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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군뉴스

?101컷 사진 속에 백제가 살아났다

2007-09-10 | 관리자


사진작가 준초이(55) 씨가 서울 광화문에 있는 주간조선 편집실을 찾은 것은 지난 3월 22일 오후였다. 그의 손에는 빨간 비단 보자기에 싸인 묵직한 상자 하나가 들려 있었다. 보자기를 풀고 상자를 펼쳤다. 금동반가사유상, 백제산경문전, 백제금동대향로…. 백제 문화를 대표하는 유물을 찍은 대형 사진들이 가로 세로 두 번 접힌 채 차곡차곡 포개져 있었다. 일반 종이보다 2배 이상 무거운 수입 용지에 담긴 유물은 모두 41점. 유물과 그에 어울리는 풍경을 합성한 사진, 하나의 유물을 다양한 각도로 포착한 사진 등 총 101장의 사진이 주제별로 정연하게 정리돼 있었다. 가로 450㎜, 세로 580㎜, 무게 20㎏, 가격 200만원, 초판 발행 부수 500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선보이는 최고급형 도록(圖錄) ‘백제’(국립부여박물관 편, 한길사)였다.



“기획에만 6개월, 촬영하는 데 꼬박 1년이 걸렸습니다. 거의 탈진 상태예요.” 실제로 준초이씨는 다소 지쳐 보였다. 그는 이번 작업을 위해 전국을 세 번이나 돌았다. 주요 작업 무대는 충남 공주와 부여 일대였지만 유물의 느낌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풍광을 잡아내기 위해 이름 모를 산과 계곡, 바다를 누볐다. 향로에서 피어나는 연기와 운무(雲霧)의 이미지를 연결하기 위해 산 속에 웅크리며 지내다 비 온 뒤 구름 걷힌 때를 포착해 셔터를 누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백제’에 실린 사진들은 한 장 한 장이 그대로 어엿한 작품이다. 빛과 여백, 시선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그의 카메라 워크는 박물관 속 유물 하나하나에 생명력을 부여했다. 실물을 보면서도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문화재의 새로운 표정에 감탄하게 하고, 그 때문에 박물관을 찾아 진품을 보고 싶다는 욕심을 느끼게 한다. 묘한 책이다.



사실 이번 작업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상업 사진과 인물 사진 분야에서 주로 활동하던 준초이씨가 처음 유물 사진 촬영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7~8년 전, 디자이너 정준씨와 함께 경남 국립진주박물관을 찾았을 때다. “당시 정준씨와 친분이 있던 이내옥 관장(현 국립중앙박물관 유물부장)이 정준씨와 제게 ‘박물관 일을 좀 도와 달라’고 부탁을 해왔습니다. 예산이 넉넉지 않아 힘들어 하면서도 사진 수준만은 최고를 고집하더군요. 그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전 원래 사진작가로서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지만 이 관장의 열정에 감동 받아 실비 정도만 받고 대여섯 컷의 사진을 찍어주었죠.”



그로부터 3~4년 후, 충남 국립부여박물관으로 근무지를 옮긴 이내옥 관장은 박물관의 새 도록 제작을 앞두고 다시 ‘사진작가 준초이’를 떠올렸다. 그러나 준초이씨는 이 관장의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작업에 드는 품과 시간에 비해 받는 돈이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이 관장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도록 제작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며 협조를 요청하는 한편, 준초이씨를 끈질기게 설득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이 관장이 지역 향우회까지 쫓아다니며 애쓰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부여군이 1억원이라는 거금을 내놓았다. 준초이씨도 생각을 바꾸었다. 그는 친하게 지내던 김언호 한길사 사장을 설득해 “제대로 된 도록 한번 만들어보자”며 작업에 끌어들였다. 한길사가 합류하며 도록 작업은 고급판 ‘백제’와 보급판 ‘백제의 미’(216쪽, 3만5000원)로 이원화됐다. 삼성그룹의 기업광고 작업을 하며 알게 된 디자인업체 인터그램그래픽스의 안동민 사장도 합류했다. 그렇게 ‘이내옥(기획)·준초이(사진)·김언호(출판)·안동민(디자인)’의 ‘드림팀’이 결성됐다. ‘백제’는 그들이 1년 반 동안 쏟아 부은 돈과 시간, 노력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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