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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무령왕과 왕비, 금동신발을 신고 행복한 길을 함께 걸어가다

무령왕 서거·성왕 즉위 1500주년, 찬란한 백제 역사 속으로 11) 금동신발

2023.04.27(목) 11:50:24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deun127@korea.kr
               	deun127@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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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과 왕비의 사랑은 부러운 일이에요. 살아 생전에도 죽은 후에도 함께 하고 있으니까요. 두 분은 두려운 저승길도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갔어요. 무령왕과 왕비의 신발을 보시죠. 참 화려하네요. 금동으로 만든 신발이랍니다. 왕과 왕비의 신발엔 꽃과 봉황이 각기 표현된 육각형의 멋진 무늬가 반복되어 있어요.

 


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왕과 왕비의 발 크기가 크다고요? 정말 크죠. 신발의 길이가 350㎜나 됩니다. 왕과 왕비는 발이 컸던 걸까요? 학술적으로 이러한 신발은 평소에 신던 것이 아니라 장례용품으로 알려져 있어요. 왕과 왕비의 시신을 안치한 후 금동신발 속에 나무껍질과 천을 깔창으로 깔아서 발과 금속이 직접 닿지 않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또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아, 스파이크 신발이라고요? 그 말도 맞아요. 왕과 왕비의 신발 바닥에 10개의 못이 박혀 있죠. 이러한 신발의 용도를 추측할 수 있는 그림이 있어요. 고구려 고분벽화인데요. 고분벽화에 이러한 신발을 신은 말 탄 무사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답니다. 아마 기마부대의 전투용 신발이었나 봅니다. 

그러나 저 충나미는 왠지 저승길과 관련된 게 아닐까 상상하게 됩니다. 축구화를 생각해 보세요. 잔디에 미끄러지지 말라고 신발 바닥에 스파이크가 있잖아요. 금동신발도 그런 용도가 아닐까요? 저승길이 차가운 얼음바닥처럼 미끄럽기 때문에 무사히 걸어갈 수 있도록 신발에 못을 박았나 봐요. 다른 이유는 여러분 상상에 맡겨 보죠.  

이렇게 생각해 보니, 금동신발은 죽은 이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이승을 떠날 때 함께하는 유물인 셈이네요. 무령왕과 왕비는 멋진 금동신발을 신고 함께 저승으로 걸어갔을 겁니다. 함께 하는 저승길은 행복했겠죠. 생각해보면 저승길도 이승의 시골이나 도시처럼 크고 작은 길로 이어져 있을 겁니다. 그 길을 거쳐 낯선 이도 만나고 신라인도 고구려인도 만났을 겁니다. 저승길은 이승과 달리 사람과 사람을 맺어 주는 곳입니다.  

그 길이 이승처럼 물고 뜯는 싸움의 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어요. 사람끼리 흘기고 미워하는 증오의 길이라고도 생각할 수도 없죠. 이승처럼 백제인과 신라인, 그리고 고구려인이 뜻이 나와 같지 않다고 해서 짐승처럼 주리를 트는 그런 길이라고는 차마 상상할 수 없어요. 그 길에선 삼국의 모든 이는 미워하고 싸우기 위해 마주친 원수가 아니라, 서로 의지해 사랑하려고 아득한 옛적부터 찾아서 만난 이웃들입니다. 저승길은 누군가의 뒤를 따라 걸을 수도 있고, 누군가와 함께 걸을 수도 있어요. 흔히 좋은 신발은 좋은 곳으로 데려다 준다고 하지요. 무령왕과 왕비는 금동신발을 신고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그 길을 걸어갔을 겁니다. 
/이경복 충남역사문화연구원 내포문화진흥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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