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금산군 여행 중 만난 제원면 천내리의 용호석은 강한 인상을 심어 주었습니다.
이런 한적한 들판에 보기 드문 고려시대의 석조물이 숨어 있다니 믿기지 않을 정도였지요.
▲ 금산 천내리 용호석서로 떨어진 곳에 따로 서 있는 용과 호랑이의 모양을 한 조각품은 마을 사람들의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 제원대교 옆 천내나루 표지석그런데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내비는 제원대교를 건너 천내리에 이르자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하며 안내를 종료합니다.
어디에도 용호석에 이르는 이정표는 보이지 않았고 인적도 드물어서 천내리 경로당에 들르니 어르신 한 분이 친절히 안내를 해 주셨습니다.
▲ 천내리 용석 비각천내리 용석 비각은 천내나루 표지석이 있는 곳에서 도로를 건너 제방 아래 인삼밭에 숨어 있는 듯 보였습니다.
▲ 천내리 용석 비각처음에는 이 비각에 용석과 호석이 함께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용석 하나만 덜렁 놓여 있습니다.
▲ 천내리 용석 비각 속의 모습용호석은 고려말 공민왕의 능묘석으로 건립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고려 말 홍건적이 침입했을 때 안동으로 피란 온 공민왕이 지관에게 자신의 능묘를 정하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지관이 금산 동쪽 20리 지점으로 태백산의 지맥이 떨어진 곳에 명당이 있다고 하자 공민왕은 필요한 석물을 갖추도록 했습니다. 그것이 지금의 용호석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공민왕이 개경으로 환도한 뒤 피살되면서 방치되었다고 합니다.
천내리에서는 매년 정월 초사흗날 자정에 산신제를 지낸 뒤 정월 열나흗날 저녁에 용호석제를 지냈으나 중단되었습니다.
▲ 천내리 용석용석은 70×80㎝가량 되는 화강석에 조각되었습니다. 구름 문양이 소용돌이치는 돌기 사이에 꿈틀거리며 승천하는 용의 모습이 역동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으며, 사슴뿔 모양의 수염이 세밀하게 조각되어 있습니다.
▲ 천내리 호석 비각천내리 용석 비각에서 금강 제방을 따라 230m 떨어진 들판에 호석을 모신 비각이 있습니다.
▲ 천내리 호석 비각호석은 110×80㎝의 네모난 받침돌 위에 앞발을 세우고 앉아서 포효하는 호랑이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 천내리 호석두툼하게 융기된 곡선과 원형을 교대로 조각하여 털 무늬를 표현하였습니다. 호랑이의 몸은 서쪽, 머리는 북쪽을 각각 향하고 있습니다. 왼쪽 발에 꼬리가 감긴 채 잔뜩 힘이 들어간 것은 수호신으로서 긴장을 늦추지 않은 모습입니다.
천내리 용호석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습니다.
국가지정 문화재로 지정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진귀하게 보였습니다.
금산군 제원면 일대에는 고인돌이 몇 기 있다고 하여 어렵사리 찾아가 보았습니다.
▲ 금산 용화리 고인돌 가는 길금산 용화리 고인돌을 목적지로 하여 차를 몰았으나 어느 문중의 효자비각 앞에서 멈춥니다.
▲ 용화리 고인돌효자비각 옆으로 나 있는 산길을 따라 200여m쯤 올라가니 평편한 구릉에 묘소가 몇 개 있고 주변에 넓적한 바위 세 개가 군데군데 있었습니다. 고인돌이라는 표지판이 없으면 자연스럽게 널려 있는 바위로 생각하고 말았을 정도로 별다른 특이점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금산용화리 고인돌은 확인된 것만 3기이며 모두 덮개돌만 남아 있습니다. 크기도 150~280cm 정도로 비교적 작은 편이며, 고인돌 부근에서 20여 점의 돌칼과 돌화살촉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 천내리 고인돌 - 출처/문화재청 천내리 고인돌은 용호석이 있는 곳에서 멀지 않다고 하여 찾아보았으나, 결국 찾지 못하고, 문화재청의 문화유산 검색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지요. 안내판 등 정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내리 고인돌은 모두 12기로 천내강을 굽어보고 있다 합니다. 천내리 고인돌은 개석식 또는 바둑판식이며, 200cm 정도 크기로 비교적 작은 편인데, 주변에서 돌칼, 돌화살촉과 붉은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고 합니다.
금산 제원면 일대에 산재해 있는 문화유산 중에서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용호석과 선사시대의 무덤인 고인돌 등을 찾아보고 조상들의 슬기와 지혜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