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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必死則生(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의 정신으로 조선을 지킨 바다의 영웅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 4.28.

2022.04.25(월) 09:53:27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scottju@korea.kr
               	scottju@korea.kr)

충무공 이순신 장군 영정

▲ 충무공 이순신 장군 영정

 

1598년 8월. 7여 년간의 전란을 뒤로 하고 일본이 철군을 준비한다는 정보가 입수됐다. 끝내 버티고 살아남았다는 안도의 한숨 대신, 이순신은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기나긴 세월 왜군에 무참히 짓밟힌 백성을 위해서라도 적군이 마음 놓고 본국으로 돌아가게 할 수 없었다. 이윽고 조선 수군은 명나라와 연합 수군을 이뤄 일본군의 해상 퇴로를 봉쇄하기로 결심한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전쟁 속에서 자신의 안위를 뒤로한 채 나라와 백성을 위해 격전의 바다로 나아갔던 조선의 영웅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삶 속으로 들어 가봤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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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의협심이 강하고 용감한 모습 두드러져

함경도 재임 시절 여진족 토벌로 육지서 강한 면모
군사훈련·시설보강 등 만반의 준비로 왜란 연전연승
철군하는 일본군 퇴로 봉쇄하고 노량서 적군 섬멸



이순신은 1545년 4월 28일(음력 3월 8일) 서울 건천동, 지금의 인현동에서 4형제 중 셋째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의협심이 강하고 용감한 모습을 보였다. 그의 조카 이분이 쓴 「행록」에는 ‘어려서 전쟁놀이를 하는데 모든 아이가 반드시 공을 장수로 떠받들었다.’는 말이 전해진다.

문신 집안에서 태어난 이순신은 혼인 후 장인 방진의 영향으로 무관으로서 나라에 충성할 것을 다짐하고 무신의 길을 걷게 된다. 1572년 28세가 되던 해 치른 무과시험에서 기마자세를 취하다 말에서 떨어졌다. 그는 왼쪽 다리가 골절됐음에도 불구하고 옆에 있던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다리를 동여매고 끝까지 시험에 응했다. 이로부터 4년 뒤 무과 급제에 성공한다.

이순신 장군은 바다에서뿐만 아니라 육지에서도 강한 면모를 보였다. 1587년 함경도 조산보 만호와 녹둔도 둔전관을 겸했을 때 여진족들의 잦은 침입으로 백성들이 피해를 입자 이를 토벌하고 포로를 구출하는 등 전과를 올렸다.

이순신은 임진왜란 발발 14개월 전인 1591년 2월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부임한다. 공은 장차 일본군이 쳐들어올 것을 내다보고 군사 훈련과 시설보수에 나선다. 왜란 당시 여러 해전 승리의 주역이었던 거북선도 이때 만들어졌다.

만반의 준비를 갖춘 덕분에 이순신은 왜란 발발 후 여러 해전에서 거듭 승리한다. 5월 옥포 앞바다에서의 첫 승리를 거둔 뒤 7월 한산도 대첩(임진왜란 3대 대첩)에서 적선을 크게 격퇴해 왜군의 전의를 상실시켰다.

장수로서 그의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1597년 2월 선조는 “이순신을 잡아오라”고 명령한다. 조정을 기망하고 적을 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정치적인 이유로 억울하게 죄인이 된 그는 도원수 권율 막하에서 백의종군을 하게 된다.

이후 칠전량에서 원균이 일본군에 대패하자 조정에서는 이순신을 다시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된 그는 칠전량의 대패에서 남은 12척의 배를 끌고 명량으로 출전하기 전 부하 장병들을 불러 모아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必死則生 必生則死)”라는 말로 독려하고 전투에서 스스로 맨 앞에 나가 싸웠다. 13척의 배로 130척이 넘는 적선을 무찌른 울돌목의 해전 ‘명량해전’은 세계 수군 역사에서도 길이 회자된다.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일본군은 철군 준비에 들어갔다. 이순신은 이를 보고만 있지 않았다. 명나라 해군제독 진린을 설득, 조·명연합수군은 일본군의 해로를 봉쇄하고 섬멸했던 ‘노량해전’에 돌입한다.

같은 해 12월 16일(음력 11월 19일) 연합수군은 노량해협으로 오는 일본군 함대와의 치열한 접전 끝에 대승을 거뒀지만, 이순신은 적의 총탄을 맞아 전사하고 만다. 하늘의 큰 별이 바다에 떨어졌으니 이순신이 54세 되던 해였다. 이 해전을 마지막으로 7여 년간의 임진왜란도 막을 내리게 된다.
/현충사 충무공이순신기념관 제공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중에 기록한 난중일기

▲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중에 기록한 난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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