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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1919년 4월 11일. 이동녕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대한민국은 주권재민 민주공화국’임을 선포하다

2022.04.11(월) 11:56:28 | 장군바라기 (이메일주소:hao0219@hanmail.net
               	hao021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충남 천안시 목천읍 석오 이동녕 생가 전경.

▲ 충남 천안시 목천읍 석오 이동녕 생가 전경.


대한민국은 주권재민(主權在民)의 민주공화국입니다. 우리나라 헌법 제1조에 규정돼 누구나 알고 있고 당연히 받아들이는 내용으로 100여 년 전 만들어졌습니다, 정확히는 3.1운동이 일어난 1919411일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제정됐습니다.

 

당시 조선 8도와 국외 독립운동가 등 각계각층을 대표한 29명의 독립운동 지도자들은 국회역할의 임시의정원을 구성해 군주제(대한제국)를 폐지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하는 헌법을 제정 반포했습니다. 영토를 대한제국의 판도로 정하고 민주주의 정신을 바탕으로 인민의 평등권과 삼권분립, 종교, 언론, 집회, 결사, 거주 이전의 자유를 보장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제6회 대회(1919년 9월).

▲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제6회 대회(1919년 9월). 독립기념관 제공.

 

이날 만장일치로 임시의정원 의장으로 추대돼 임시정부수립의 산파 역할을 했던 독립운동가가 석오 이동녕선생입니다. 민족교육의 선각자이자 민주주의의 선구자이며 임시정부를 실질적으로 이끌어 온 정신적 지주로 항일운동과 민권국가수립에 전생애를 바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신적 지주이자 아버지라 불리는 분입니다.

 

이동녕 선생은 천안 출신으로 유관순 열사와 함께 지역을 상징하는 독립운동가이지만, 아쉽게도 일반인에게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아 임시정부 수립일을 맞아 그의 생가와 기념관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선생의 생가와 기념관은 충남 천안시 목천읍 동리436번지로 충남도 기념물 제72호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습니다. 1869년 이곳에서 태어난 선생은 1905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이상설 등과 만주 용정촌으로 망명해 서전서숙을 설립했고, 1907년 안창호 등과 신민회를 조직했으며 1910년 만주에서 이시영 등과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했습니다. 독립운동의 선각자로 본격적인 무장투쟁을 준비한 것입니다.

 

석오 이동녕 선생 생가 전경.

▲ 석오 이동녕 선생 생가 전경.

 

상해 임시정부에서는 의정원장을 비롯해 외무총장, 국무총리, 국무위원주석 등을 지냈으며 김구주석과 임시정부의 정치적 후견자로 전시내각을 구성해 조국광복에 헌신하다 중국 쓰촨성에서 194072세를 일기로 숨을 거둡니다. 이 같은 공로로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습니다.
 

석오 이동념 선생 장례식(1940년 중국)

▲ 석오 이동녕 선생 장례식(1940년 중국)

 

생가지는 부지 2,608에 연면적 1442005년 복원됐습니다. ‘ㄱ자형 안채와 자형대문간채로 전체적으로는 ㄷ자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안채는 팔작지붕으로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방이 한 칸씩 있고 안채의 좌우로 3칸씩 내어 방과 부엌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서쪽 대문간채는 모두 5칸인데, 가운데 2칸은 마루를 깔았고 양쪽으로 한 칸씩 방이 있습니다. 생가 밖 오른쪽에는 우물과 이동녕 선생의 좌상(포토존)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석오 이동념 선생 생가 안채 1.

▲ 석오 이동녕 선생 생가 안채 1.


석오 이동념 선생 생가 안채 2.

▲ 석오 이동녕 선생 생가 안채 2.


석오 이동념 선생 생가 안채 3.

▲ 석오 이동녕 선생 생가 안채 3.


석오 이동념 선생 생가 안채 4.

▲ 석오 이동녕 선생 생가 안채 4.


생가에는 선생의 일대기와 업적을 모은 작은 도서관 광명책방이 운영 중입니다. 석오이동녕기념관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생가 마루에 설치된 것으로 광명(光明)’은 선생이 1924년 상해에서 조국광복의 염원을 담아 쓴 휘호입니다.
  

석오 이동념 선생 생가 광명책방.

▲ 석오 이동녕 선생 생가 광명책방.


광명책방에는 선생의 일대기를 다룬 만화를 비롯해 연구서적독립운동 서적천안 향토자료 등이 비치돼 자유롭게 볼 수 있습니다생가 앞마당에서는 투호와 고리던지기제기차기윷놀이 등 다양한 민속놀이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석오 이동녕 선생 생가의

▲ 석오 이동녕 선생 생가의 주련문


석오 이동녕 선생과 함께하는 포토존.

▲ 석오 이동녕 선생과 함께하는 포토존.


생가 옆으로는 수령 500년의 보호수 은행나무가 있습니다마을의 전설에 의하면 이 마을은 배의 형국으로 부자가 되면 떠나야 하는데 배에 돛대가 필요해 동네 가운데 은행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생가 뒤편으로는 고목에 왜가리 무리가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석오 이동녕 선생 생가의 왜가리.

▲ 석오 이동녕 선생 생가 인근의 왜가리 서식지.


석오 이동념 선생 생가의 수령 500년 은행나무.

▲ 석오 이동녕 선생 생가의 수령 500년 은행나무.


생가 건너편 석오이동녕기념관은 2010년 개관했습니다. 부지 5483에 연면적 349입니다. 기념관 내에는 입구 전면에 이동녕의 흉상과 뒷면에 '대의(大義)' 휘호와 대형 태극기가 걸려 있습니다. 전시관은 모두 6개로 제1전시관은 초상화와 영상을, 2·3전시관은 이동녕의 삶과 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중앙전시관은 구국의 여정을, 5전시관에는 메시지 영상과 제6전시관의 체험 학습코너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석오이동녕기념관 전경.

▲ 석오이동녕기념관 전경.

 

석오이동녕기념관내

▲ 석오이동녕기념관내


석오 이동녕 좌상과 태극기.

▲ 석오이동녕기념관 좌상과 태극기.


석오이동녕기념관의 전시물.

▲ 석오이동녕기념관의 임지정부 회의 전시물.


석오이동녕기념관내

▲ 석오이동녕기념관의 산류천석 스템프.


기념관 마당에는 태극기 동산에 이동녕선생 캐릭터 인형과 각종 나무, , 그리고 잔디 등을 심어 포토존이 마련돼 있습니다. 주차장이 넓어 편안히 관람할 수 있습니다.

 

석오 이동녕 선생의 '산류천석'과 느린 우체통.

▲ 석오 이동녕 선생의 '산류천석'과 느린 우체통.


석오이동녕기념관 태극기 동산.

▲ 석오이동녕기념관 태극기 동산.


이동녕 선생을 알리려는 천안시의 노력으로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천안시 동남구 영성동 남부오거리에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동상높이 6m에 기단 5m 등 11m 높이로 황동과 석재로 제작됐고 주변에 선생의 업적과 친필 '산류천석(山溜穿石)'과 '대의(大義)'를 새긴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천안시 동남구 영성동 석오 이동녕 동상과 어록비.

▲ 천안시 동남구 영성동 석오 이동녕 동상과 어록비.


3.1
운동을 거쳐 탄생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우리나라 정부와 헌법의 근간을 만들었고 지금도 우리 헌법의 전문에는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는 것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19194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과 헌법 반포를 기억해야 하는 까닭입니다. 그 중심에 천안 출신 독립운동가 석오 이동녕 선생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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