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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아산의 과학자 장영실

충남 아산시 배미동 5-4

2024.03.01(금) 16:43:24 | 춘당 (이메일주소:yosaebi45@daum.net
               	yosaebi45@daum.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자세한 생몰 년대는 알 수 없으나 세종때의 과학자였던 장영실은 그의 조상이 아산에 근거를 둔 아산 장(蔣)씨로 아산과는 뿌리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 시조는 중국 송나라때 귀화한 慶綠大將軍 蔣公 壻(경록대장군 장공 서)에 근원을 둔다. 아버지는 전서(典書)를 지낸 장성휘(蔣成暉)이고 어머니는 관기였다. 장영실의 청년기는 동래현 관청의 노비였으나 어릴때 부터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재주가 뛰어났다. 세종의 즉위 후 귀천에 구애받지 않고 재예가 뛰어 난 인재 등용을 실시 하던 중 그도 재주가 알려져 궁궐에 들어가게 되었고
1421년(세종 3년) 윤사웅, 최천구 등과 함께 명나라로 파견되어 천문기기 연구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
명나라에서 귀국한 계묘년 1423년(세종 5년)에 세종은 장영실을 면천(免賤) 시켜 상의원별좌에 제수하려 하였으나 이조 판서 허조의 반대로 제수치 못하다가 후일에 상의원별좌(尙衣院別座)에 임명하였다.
장영실의 이름이 실록에 처음 등장한 것은 1425년(세종 7년)으로 직함은 사직(司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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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 상

장영실 과학관은 충청남도 아산시 실옥로 222에 위치하며 바로 옆에 그린타워와 생활쓰레기 처리장 시설이 함께 있다. 과학관 내부에는 세종과 정조 시대의 발명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어린이들을 위한 각종 놀이 시설과 체험시설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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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 과학관

그 중에서 측우기를 비롯한 장영실의 발명품들이 다수 전시 되어 있는데 자동으로 움직이는 물시계 자격루를 중심으로 물을 활용한 체험형 콘텐츠와 바람의 세기와 방향을 알 수 있는 풍기대, 그리고 비의 양을 측정하는 측우기, 해의 그림자로 계절과 시간을 알 수 있는 앙부일구 등의 다양한 콘텐츠를 체험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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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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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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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의
 
장영실의 여러가지 빛나는 과학적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의 출생과 사망은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다만 이를 안타깝게 여긴 후손들이 뜻을 모아 그의 묘를 조성하고 그를 흠숭하는 재실을 건립하는 사업을 펼치고 있는데 장소는 그의 조상묘가 있었던 아산시 인주면 문방리에 위치하고 있다.

아산의과학자장영실 8장영실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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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 장영실 추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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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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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 묘

문중 사람의 말을 들어 보면  그의 묘 자리는 바닷물이 들어오는 산중턱의 조상묘에 함께 있었다고 하니 현재의 자리가 분명하긴 하나 몇 백년 동안 돌보는 이가 없어 모두 훼실되고 유품조차 남아 있지 않아 정부의 지원도 받을 수 없다고 한다. 다행인 것은 후손들의 성금으로 묘지와 재실을 건립하여 올해는 제대로 된 제향을 올릴 예정이라니 성원을 보내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될 것 같다.

「참고로 아산 蔣씨 세거촌은 멀리 경상도의 청도와 의성이라고 하며 묘지가 있는 이 곳은 장씨들이 전혀 살고 있지 않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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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장씨 시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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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宋金紫光錄大夫神慶衛大將軍高麗牙山君蔣公墓道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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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묘는 둘레석은 없지만 5~6m 높이에 봉분 둘레는 20여m로 왕릉같은 규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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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장병휘의 내력과 장영실의 업적을 기록한 비문

묘역 아래의 문방리 마을에 '아산장씨대종회' 간판이 붙은 집이 있어 기웃거려 봤더니 마침 당진에 산다는 문중 사람이 재실 공사 뒷정리를 하러 왔다가 여러가지 문중 소식을 알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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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단계에 있는 재실 공사는 통로 정비와 뒷정리만 남겨 놓은 것 같은데 장비 없이 인력으로 하려니 진전이 없다고 문중 사람은 한탄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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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始祖牙山君蔣壻先生有墟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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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牙山君蔣公墓所守護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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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 바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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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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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실(齋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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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속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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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공사를 남겨 놓은 부속 건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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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실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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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 과학관에 세워져 있는 장영실의 발명품 목록들

장영실은 세종의 신임을 받아 발명품 개발에 몰두할 수 있었는데
먼저 1432~1433년 목제 '간의'와 '혼천의' 두 관측기계를 완성하였고, 1437년(세종19) 완성된 '천문관측의기'로 '대간의' '소간의'를 비롯하여 해시계인 '현주일구' '천평일구' '앙부일구' '일성정시의' '규포' 등을 만들어 냈다. 또한 1434년(세종 16)에 완성된 수력에 의해 자동으로 작동되는 물시계인 '자격루(自擊漏)'를 만들었다. 김빈과 함께 제작한 이 자동 시보 장치는 중국과 아라비아의 자동 물시계를 비교 연구하여 새로운 형태의 물시계를 만든 것이다. 시간에 따라 종과 징, 북이 저절로 울리고 인형이 시간을 알려주는 표를 들고 나타난다

또한 1438년(세종 20)에 완성하여 흠경각에 설치된 옥루는 자격루와 혼천의를 결합한 천문기구로 독창적인 천상(天象) 자동 물시계였다.

1441년(세종 23) 세종으로 부터 강우량을 측정할 수 있는 기기 제작 명을 받아 세계 최초의 강우량 측정 기기인 측우기와 수표를 발명하였다. 그로 인해 농업을 과학화 하여 강우량을 예측해 수해를 막을 수 있었고
장영실은 그 공으로 정 3품 상호군으로 특진되었으나 이듬해 장영실이 감독하여 제작한 임금의 안여(安與/가마)가 부서지는 사고가 발생하여 불경죄로 파직 당하였다.
이후의 장영실 기록은 찾을 수 없으나 1450년(세종 32) 세종대왕의 승하 이전에 이미 세상을 떠났을 것으로 추측한다.

비범한 재주로 여러가지 발명품을 만들어 낸 장영실은 천민에서 조선의 과학을 일궈 낸 특출한 인물로 그의 출생과 깊은 연관이 있는 아산의 자랑스런 인물이 아닐 수 없다. 자라나는 어린이를 비롯하여 아산 시민 모두가 그의 업적을 기리고 그의 과학 정신을 계승해 나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장영실과학관
충남 아산시 싱옥로 222 아산환경과학공원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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