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정책/칼럼

애장처럼 남아 있는 세교역 옛 자리

윤성희의 만감(萬感)

2022.10.04(화) 13:51:31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deun127@korea.kr
               	deun127@korea.kr)

세교역 옛 자리.

▲ 세교역 옛 자리.



시인 이심훈을 ‘장항선의 시인’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2013년에 이미 ‘장항선’이라는 시집을 냈고 작년에는 ‘느림과 기다림’이라는 꾸밈말을 얹어 ‘장항선 인문학 기행’을 펴냈다. 장항선에는 크고 작은 역마다 절절한 애환과 추억이 실려 있을 것이다. 시인은 그것을 시의 언어로 포착해냈고 거기에 정서적 깊이를 부여했다.

장항선은 천안역-온양온천역 구간을 시작으로 하여 충남선이라는 이름으로 1922년에 부분 개통되었다. 장항선 100년의 역사 속에서 어떤 역은 확장되었고 어떤 역은 이전되었으며 어떤 역은 이름을 바꿨다. 또 어떤 역은 역사(驛舍)만 덩그러니 남아서 풍상 앞에 놓인 세월의 흔적만 보여주고 있다. 

장항선의 간이역이었던 세교역은 또 다른 풍경으로 남아 있다. 1967년 영업을 시작해서 1974년에 문을 닫았으니 막내로 태어나서 일곱 살에 죽은 장항선의 아픈 손가락이다. 직선화된 1.5km 너머에 아산역으로 이름을 바꿔 앉히고 세교역 그 자리에는 애장을 치러주듯 폐선을 남겨두었다. 100미터 남짓의 옛 철길과 몇몇 조형물, 노거수 두어 그루가 실물 흔적을 상기시킨다.

시인은 과거의 시간 속에 박제되어 있는 세교역을 불러낸다. “고층 아파트에 둘러싸인 틈바구니/오목눈이 둥지처럼 우묵하기만 한/간이역 하나쯤 누구 가슴에나 있지”(‘세교역’ 일부). 시인의 표현대로, 세교역은 ‘오목눈이 둥지’처럼 옴팍 들어간 위치에서 세월을 피해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세교역 옛 철길은 세상의 궤도에서 분리된 채 오늘의 속도를 뒤에서 천천히 바라보는 듯하다. 그러나 그 자신도 한때는 빠름의 상징이었다. 영국에서 처음 열차가 운행되었을 때 시속 35마일(시속 56km)의 속도는 사람들을 경이와 전율 속으로 몰아넣었다. 시인 하이네가 “철도를 통해서 공간은 살해당했다”고 선언할 만큼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흔들렸고 인간의 경험이 바뀌게 되었다.

축지법을 쓰는 것으로 여겨지던 저 옛날 열차의 빠르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우리에게는 거의 기어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속도다. 그러나 나는 오늘 세교역 옛 자리 장재울 공원에 앉아서, 속도에 강박되지 않은 게으른 열차 하나가 덜컹거리며 지나가는 마음속 풍경 하나를 수확한다.
/윤성희(문학평론가)


 

도정신문님의 다른 기사 보기

[도정신문님의 SNS]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