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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칼럼

정주영 그리고 ‘임정의 어머니’ 정정화

생생현장리포트-김동근무한정보 기자

2022.10.04(화) 09:32:56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deun127@korea.kr
               	deun127@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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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군은 ‘매헌 윤봉길 의사’의 고장이다.

꼭 90년 전인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 홍커우공원 전승기념식(천장절)에서 일제의 수뇌부를 향해 폭탄을 던져 침략의 주범인 시라카와 대장 등을 처단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항일독립운동가.

올해는 제77주년 광복절이자, 그가 같은 해 12월 19일 가나자와 교외 육군형무소 공병작업장에서 십자가형틀에 묶인 채 25살 나이로 총살을 당한 ‘순국 90주기’다.

예산군청 앞 비석군. ‘백성을 자애롭게 여기고, 청렴하고, 고결하여 그 덕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는 설명과 함께 정낙용·주영 부자의 영세불망비와 청덕선정비가 서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평화의 소녀상’과는 불과 200여미터 거리다.

이들은 누구일까? 정낙용은 일제가 1910년 10월 남작 작위, 1911년 1월 은사공채 2만5000원, 1912년 8월 한국병합기념장을 하사한 인물이다. 

장남인 정주영은 작위를 승계해 1915년 9월 조선총독부가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고 시정사업을 선전하기 위해 연 ‘시정5년기념 조선물산공진회 경성협찬회의’ 특별회원으로 기부했다. 

11월에는 ‘다이쇼천황 즉위기념 대례기념장’을 받았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물사전에 이름을 올린 고관대작이다.

그리고 정주영의 딸 ‘수당 정정화’. 1900년 8월 아버지가 대술 시산리로 낙향해 우리지역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항일독립운동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어머니’, 김구 선생은 그를 ‘한국의 잔다르크’라고 칭했다.

1919년 3·1운동 직후 상하이로 건너가 1930년까지 국내를 오가며 거액의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해 임시정부에 전달했다. 

1934년 한국국민당 입당, 1940년 한국독립당 창당요원·한국혁명여성동맹 조직, 1941년 3·1유치원 교사, 1943년 대한애국부인회 참여…. 정부는 1982년 대통령표창에 이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다시 군청 앞 비석군. 군행정은 조선총독부에 부역한 정낙용·주영 부자의 영세불망비와 청덕선정비 앞에 기존 안내문을 철거한 뒤 전문가 자문을 거쳐 그들의 친일행적을 알리는 안내판을 설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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