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의사와 윤봉길의사기념관과 더불어 윤봉길 의사 생가 광현당과 성장가 저한당 그리고 농촌부흥운동을 하신 부흥원, 보수상 유물전시관까지 갖추고 있다.
그리고 윤봉길의사 부인 배용순 여사의 묘소는 충의사 좌측 솔숲에 자리하고 있다.
영상으로 구국의지가 담긴 화두를 먼저 제시하여 잠시 생각하게 한다.
1930년 '장부출가생불환' 글을 남기고 망명 중국 상하이에서 백범 김 구 선생을 만나 한인애국단에 입단하여 조국독립운동에 헌신한다. 1932년 4. 29 홍커우공원 의거 결행하고 그해 일본 가나자와 육군공병작업장에서 25세 나이로 순국한다.
.
윤봉길의사 서거 80주년이 훌쩍 지난 시간, 생생하게 후손들은 그의 구국의지와 나라사랑을 위해 실천한 거룩한 충혼 정신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충의사
다시 바깥으로 나와 50여미터 정도 걸어오면 충의사를 둘러볼 수 있다.
충의사는 윤봉길 의사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이다.
충의사 입구 좌측에 문화해설사의 집이 있어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충의사 윤봉길의사 영정
사람은 왜 사느냐 이상을 이루기 위하여 산다.
보라! 풀은 꽃을 피우고 나무는 열매를 맺는다.
나도 이상의 꽃을 피우고 열매 맺기를 다짐하였다.
우리 청년시대에는 부모의 사랑보다 형제의 사랑보다 처자의 사랑보다도 더 한층 강의한 사랑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나라와 겨레에 바치는 뜨거운 사랑이다.
나의 우로(雨露)와 나의 강산과 나의 부모를 버리고도 그 강의한 사랑을 따르기로 결심하여 이 길을 택하였다.
-윤봉길 의사 어록중에서-
▲부인 배용순 여사의 묘소가 있는 방향
윤봉길의사 기념관과 충의사 사이에는 보수상 유물전시관이 있다.
조선시대 예산, 덕산 지역 봇짐, 등짐 상인들의 조직인 예덕 상무사로 보부상 조직과 기능, 유품등을 전시해 놓았는데 전국에서 상무사의 전통이 전해 내려오는 고장은 예산이 유일하다고 한다.
밀랍으로 만들어 재현한 짚신장수는 먼 길을 나설 때 새 짚신 한 컬레를 신고 두어 컬레는 허리춤에 차기에 언제나 많은 양을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그 밖에 어린 엿장수, 우리 생활 곳곳에 쓰였던 옹기를 팔던 옹기장수 그리고 시장장면까지 재현되어 있다.
▲전시장내부
겨울방학, 춥다고 움추리고 있는 것 보다 아이들과 함께 충절과 예향의 고장 충남 예산에서 윤봉길 의사의 구국의지와 민족혼이 담긴 전시관을 둘러보며 그의 공훈과 희생정신을 기리는 시간을 가져본다면 좀 더 알찬 방학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윤봉길의사기념관 (041-339-8232)
충남 예산군 덕산면 덕산온천로 183-5
![제4유형](/images/communication/ccl4.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