제거해야 될지 대책이 없다. 창을 깊이 넣고 캐보지만 잘라진 뿌리에서 다시 돋아나와 며칠 있다가 “용용 죽겠지” 하고 약을 올리는 고약한 어르신이다.

개망초는 꼴에 국화과에 속하는 두해살이 풀이다. 개망초는 그라목손(제초제)을 주어도 약발이 안 받고 겨울에도 얼어 죽지 않는 고질적인 풀이다. “나를 풀로 보지 말고 삶아서 무쳐 먹으면 춘곤증이 없어지니깨 일단 맛이나 봐유” 이렇게 날 유혹한다.

홋데기 풀은 꽃이 없어서 날갯죽지 부러진 늙은 나비 한 마리 불러 보지 못하고 이 십 센티 정도 되는 뿌리만 믿고 사는 양반 이다.

사람은 대대로 내려오는 뼈대 있는 뿌리가 있다. 나무들도 뿌리에서부터 시작된다. 사람에게서 뿌리라는 것은 계보나 마찬가지다. 뿌리가 튼튼하면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가 않는다.

참비름을 오래 섭취하면 무명 장수 한다는 뜻에서 장명채 라고 부르기도 한다.

“참비름 너는 효자여!”

“나는 보들보들 하고 순하게 생겨서 나물로는 제격이유”

질펀하게 삶아 무쳐서 치아 없는 울 엄마께 드리면 맛있게 잡수셨다. 엄마는 한 겨울에도 비름나물을 찾아서 재래시장을 자주 다니셨을 만큼 좋아 하셨다. 참비름 덕인가 병원신세 안지고 구 십 세까지 살으셨지만 비름만 보면 엄마가 보고 싶어진다.

잡초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쑥이다. 쑥은 주린 배를 채워주던 풀이요, 사람에게서 만병통치약이라고도 불린다.

“쑥 너는 어쩌면 그렇게도 쓸모가 많으니?”

“음”

“나는 이름이 좋아서 그래!”

“조금 나왔어도 쑥 나왔다고 하잖아”

요즘 누룩을 만들 때라 누룩(밀을 빻아서 둥글 넙적하게 만든 것)방석 하려고 쑥대를 많이 베어 나른다.

“어린잎부터 쑥대 까지 써먹는 풀은 나밖에 없슈”

갖가지 무기를 가지고 협상을 해봐도 풀을 이겼다는 사람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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