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초대의장이자 임시정부 주석으로 활약한 독립운동사의 거장, 석오 이동녕선생의 삶과 사상을 볼 수 있는 기념관과 선생이 태어난 생가를 다녀왔다.
![애국선열의숨결석오이동녕기념관생가지 1](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40215/IM0002055291.jpg)
1869년 10월 충남 천안 목천읍 동리에서 태어난 선생은 독립협회 가입을 시작으로 언론교육 활동, 청년회 조직 등을 통해 개화민권,항일구국운동을 전개하면서 조국의 독립과 민권국가 건립에 평생을 바쳤다.
![애국선열의숨결석오이동녕기념관생가지 2](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40215/IM0002055292.jpg)
석오 이동녕 기념관은 크진 않지만, 석오와의 만남1, 석오와의 만남2, 석오이야기,구국의 여정, 나라사랑(영상실), 포토존 등으로 알차게 꾸며져 있다.선생의 흉상과 초상화를 시작으로 귀중한 유품등이 전시되어 있는 전시실로 발걸음해본다.
![애국선열의숨결석오이동녕기념관생가지 3](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40215/IM0002055293.jpg)
산에서 흐르는 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뜻의 '산류천석', 조국광복의 염원을 담은 '광명'과 '대의'란 글은 선생이 평소 즐겨 쓰셨던 글이라고 한다.
![애국선열의숨결석오이동녕기념관생가지 4](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40215/IM0002055294.jpg)
임정 국무회의 기념사진, 임정요인 가족들과 중국인 지원자들과의 한컷, 그리고 석오 이동녕 선생의 국장 모습을 사진으로 만날 수 있다.
![애국선열의숨결석오이동녕기념관생가지 5](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40215/IM0002055295.jpg)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안팎으로 이끄시며, 죽는 날까지 독립을 향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신 애국혼을 느끼며
![애국선열의숨결석오이동녕기념관생가지 6](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40215/IM0002055296.jpg)
![애국선열의숨결석오이동녕기념관생가지 7](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40215/IM0002055297.jpg)
선생의 생애와 젊은이들이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담은 영상을 감상해본다.
![애국선열의숨결석오이동녕기념관생가지 8](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40215/IM0002055298.jpg)
전혀 생각지 못했는데 잠시나마 독립운동가가 될 수 있는 포토존을 만났다.
![애국선열의숨결석오이동녕기념관생가지 9](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40215/IM0002055308.jpg)
![애국선열의숨결석오이동녕기념관생가지 10](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40215/IM0002055307.jpg)
주목받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독립운동한 여성 독립운동가가 되어 짝꿍과 포토존에서 추억의 기념사진을 남겨보았다.
![애국선열의숨결석오이동녕기념관생가지 11](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40215/IM0002055310.jpg)
기념관 옆으로는 충청남도 기념물 제72호 문화재인 생가지와 선생께서 독립을 향한 강한의지로 자주 인용하셨다는 '산류천석'을 세긴 휘호석이 있다.
![애국선열의숨결석오이동녕기념관생가지 12](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40215/IM0002055311.jpg)
일제강점기 항일 독립군을 양성하던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했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으로써 독립운동에 매진하신...목천읍의 생가지는 이동녕 선생이 유소년기를 보낸 곳이다.생가 마당으로 들어서면 의자에 앉아 있는 젊은 이동녕 선생의 동상과 우물을 마주한다.
![애국선열의숨결석오이동녕기념관생가지 13](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40215/IM0002055312.jpg)
![애국선열의숨결석오이동녕기념관생가지 14](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40215/IM0002055313.jpg)
선생 생가지는 1989년 4월 20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72호로 지정되었단다.
건물의 배치 구조는 ㅁ자형의 안채와 조금 떨어져 있는 일자형의 대문간채가 어울려 ㄷ자형을 이룬다.
![애국선열의숨결석오이동녕기념관생가지 15](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40215/IM0002055314.jpg)
생가는 세월의 흔적이 내려 앉지 않았지만, 곳곳에서 선생의 일대기와 업적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물과, 바쁜일상 잠시 쉬어가라는 의미인지 책방까지 만날 수 있다.
![애국선열의숨결석오이동녕기념관생가지 16](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40215/IM0002055315.jpg)
![애국선열의숨결석오이동녕기념관생가지 17](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40215/IM0002055316.jpg)
![애국선열의숨결석오이동녕기념관생가지 18](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40215/IM0002055317.jpg)
생가를 한바퀴 돌다보면 유독 눈에 들어오는 은행나무 한 그루를 볼 수 있다.
보호수로 지정된 500살이 넘은 이 은행나무는 여느 은행나무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대부분의 나무들이 줄기를 하나 뻗어내 가지를 키우지만, 이 은행나무는 뿌리에서 여러 개의 줄기가 나와 각기 다른 모양과 크기로 건재함을 자랑하고 있다.
![애국선열의숨결석오이동녕기념관생가지 19](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40215/IM0002055318.jpg)
이동녕 선생의 유년을 지켜봤을 은행나무를 쳐다보고 있자니,독립을 위해 애쓴 수많은 애국선열들이 떠올라 감사함을 넘어 코끝이 찡해온다.
![애국선열의숨결석오이동녕기념관생가지 20](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40215/IM0002055329.jpg)
급성 폐렴으로 72세에 생을 마감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독립운동에 혼신의 힘을 쏟은 이동녕 선생에 대해 많이 알아가는 귀한 시간 가져보았다.
석오이동녕기념관충남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동리4길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