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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언한 일상 비틀고 웃어버리세

충남무형문화재 제26호 '서산 박첨지 놀이' 김동익 명인을 만나다

2010.06.12(토) 윤토리(godqhr090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서산 터미널에서 탑곡리 행 마을 버스로 갈아타고 20분 후에 들어서자 푸른 논 너머로 듬성듬성 집이 박혀있는 평온한 시골마을. 바로 그 곳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탑곡리가 민속 인형극, ‘서산 박첨지놀이’의 전통을 품고 있었다.

  뻐~언한 일상 비틀고 웃어버리세 사진  
오늘날 우리나라에 전해지고 있는 인형극은 꼭두각시놀음, 발탈, 만석중놀이, 서산박첨지놀이가 있다. 그 중 서산 박첨지놀이는 마을에서 전승되기 때문에 유랑예인집단에 의해 전승되는 꼭두각시놀음에 비하여 대사나 곡조가 한층 소박할 뿐만 아니라 서산 지방 특유의 짙은 향토성을 보인다. 특이한 점은, 전문놀이집단이 아니라 마을사람들에 의해서 전승되는 국내 유일의 민속인형극이라는 점이다.

첫 번째 마당. 박첨지 나가신다

서산 박첨지놀이는 어떻게 전수받게 된 걸까.
“고려시대부터 생겼던건디 조선시대 때는 많았지. 많았었는데 조선시대가 마감되고 일제 시대가 들어오잖아. 경찰서에 다 허가 맡아야하고.. 그 때 다 소멸된거여. 다만 우리는 어른들이 밤이면 몰래 동네에서만 꾸준히 이렇게 놀이해왔어. 자연적으로, 천연적으로 배워져서 우리 동네 사람들은 다 알고 그렇게 내려온거야. 딴 데는 싹 하나도 없지. 다시 재발굴해서 무형문화재 지정을 내가 받은 거지.”

1대 전승자 故 주연산 씨도 고희(古稀)의 나이에도 손수 주연을 맡아 해마다 추석 때면 동민들 앞에서 공연을 하며, 위안을 주는 것은 물론 본 극을 익혀 계승 시키고자 직접 지도를 했다고 한다. 그 후 1954년 마을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서산 박첨지놀이보존회’를 만들고 살려서 지금에까지 이르고 있다. 함께 어우러져서 놀이하던 마을 사람들이 곧 예인(藝人)이 된 것이다.

두 번째 마당. 뻔~한 일상 비틀어버리고 웃어버리세

박첨지는 옛날에 벼슬을 못하고서 고위층에 있는 사람을 이른다. 서산 박첨지놀이는 바가지쪽을 가지고 만든 여러 문양의 인형으로 관중들과 대답하고 묻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본처를 버리고 첩을 얻어 사는 박첨지 마당, 정치를 잘못해 백성들의 생활상을 보살피지 못하여 원성을 산 평안감사에 대한 마당, 절 짓는 마당으로 구성되어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내용일까.

“그게 배역을 다 맡자면 아마 한 20명 정도 되지. 정치인이라면 정치나 신경 쓰고 정치를 잘해서 백성들이 편케 살도록 하는 것이 원칙인 것인디, 자기 욕심만 채우고 백성들 생각은 안하니까 그런 저항을 풍자한거여. 그래서 서민층이 그런 걸 막 터놓고 못하니까 연극으로 맨들어서 공연을 하는겨. 양반을 흉보고 해치는 소린데 극으로 만들어서 하니까 곧 잡아가지도 못하고. 지금으로 말하면, 돈 먹은 국회의원 고발해도 반대로 징역당해살고 그러는 것처럼. 그 때하고 지금 시대하고 딱 들어맞는 거야. 그렇게 관객과 대화로 놀면서 건강하게 서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는 말이여.”

놀이 속의 해학은 웃음을 던져주고 한편으로는 웃음 뒤의 현실을 직시하는 통찰력을 갖게 해준다. 담소의 이 같은 웃음 속에 깊은 뜻과 철학이 깃들어 잘못된 위정자들을 지적했던 것이다.

세 번째 마당. 놀이에 빠져들고 세상에 녹아들고

서산 박첨지놀이는 앞으로 어떻게 대중과 만나고, 계승을 해나갈 계획인지 여쭈어보았다.
“이 놀이가 옛날 시작할 때는 재밌고 좋았는데, 요즘에는 다른 여러 가지 좋은 공연이 나오니까 이게 별거 아니고 재미스러운 것 같지 않지만. 재미를 위해서라면 전통을 그냥 무시하고서 잘 꾸밀 수도 있지.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할 수 없어. 이건 전통이니까 달리 변조는 못하는거야. 왜냐하면 전통은 변조시키고, 무시하고 시대의 입맛에 맞추어 바꾸는 것이 아니야.”

“옛날에는 민속놀이를 조선시대 각 동네마다 다 놀고 했는데 지금은 다 없어지고 꼭두각시도 저 쪽 지방외엔 우리 밖에 없어. 지극히 애석하고 전승이 자꾸 됐으면 좋지. 그래서 이렇게 일러주고. 힘써 도와주고.”

말을 맺으신 명인께서는 한 손에는 평소 사용하던 박첨지 인형을 들고서 다른 한 손으로는 빛바랜 나무 가마의 지붕을 쓸어내었다.
세상 모든 일에는 이야기가 있고, 세상에 녹아든 이야기는 인간의 삶이고 그 자체다.

화려하지도 않은 서너평의 작은 공간에서 이루어지던 인형극. 이들의 공연은 외부 사람에게 그들의 세상사는 이야기를 알리던 매개적 역할을 했다. 뿐만 아니라 인형을 놀리는 사람과 관중석에 앉은 서민들의 춤과 장단이 되어 즐거움을 주고 소통할 수 있게 했던 진정한 놀이가 바로 '서산 박첨지놀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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