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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에게서 기다림의 미학을 배우다

[기행수필 1] 오봉산 겨울 산행의 즐거움

2010.01.26(화) 희망(du2cb@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겨울방학이다. 모처럼 가족이 다 모여 알콩달콩 사는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겨울 방학이 기다려지는건, 삶의 향기가 피어오르는 가족이 다 함께 모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살면서 가장 위로가 되고, 힘이 되고, 사랑이 되는 가족, 상상만으로도 가슴벅차고 행복한 일이다.  우리가족의 또한 가지 즐거움은 주말에 가까운 들이나 산으로 마실처럼 가족여행을 떠나는 일이다.

주말은 어디든 떠날 수 있는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어 좋은 날이다.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 틀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생각만으로도 신이 나고 가슴 벅찬 일 아니겠는가. 게다가 카메라가 함께 있으니 나서는 발걸음이 어찌 가볍지 않으리. 오늘은 무엇을 담을 수 있을까 생각하며 소녀마냥 즐거운 마음으로 나선 길이다.

남편과 함께 카메라를 메고 충남 연기군 조치원에 있는 오봉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오봉산은 조치원 시내에서 오르는 길이 있는가 하면, 전동면과 서면에서도 오를 수 있는 등산길이 있다. 제일 가까운 서면에서 오르는 길을 택하여 차가 올라갈 수 있는 곳까지 올라가서 길가에 차를 세웠다. 눈길이라서 그런지 사람의 발자국은 보이지 않는다. 눈 덮인 고요한 산길에 간간히 짐승이 지나간 듯한 발자국이 흔적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며칠 전 내린 눈이 아직도 녹지 않아 산을 오르는데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그러나 가파른 바위산이 아니기에 쉬엄쉬엄 올라가기에 딱 좋은 코스다. 오봉산은 가족과 함께 오를 수 있는 아기자기한 산으로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다. 그래서 부담 갖지 않고 쉽게 찾을 수 있는 산이다.

산길에 들어서자마자 하늘과 닿을 듯한 오솔길이 펼쳐진다. 아, 오솔길이다.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숲속 오솔길을 걷는 기분은 동화 속 이야기처럼 정감 있고 아름답다. 마치 내가 동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이 기분,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부르며 오르는 겨울 산행이 어찌 즐겁지 않으리. 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걷노라니 사각사각 눈 밟히는 소리가 따라온다.

고요한 겨울 산의 적막을 깨며 오르는 산길에서 만나지는 모든 것들은 우리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하다. 산을 오르는 내내 친구처럼 반가움을 안겨준다. 신선이 따로 없다. 천천히 오솔길을 따라 오르며 사진을 찍는 내가 바로 신선 아니던가. 모든 것 다 내어주고도 올곧게 서서 내년을 예비하는 겨울나무들, 그들에게서 기다림의 미학을 배운다. 내일을 바라 볼 수 있는 기다림이 있기에 희망처럼 오늘을 힘차게 달릴 수 있다는 것, 사는 즐거움이요 보람 아니겠는가.

어쩌다 단체로 등산을 가게 되면 가끔 회의를 느낄 때가 있다.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가다 시피 걷는 사람들, 왜 사람들은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고 저렇듯 앞만 보고 정신없이 산을 오르는 것일까? 뒤처질 세라 그들의 뒤를 따르며 정상에 오르고 나면 왜 이곳에 왔는지 모를 때가 있다. 그 허탈함이란......

주변을 살피며 걷다보니 빨간 열매가 보인다. 산속에 빨간 꽃이 피었다면 거짓말일게다. 그런데 산속에서 만난 빨간 열매는 꽃처럼 아름답다. 작은 열매가 고염처럼 다닥다닥 붙어서 빨갛게 열려 있는 모습은 꽃다발을 보는 듯 하다. 예전에 고향 뒷동산에 오르면 쉽게 만날 수 있는 이 열매는 멍가라 불렀었다. 작고 귀여운 것이 올망졸망 모여 있는 모습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할 만큼 아름답다.

호젓한 산길을 걷노라면 삶에서 가시처럼 붙어 있던 시름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다. 시간의 빠르고 느림도 없다. 느낄 수 있는 자유와 평온, 신선함이 있기에 이 시간이 더없이 즐겁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신을 뒤돌아보고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지금 내가 바로 신선처럼 느껴진다.

눈 속에 처박혀 껍질뿐인 밤송이와 솔가루는 옛 향수를 불러온다. 폭삭 삭은 나무 삭정이는 가는 발걸음을 붙잡으며 쉬어 가라 이른다. 내가 어렸을 때는 산에 이렇게 노란 솔가루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갈퀴를 들고 득득 긁어서 자루에 꼭꼭 담아서 집으로 가져가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땔감으로 요긴하게 씌어지던 솔가루가 지금은 산길마다 융단처럼 깔려있다.

그 뿐만 아니라 고즈배기라고 불렀던 썩은 나무뿌리를 발로 툭툭 차서 부러뜨려서 자루에 담는 기분은 또 어떠했는가. 하나라도 더 캐려고 이리저리 산속을 헤집고 다니면서 친구들과 서로 네 것, 내 것 다투며 자루에 담던 기억은 너털웃음을 짓게 한다. 오늘 산길에서 만난 솔가루와 썩은 나무뿌리는 그 옛날 친구들과 뒷동산을 오르내리며 땔감을 찾아 나설 때의 추억 속으로 한없이 빠져들게 한다.

물끄러미 옛날 생각을 하며 솔가루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림자가 길게 누워있다. 남편을 부르며 내 옆에 서 보라고 하자 이번엔 다정한 연인의 모습이 그려진다. 재미있다는 듯 서로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짓고는 그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가난으로 어려웠던 시절이었지만 그때 그 시절이 그리운 건 지금보다도 더 큰 꿈과 야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다음에 어른이 되면 나는 멋진 삶을 살아 갈거야....... 라는 꿈은 가난을 이길 수 있는 버팀목이 돼 주었고 오늘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힘이 되었다. 과거는 행복한 오늘로 가는 징검다리고 꿈을 싣고 목표인 미래로 향하는 배인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추억과 함께 오르다 보니 정상이다. 맑은 날씨였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저 멀리 뿌옇게 고복저수지가 내려다보인다. 오봉산 정상에서 고복저수지의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으리라는 기대는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아기자기한 많은 것들을 사진으로 담으며 겨울 산행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었다.

내가 산을 오르는 이유는 옷을 벗고 당당하게 서 있는 겨울나무처럼, 근심걱정을 모두 벗어던지고 알몸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삶을 뒤돌아보고 자유를 힘껏 껴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산이 보여주는 기다림의 미학과 해맑은 웃음, 천진스런 낭만을 가슴에 안고 오봉산 정상에서 겨울 산행의 묘미를 만끽하는 이 순간, 아! 나는 신선이고 자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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