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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칼럼

기호유학의 특징과 유교문화

내포칼럼 - 정재근 한국유교문화진흥원장

2023.08.24(목) 22:01:57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deun127@korea.kr
               	deun127@korea.kr)

기호유학의특징과유교문화 1

최근 중국이 한국에 대한 단체관광을 허용하고 한국인 비자발급 절차도 간소화한다는 소식이 있었다.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론 중국의 결정 하나하나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참 크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됐다. 충남은 황해와 접해있어 바닷길을 통한 타 문명과의 접촉이 늘 활발했다. 특히 고대부터 중국과의 교류가 주를 이루었으며, 이는 물류뿐만 아니라 정신사상까지 포함하였다. 

중국 공자의 사상인 유학이 우리나라에 언제 전해졌는지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대체로 삼국시대에 수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충남지역의 유학 연원을 살펴보면 일찍이 백제시대 오경박사 제도나 일본에 논어와 천자문을 전한 왕인박사의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고려말 안향과 함께 성리학의 보급에 크게 기여한 보령의 백이정, 당시 사상계를 주도한 서천의 이색, 조선 초기 아산의 맹사성, 홍성의 성삼문 등이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기호유학이라는 말은 언제부터 생겨난 것일까? ‘기호’는 경기 지역과 호서(충청도) 지역을 합쳐 부르는 명칭이다. 경기도와 충청도 지방의 유학이라는 말이다. 왜 충청도와 경기도가 한 묶음으로 엮인 것일까? 이는 조선 중기 이후 유학의 발전과 학파의 형성에서 비롯되었다. 

기호유학은 크게 율곡학파와 우계학파 양 날개로 발전해 왔다.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의 주요 거처가 경기도였고 그의 제자들은 주로 충청도 출신이었기에 후대 이 두 지역을 합쳐서 기호학파라고 부르게 됐다. 이는 한국 유학사를 이야기할 때 주로 거론되는 경상도 영남학파와 구분하기 위한 지역적 구분일 뿐이다.

율곡학파는 이이의 학설을 계승하려는 김장생, 송시열 계열이 조선 후기까지 지속됐다. 우계학파는 성혼의 학통이 그의 사위인 윤황에게 전해지고 이후 윤선거, 윤증으로 계승되었다. 그밖에 화담 서경덕 계열의 토정 이지함, 박지계 계열의 권득기 등이 있다. 이러한 여러 학파와 계열의 유학자들은 성리학·예학·의리학·기학·실학·양명학·역학·심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연구했다. 

조선시대 중후기 충청지역은 동인, 서인, 남인, 북인이라 불리는 4색 당파가 모두 존재하였고, 그 가운데 율곡계 서인 노소론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었다. 학문이 바로 정치로 연결되는 조선시대 기호유학의 학문적 다양성은 바로 황해를 통한 지리적 개방성과 수용성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다양성과 개방성 이외 기호유학을 대표하는 특징은 바로 예학에 관한 연구다. 율곡의 학통을 이은 사계 김장생은 ‘조선 예학의 비조’로 불린다. 예학은 주로 가례라고 하는 관혼상제 4가지에 대한 예법을 말한다. 김장생과 그의 제자들은 예법에 대한 궁금증을 질문과 대답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였고 이러한 전통은 19세기까지 이어졌다. 우리가 고루하고 변화를 거부하는 이미지로 생각한 유학자들이 한편으로는 현실의 문제를 끊임없이 드러내고 바로잡고자 노력한 존재였다.

오늘날 디지털 세상에서 젊은이들은 물질주의에 물들었고 인성교육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아 예의를 모른다고들 한다. 

하지만 MZ 세대에 대한 부분적이고 왜곡된 색안경일 수도 있다. 기호유학의 특징은 앞서 언급했듯 다양성과 개방성이다. MZ 세대를 들여다볼 때 묘하게 겹치는 면이 있다. 개방성, 공유문화, 그리고 개성과 다양성에 대한 존중들. 이제 우리 유학이라는 학문과 유교문화에 대해 다시,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 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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