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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3] 장군의 병을 고친 천년 은행나무

이야기가 있는 충남의 나무③ - 면천 은행나무

2013.11.07(목) 08:21:33탈론(malgmywoo@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충남 당진시 면천면에는 두 개의 명물이 있다. 하나는 충남기념물 제 82호인 면천 은행나무이고 다른 하나는 면천 두견주이다. 모두가 고려 초의 장군이었던 복지겸(卜智謙)과 관련이 있다. 사실 면천이라는 지역은 복지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의 본관이 면천이며 그는 면천 복씨의 시조이기 때문이다.


충남기념물 제82호인 면천 은행나무는 당진 면천의 명물중 하나이다.

▲ 충남기념물 제82호인 면천 은행나무는 당진 면천의 명물중 하나이다.


복지겸 장군의 시호는 무공(武恭)이고 고려 개국공신이다. 궁예(弓裔)의 수하로 태봉(奉封)의 마군(馬軍)장수였는데, 궁예(弓裔)가 횡포해져 민심을 잃자 배현경(裴玄慶) ·신숭겸(申崇謙) ·홍유(洪儒) 등과 함께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王建)을 추대해 고려를 세우게 한 인물이다. 그 뒤에 환선길(桓宣吉)의 반역 음모를 미리 적발해 거사를 막았고 임춘길(林春吉)의 역모도 평정해 개국 초기 나라의 기틀을 잡는데 큰 공을 세웠다. 994년(성종 13)에 태사(太師)로 추증되었고, 태조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다.
 
면천 은행나무는 복지겸의 딸이 그의 집 뜰에 심었다고 전하는데, 왕건이 고려를 개국한 것이 918년이고, 승하한 때가 943년이었으니 아마도 그 즈음의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나무의 수령이 1100여 년 이상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다음과 같다. 은행나무가 있는 면천초등학교 자리는 원래 복지겸의 집터였다고 한다. 전쟁터에서 부상을 입고 고향으로 돌아온 복지겸이 병으로 누워 있었는데 백약이 무효였다는 것. 그래서 그의 딸 영랑(影浪)이 아미산에 올라 백일동안 기도를 드렸더란다.
 
아미산은 미인의 눈썹같이 아름다운 산이라는 뜻을 가졌는데, 예전에는 소이산 또는 소미산으로도 불렀다. 높이는 349m로 당진에서 제일 높다. 예로부터 주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산으로, 아미산 신인(神人)이 중병에 걸린 중국 승상의 아들을 구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어쨌든 영랑이 이 영험있는 산에서 기도를 드리던 중 마지막 날 꿈에 산신령이 나타났다고 한다. 두견주를 빚어 100일 후에 마시고 집 앞에 은행나무 두 그루를 심으면 아비의 병이 나을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는 것이다. 100일간 기도를 드리고 두견주를 100일간 숙성시켜야 하니 가히 200일이 지나야 된다는 얘기인데, 산신령이 시키는 대로 했더니 신기하게도 장군의 병이 치유되었더란다. 면천 두견주와 은행나무의 유래가 한꺼번에 설명되는 전설이다.
 

복지겸의 딸 영랑이 100일 기도끝에 산신령의 계시로 심은 것이 바로 이 면천 은행나무이다.

▲ 복지겸의 딸 영랑이 100일 기도끝에 산신령의 계시로 심은 것이 바로 이 면천 은행나무이다.


그때 영랑이 심었던 은행나무가 바로 면천 은행나무인데, 다른 한편으로 복지겸 은행나무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천년고목이다. 이 나무는 1990년 5월 24일에 충청남도기념물로 지정되었고 면천초등학교에서 관리하고 있다. 이 학교는 1908년 9월 1일 개교한 유서 깊은 학교이다. 개교한지 올해로 벌써 105년이 됐다. 교훈은 '바르게, 알차게, 굳세게'이며 교목은 은행나무이다. 학교 정문으로 들어서면 왼쪽으로는 개교 100주년 기념탑이 있고 오른쪽 동쪽으로 웅장한 은행나무 두 그루가 버티고 서있다.
 

면천 은행나무는 개교 100년이 훨씬 넘은 면천초등학교가 관리하고 있다.

▲ 면천 은행나무는 개교 100년이 훨씬 넘은 면천초등학교가 관리하고 있다.

두 그루 중 하나는 줄기 아래쪽이 심하게 패여서 보형재로 채웠으나 정상적으로 자라고 있고 다른 하나는 별다른 외상없이 생육 상태가 좋다. 신기한 것은 이 나무도 천년의 고령답지 않게 엄청난 양의 은행을 생산한다. 올해도 많은 은행이 이미 바닥으로 떨어져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있다. 나무의 크기는 마치 쌍둥이처럼 닮아 있다. 높이는 각각 20.5m, 21.5m이고 둘레는 6m, 가슴높이 직경은 약 1.9m이다.
 

왼쪽의 나무는 밑둥이 썩어 보형재를 채워 넣었다.

▲ 왼쪽의 나무는 밑둥이 썩어 보형재를 채워 넣었다.
 

오른쪽의 나무는 별다른 외상없이 좋은 생육상태를 보이고 있다.

▲ 오른쪽의 나무는 별다른 외상없이 좋은 생육상태를 보이고 있다.
 

천년의 나무답지 않게 줄기가 무성하다.

▲ 천년의 나무답지 않게 줄기가 무성하다.
 

천년이 넘은 수령임에도 왕성하게 열매를 맺고 있다.

▲ 천년이 넘은 수령임에도 왕성하게 열매를 맺고 있다.
 

두 나무는 마치 쌍둥이처럼 나무의 높이나 어깨높이의 둘레 등이 비슷하다.

▲ 두 나무는 마치 쌍둥이처럼 나무의 높이나 어깨높이의 둘레 등이 비슷하다.

이 나무들은 한일병탄 후 1910년대에 학교 운동장 터를 닦기 위해 성토를 하면서 2~3m 정도가 묻혀서인지 다른 천년 은행나무들보다는 왜소한 편이다. 옛날에 백로가 많이 날아와 장관을 이뤘다고 전해지며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 지정 보호수였다고 한다.
 
이 나무가 초등학교라는 교육기관에서 자라고 보호받는 것도 의미가 있다. 옛적부터 성균관, 향교, 서원 등 교육기관을 행단(杏亶)이라 하고 이곳에는 은행나무를 많이 심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공자께서 천하를 주유하고 고향인 곡부에 돌아와 은행나무 아래에서 강학을 하며 제자들을 길러냈다고 한다. 이러한 유래 때문에 은행나무가 초등학교 안에서 자라고 있는 것은 매우 의미가 깊은 일일 것이다.
 

교육기관에 은행을 많이 심는 것은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서 후학을 길러냈다는 데서 유래한다.

▲ 교육기관에 은행을 많이 심는 것은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서 후학을 길러냈다는 데서 유래한다.

 

은행나무 아래에는 열매가 떨어져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있다.

▲ 은행나무 앞에는 이 은행나무의 유래를 설명하는 안내판이 있다.  

역사가 깊은 학교라서 그런지 몰라도 학교 안에는 또 하나의 오래된 회화나무가 위용을 자랑한다. 이 나무도 수령이 270년이나 되어 보호수로 보호받고 있다. 학교 생기기 훨씬 전에 심어진 나무인데, 공교롭게 회화나무는 ‘학자수(學者樹)’로 취급해 선비가 살던 집에 즐겨 심던 나무다. 면천초등학교는 그만큼 학문과 관련된 나무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셈이다.
 

초등학교 서쪽편으로는 학자수라 불리는 270년 수령의 회화나무가 보호되고 있다.

▲ 초등학교 서쪽편으로는 학자수라 불리는 270년 수령의 회화나무가 보호되고 있다.


면천(沔川)이란 지명은 ‘내가 흘러 가득하다’란 뜻인데, 이 지역의 서북쪽에 있는 산에서 많은 물이 내려와 고이고 바다로 흘러들어갔기 때문에 붙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지역이 하나의 현으로 승격하게 된 것은 고려 충렬왕 때였다. 이 지역의 사람이었던 복규(卜奎)는 복지겸 장군의 후손이었는데, 그가 원주산성 방호별감으로 있을 때 원나라의 반란군의 침입을 무찌른 공을 세워 그의 본관이었던 면천을 현으로 승격시켰다고 한다.
 
이 가을에 면천읍성을 돌아보며 역사를 되새기고 천년의 고목을 감상하는 것도 좋으리라.
 

유서깊은 면천지역을 둘러보고 지역의 역사를 지켜보아온 고목들을 감상하는 것도 좋겠다.

▲ 유서깊은 면천지역을 둘러보고 지역의 역사를 지켜보아온 고목들을 감상하는 것도 좋겠다. 면천초등학교 앞에 있는 각종 유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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