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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촌동 개울길, 그리고 세월은 강물처럼

2010.04.05(월) 홍경석(casj007@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고급아파트가 울창하게 들어선 곳.
천안역에서 하차하면 곧바로 한 눈에 들어오는 곳.
이곳이 과거엔 C방적의 공장으로써 많은 천안시민들이 여기서 일을 하고 밥을 먹었으며 미래의 희망까지를 틔운 장소, 와촌동이다.

다들 그렇게 사는 게 힘들었던 60-70년대는 거개의 빈가(貧家)에선 초등학교나마 마칠 수 있음을 위안삼아야 했다.
그리곤 곧바로 이 공장에 취직한 누나와 형들도 많았는데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공순이’와 ‘공돌이’라고 함부로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 누나와 형들은 하나같이 성실하고 근면했으며 가정에서도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핵심의 존재였음은 물론이다.

나고 자란 봉명동을 떠나 와촌동으로 이사를 한 건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지 싶다.
일제 식으로 까만 판잣집이 주를 이뤘던 빈곤한 동네엔 건너면 성정동으로 이어지는 개울이 있었다.
또한 개울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무시무시하게 큰 개(犬)들을 키우는 집이 있었다.
그 개들이 어찌나 컸는가 하면 어떤 개는 심지어 송아지만한 것도 있어 우리네 어린아이들의 간담을 서늘하게까지 했다.
하여 그 집 앞을 걷자면 언제나 그렇게 노심초사하기가 일쑤였음은 물론이다.

더욱이 참으로 이상하게 그 개들을 키우는 어르신은 개의 목 끈을 일부러 길게 매 놓아 특히나 어린이들은 그 집을 일컬어 ‘무시무시한 집’이라 평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뭐든 매한가지겠으되 개라는 동물에 대한 사람들의 호오(好惡)또한 갈릴 수밖에 없는데 조그만 애완견이라면 몰라도 송아지처럼 큰 개는 지금도 무섭기 그지없다!

아무튼 당시의 개울은 오염이 안 되어 물이 참 맑고 푸르렀다.
그래서 물고기들도 많아 그놈들을 잡아 매운탕을 끓여먹는 어르신들도 부지기수였다.
대신에 우리들은 한여름에 여기에 들어가 벌거숭이로써 물장난을 치기도 예사였다.

세월은 여류하여 당시 거기서 살았던 소년과 소녀들은 다같이 지천명의 언덕을 넘고 있는 중년의 아저씨와 아줌마로 변했다.
그제 동창회가 있어 천안에 갔다가 그 시절 와촌동에 대한 편린을 앞다퉈 서로 걷어 들이는 친구들과 금세 죽이 맞았다.

“그 때 집채만한 개들은 키웠던 아저씨는 지금도 살아계실까?”
“여름에 한 번은 그 개울에서 멱을 감다가 휩쓸려서 그만 불귀의 객이 될 뻔했지 뭐니!”

세월은 그렇게 개울처럼, 그리고 강물처럼 흐르는 것임을 새삼 느껴본 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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