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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했던 백제문화의 융성한 그때모습을 한눈에

6904억원을 들여 17년간 만든 100만평 규모의 백제문화단지

2014.01.16(목) 01:20:16윤석천(dj3637dh2927@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학창시절, 중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빠지지 않고 갔던 곳이 경주 신라유적지였습니다. 물론 석굴암도 그 안에 있었죠.

그때 얻은 느낌은 “참 크고 웅장하고 대단한 역사적 규모”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학창시절을 지나 성인이 되어보니 그 웅장하고 광대한 신라의 경주유적지 못지 않은 우리고장 백제문화 단지가 부여에 생겼더군요.

정신없이 바쁘게 먹고 사느라 미처 몰랐는데 최근에 정말 부여에 광대한 백제문화단지가 조성됐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내리에 찬란했던 백제역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고자 1994년부터 2010년까지 무려 17년동안 총 100만평 규모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백제문화단지 안내서에 보니 거기에 들어간 비용만 자그만치 6904억원이라고 하네요.
 
이곳에는 백제 왕궁인 사비궁과 대표적 사찰인 능사, 계층별 주거문화를 보여주는 생활문화마을, 개국초기 궁성인 위례성, 그리고 고분공원까지 종합적으로 마련되어 있더군요.
 
눈발이 간간이 날리던 지난 주말 부여에 가서 이 웅장한 백제의 역사를 카메라에 담아 봤습니다. 이곳을 온전히 다 도는데는 하루 종일이 걸릴것 같더군요.

눈발도 날리고 날씨도 궂은 가운데 사비궁과 고분공원, 능사를 우선 들러보았습니다.
두시간에 걸쳐 관람하면서 사진을 찍노라니 내가 마치 백제시대의 한복판에 서서 당시 선인들의 흔적을 쫓아다니며 일상을 기록하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였습니다.
마치 파노라마처럼 기록한 그때로 가 보겠습니다.
 

찬란했던 백제문화의 융성한 그때모습을 한눈에 사진


먼저 이 초대형 백제문화단지의 정문인 정양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비궁을 향해 가기 위한 첫 관문입니다.

 

찬란했던 백제문화의 융성한 그때모습을 한눈에 사진


사비궁 내부

▲ 사비궁 내부


정양문을 지나면 거대한 운동장 같은 궁 안마당을 지나 사비궁 정문인 천정문 앞에 서게 됩니다.
사비궁은 우리나라 삼국시대 중 왕궁의 모습을 최초로 재현하였으며, 백제 문화역사의 절정을 이룬 사비시대의 왕궁으로 궁궐의 기본배치 형식 중 중앙부분인 치조의 권역을 재현하였습니다.
 

사비궁의 본전이자 정궁인 천정전

▲ 사비궁의 본전이자 정궁인 천정전


긍 내부 바닥타일도

▲ 긍 내부 바닥타일도 시대상을 반영


사비궁은 중궁전과 동궁전 그리고 서궁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제일먼저 정문인 천정문을 만나고 이어서 정궁인 천정전을 만나게 됩니다.
국가의 큰 정사를 하늘에 고하여 결정한 정사암에서 유래한 천정대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합니다.
화려하고 우수한 백제문화를 알 수 있는 곳입니다.
 

찬란했던 백제문화의 융성한 그때모습을 한눈에 사진


천정전에 있는 어좌.
어좌는 임금께서 앉는 자리로 용좌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곳 천정전은 신하들이 왕에게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왕궁의 중심 건물로써 건물내부 중에서도 중심이 되는 가운데 칸에 어좌를 배치하였습니다.
어좌의 기단부는 고대 가구자료와 당시 왕실불교의 특성등을 감안하여 공주 금동관음보살입상의 대좌와 안상 문양을 적용함으로써 왕의 존귀함을 표현하였습니다.
 
상부의 닫집은 삼국시대 벽화 등 관련 자료에 의하여 장막을 두른 보개 형태로써 공주 무령왕릉 출토 금제관식과 왕두침의 귀갑문, 부여 부소산에서 출토된 청동제 향로 뚜겅부의 문양과 능산리 은제초화 장식 문양등 으로 장식하였습니다.
어좌 위 용상뒤에는 부여 규암면 외리에서 출토된문양중 세상이 태평할 때에만 나타난다는 봉황문을 두어 왕실과 나라의 무궁함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있습니다.
 

왕의 대례복

▲ 왕비의 대례복


왕비의 대례복

▲ 왕의 대례복


천정전에 있는 왕과 왕비의 대례복.
왕실과 국가의 중요 행사시에 입었다고 합니다.
백제문화의 특징은 “화려하지만 사치하지 않고,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다”인데 왕과 왕비의 대례복을 보면서 그같은 백제문화의 절제된 미학을 엿볼수 있었습니다.
 

왕의 평상복

▲ 왕의 평상복


왕비의 평상복

▲ 왕비의 평상복


그리고 왕과 왕비의 평상복.
왕과 왕비가 평상시 궁내에서 일상생활에 입은 복식입니다.
 

찬란했던 백제문화의 융성한 그때모습을 한눈에 사진


찬란했던 백제문화의 융성한 그때모습을 한눈에 사진


목간과 죽간.
일반 나무와 대나무를 쪼개어 문자를 기록하고, 신하가 왕에게 상소하고, 또한 편지를 주고 받는 용도로 활용했다 합니다.
 

찬란했던 백제문화의 융성한 그때모습을 한눈에 사진


연영전의 집무실 내부

▲ 연영전의 집무실 내부


동궁 외전인 연영전.
신하들의 집무공간으로서 천하의 인재들을 맞이한다는 뜻에서 연영전이라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많은 훌륭한 인재들을 맞아 백성들의 대평성대를 위한 정사를 펼쳐야 함을 뜻합니다.
 

찬란했던 백제문화의 융성한 그때모습을 한눈에 사진


고분공원.
사비시대의 대표적 고분형태를 보여주는 곳인데 부여군 규암면에서 출토된 석실분 4기와 은산면에서 출토된 석실분 3기가 이전 복원 되어 있습니다.
 

찬란했던 백제문화의 융성한 그때모습을 한눈에 사진


능사와 외전이 있는 건물지입니다.
저기 보이는 뾰족한 탑이 5층목탑입니다.
능사는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한 백제 왕실의 사찰 즉 국립 사찰이었습니다.
능사 5층 목탑이 바로 보이고 안에는 대웅전과 자효당 향로각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찬란했던 백제문화의 융성한 그때모습을 한눈에 사진


백제문화단지를 찾아온 학생들

▲ 백제문화단지를 찾아온 학생들


능사 안으로 들어가서 만나는 자효당.
대중에게 불법을 설법하던 공간으로서 위덕왕의 성왕에 대한 효심을 기리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찬란했던 백제문화의 융성한 그때모습을 한눈에 사진


능사 중앙에 있는 대웅전입니다. 일명 금당이라고도 부릅니다.
사찰에서 불상을 모시던 공간이며 외부는 중층이고 내부는 통층입니다.
예불공간으로 활용된 곳이며 안에는 삼존불이 모셔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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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존불 앞에 놓여져 있는 금동대향로 모형

▲ 삼존불 앞에 놓여져 있는 금동대향로 모형


대웅전 안의 여래좌상과 보살입상이 나무로 만들어져 있고 여래좌상은 통통한 얼굴에 부드럽게 늘어진 옷주름, 손 모습은 부여 군수리 절터에서 출토한 납석조여래상에서 보이는 백제불상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찬란했던 백제문화의 융성한 그때모습을 한눈에 사진


찬란했던 백제문화의 융성한 그때모습을 한눈에 사진


5층목탑.
국내에서 최초로 재현된 백제시대 목탑으로 높이가 38m에 달합니다.
목탑 심초석에서 국보 제 288호인 창왕명석조사리감이 발굴되어 서기 567년 사리를 봉안하고 탑을 세웠다는 사실을 알수 있었습니다. 실로 소중한 기록이 아닐수 없습니다.
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던 곳이라 합니다.
 

찬란했던 백제문화의 융성한 그때모습을 한눈에 사진


 

찬란했던 백제문화의 융성한 그때모습을 한눈에 사진


 

찬란했던 백제문화의 융성한 그때모습을 한눈에 사진


향로각.
부여읍 능산리 사찰 유적지에서 국보 287호인 백제 금동대향로의 제작과정을 재현한 곳입니다.
이곳에는 향로를 만드는 장인들의 미니어처가 있습니다.
 
 

능사를 지키는 사천왕

▲ 능사를 지키는 사천왕


 

능사 밖에서 본 모습

▲ 능사 밖에서 본 모습


대충 살펴본 것인데도 절반도 다 소개하지 못했습니다.
다음에는 다른 부분을 더 소상하게 올리겠습니다.
충청남도의 백제문화유산을 이렇게 완벽하게 재현해 놓은 문화단지가 있는게 자랑스럽습니다.
 
백제문화단지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백제문로 374(합정리 575)
연락처 041-635-7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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