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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장 영규대사 호국의 넋 서린 보석사

천년의 역사를 가진 고찰 금산 보석사

2010.03.17(수) 비자(kkt6119@hotmail.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보석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이다. 885년(헌강왕 11)에 조구가 창건했는데, 당시 절 앞산에서 캐낸 금으로 불상을 만들어 절 이름을 보석사라 했다고 한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명성황후가 중창하여 원당으로 삼았다. 일제강점기에는 31본산의 하나로서 전라북도 일원의 33개 말사를 통괄했다.

문화재로는 보석사 대웅전(충남유형문화재 143)과 절 입구의 금산 보석사의 은행나무(천연기념물 365)가 있는데, 이 은행나무는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울음소리를 내는 영험을 지닌 것으로 유명하다. 

  승장 영규대사 호국의 넋 서린 보석사 사진  
▲ 보석사 일주문

금산읍에서 13번 국도를 타고 진안 방향으로 가다 보면 우측으로 보석사 이정표가 나온다. 이정표를 따라 조금만 달리면 보석사를 발견할 수 있다.

보석사는 금산군 남이면 석동리 진악산 남동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절로써 계룡산 갑사와 함께 임란 당시 충청도 의승들의 충절의 넋이 어린 사찰이다. 절에 도착하니 제법 쌀쌀한 날씨에 추위를 느꼈지만, 등산하는 기분으로 친구들과 함께 절에 오르니 봄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사진에서 보이는 일주문을 지나서 좌측을 보면 영규대사 승장비를 발견할 수 있다.

  승장 영규대사 호국의 넋 서린 보석사 사진  
▲ 영규대사 의병 승장비

위의 사진은 금산전투에서 조헌과 함께 순절한 영규대사의 순절사적비이다. 비의 앞면에는 '의병승장'이라고 새겨져 있으나, 글씨가 훼손된 이 비는 1840년에 보석사 건립되었다.

영규대사의 호는 기허(騎虛)이며 본관은 밀양박씨로 공주 계룡면 출신이다. 공주 계룡산 갑사로 출가해 사명대사와 함께 서산대사의 문하에서 불법을 깨우치고 제자가 되었으며 공주에 있는  청련암에서 수행을 하며 선장(禪杖)으로 무예를 읶히다가 임진란이 일어나자 인근 사찰에서 승병 수백을 규합, 호국불교의 의지를 다졌다.

  승장 영규대사 호국의 넋 서린 보석사 사진  
▲ 범종루

경내에 들어가기 전에 범종루의 사진을 찍었다. 오른쪽 하단에 해우소라는 팻말을 보고 예전 한 음료 광고가 생각나 친구들과 가볍게 웃을 수 있었다.

경내를 둘러본 후 산신각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승장 영규대사 호국의 넋 서린 보석사 사진  
▲ 산신각

기허당 왼쪽으로 난 나무 계단을 오르면 보석사에서 가장 높은 전각인 산신각에 이른다. 

산신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 크기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산신각 안에는 소나무 아래 두 마리의 호랑이를 거느린 산신이 앉아 있는 산신탱화가 걸려 있다. 이곳에선 보석사의 전각들이 고스란히 내려다보인다. 들어오는 길에 줄지어 선 전나무들도 그렇고 크지 않은 전각들도 그렇고 보석사는 촌색시처럼 소박하면서 아름다운 절집이다. 친구들과 꽤 먼 거리를 걸어서 그런지 어느새 추위는 잊게 되었다.

  승장 영규대사 호국의 넋 서린 보석사 사진  
▲ 산신각

산신각의 내부에는 중앙에 영규대사와 진영과 그 좌우에 보석사에서 수도정진한 선사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예전에 칠백의총에서 촬영금지 구역에서 무심코 사진을 찍다 혼이 난 경험이 있어 아쉽지만 사진기에 산신각 내부의 사진은 담아오지 않았다.

  승장 영규대사 호국의 넋 서린 보석사 사진  
▲ 산신각에서 바라 본 보석사 전경

보석사에서 가장 높은 산신각에 오르니 보석사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진중 가장 높은 곳이 대웅전이다. 대웅전은 현재 공사중이서 사진을 찍지 않았다. 산신각에서 내려와 1000년의 수령을 가지고 있는 은행나무쪽으로 이동했다.

  승장 영규대사 호국의 넋 서린 보석사 사진  
▲ 약수터

경내를 떠나 은행나무쪽으로 이동하기 전에 잠시 약숫물로 목을 축였다.

  승장 영규대사 호국의 넋 서린 보석사 사진  
▲ 천연기념물 제365호 보석사 은행나무

1990년 8월 2일 천연기념물 제365호로 지정되었으며 보석사에서 소유하고 있다. 면적은 1,122㎡이고 수량은 1그루이며 수령이 1,000년 이상으로 알려져 있는 노거수이다. 나무높이 40m, 가슴높이 줄기둘레 10.4m, 가지퍼짐은 동서쪽 28m, 남북쪽 29m이다.

보석사로 들어오는 길을 지나 왼쪽 산기슭 아래쪽에 자리잡고 있다. 오래된 은행나무는 대개 주축()을 상실하는데 이 나무는 주축이 뚜렷이 살아 있다. 줄기가 굵고 세로 방향으로 골이 졌으며, 뿌리목 부근에서 수많은 움싹이 돋아나 그 높이가 2∼3m에 이른다.

나무의 크기가 어찌나 거대한지 굉장히 뒤로 물러나서야 전체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을 수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때 소풍으로 왔을 때는 은행잎이 만발했었는데... 봄에 방문해서 은행잎이 만발한 사진을 찍을 수 없어 너무나 아쉬웠다.

  승장 영규대사 호국의 넋 서린 보석사 사진  
▲ 보석사 은행나무

은행나무에 정성을 다해 빌면 아이를 얻는다고 하며, 머리 둔한 아이를 밤중에 나무 아래 한 시간 정도 세워두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재미있는 속설이 있다.  

은행나무는 또 마을에 변고가 있거나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에는 소리 내 운다는 전설도 있다고 한다. 

대학교에서 마지막 학기를 다니고 있는 지금 취업 걱정에 나날이 스트레스만 늘어가는 거 같아 친구들과 잠시 기분전환으로 들린 보석사에서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있었고, 많은 거리는 아니지만 친구들과 얘기하면서 산책하는 동안 매우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어 매우 좋았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친구들과 가을에 다시 오자는 약속을 하고 대전으로 향하는 차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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