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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 선생 숭모(崇慕) 단상

왜 忠南인가?

2011.01.12(수) 홍경석(casj007@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지난 주 토요일에 참석한 서정문학인협회의 모임에선 <만해 한용운 시맥회(詩脈會)>를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는 작년 여름에 서정문학인협회서 주최하는 신인작가 공모에서 수필 부문으로 등단하였지요. 그 덕분으로 지난 토요일엔 초대를 받아 2011 시무식 겸 18기 신인작가 당선자 상견례를 동시에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일 날 즉석에서 회원님들이 정성으로 끓인 떡만둣국과 따스한 정이 담긴 술까지도 잘 얻어먹었음은 물론이죠.

만해 한용운 (1879.8.29~1944.6.29) 선생께선 충청남도 홍성에서 출생하셨습니다.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다가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했으나 실패하자 1896년엔 설악산 오세암으로 들어가셨지요. 그 뒤 1905년엔 강원도 인제의 백담사에 가서 연곡을 스승으로 하여 승려가 되고 만화에게서 법을 받았다고 합니다. 1908년엔 전국 사찰대표 52인의 한 사람으로 원흥사에서 원종종무원을 설립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신문명을 시찰했고요. 1910년에 우리의 국권이 피탈되자 중국에 가서 독립군 군관학교를 방문하여 격려하고 만주와 시베리아 등지를 방랑하다가 1913년 귀국한 뒤엔 불교학원에서 교편을 잡습니다.

이 해 범어사에 들어가 <불교대전>을 저술하여 불교의 개혁과 더불어 불교의 현실참여까지를 아울러 주장하셨지요. 1919년의 그 유명한 3.1운동 때는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죄목으로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합니다. 1926년엔 역시도 유명한 님의 시집인 <님의 침묵>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습니다. 님께서는 이밖에도 마치 심청사달(心淸事達 = 마음이 맑으면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과도 같은 맑고 고운 시를 많이 지으셨는데 제가 평소 애송(愛誦)하는 님의 시 <나의 꿈>도 바로 그런 경지에 듭니다.

“나의 꿈” - 당신이 맑은 새벽에 나무 그늘 사이에서 산보할 때에, 나의 꿈은 작은 별이 되어서 당신의 머리 위를 지키고 있겠습니다. 당신이 여름날에 더위를 못 기어 낮잠을 자거든, 나의 꿈은 맑은 바람이 되어서 당신의 주위에 떠돌겠습니다. 당신이 고요한 가을밤이 그윽히 앉아서 글을 볼 때에, 나의 꿈은 귀뚜라미가 되어서 책상 밑에서 귀똘귀똘 울겠습니다. -

충남에는 만해 한용운님 말고도 위인(偉人)과 의인(義人), 그리고 대장부와 여장부외 충신(忠臣)도 많은데 그건 아마도 충남(忠南)이란 지명(地名)이 애초부터 가져다 준 본디의 어떤 풍성한 자원(資源)이 아닐까 싶습니다. 충남(忠南) 충(忠)이란 글자가 ‘충성할 충’이란 소개는 구태여 사족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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