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 대칭 '둘'로 우주 만물 이치 형상화
▲ 홍살문에서 바라본 서산 송곡서원 향나무. 서원을 지키듯 좌우 대칭으로 서있다.
하늘과 인간을 잇는 향나무는 선비의 공간인 서원과 향교에도 많이 심어졌는데 철새도래지로 유명한 천수만의 길목인 충남 서산시 인지면 애정리 ‘송곡서원’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 서산에서 처음 세워진 송곡서원 전경.
소나무가 많은 골짜기라는 의미의 지명을 그대로 사용한 송곡서원은 사액을 받지 못했지만, 600년 모진 풍파의 세월을 견딘 향나무로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서원 입구에 이처럼 거대한 향나무가 좌우 대칭으로 마주 보는 경우는 전국에서 유일하고 학술 가치도 높아 천연기념물(제553호)로 보호되고 있습니다.
서원 입구 홍살문으로 접어들면 진입로 양쪽으로 위풍당당한 향나무 두 그루가 좌우 양쪽으로 나란히 서 방문객을 맞아줍니다.
왼쪽이 높이 11.1m에 둘레(사람 가슴높이) 5.6m 크기로 오른쪽(높이 8.1m, 둘레 5m)보다 약간 풍성합니다. 이들 노거수 수령은 600년 가까이 됐지만, 생육상태가 비교적 양호합니다.
▲ 송곡서원 홍살문.
▲ 송곡서원 왼쪽 향나무. 높이 11.1m 둘레 5.6m의 노거수다.
▲ 송곡서원 오른쪽 형나무. 높이 8.1m 둘레 5m의 노거수다..
좌우 대칭으로 심어진 두 그루의 향나무는 태극(太極)과 음양(陰陽) 사상을 나타낸 것이라 합니다.
‘둘’이라는 숫자 자체가 ‘하늘과 땅(天地)’, ‘남과 여(男女)’, ‘빛과 어둠(明暗)’ 등 우주 만물의 이치를 형상화한 것으로 서원이나 향교, 사당 등 학문 탐구와 제례 공간에 널리 쓰이는 형식입니다.
▲ 송곡서원에서 바라본 노거수 향나무의 자태.
▲ 서원 입구에서 바라본 노거수 향나무의 자태
이 향나무에 대한 정확한 연대기록은 전해지지 않지만, 고려말 조선초 서산 출신 천문학자 류방택의 증손자 류윤이 1420년경 낙향해 정원수로 심었다 합니다.
류윤은 단종이 폐위되자 관직을 버리고 청주 무동에 은거해 ‘불사이군’의 충정을 지켰다고 합니다.
송곡서원은 기록마다 연대가 상이하지만, 현장의 안내문에 따르면 영조 29년(1753년) 세워졌습니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해체되었다가 1910년 복원돼 9명이 배향되어 있으며 노거수는 600년 긴 세월 변함없이 이곳을 지키고 있습니다.
▲ 서원 송곡서원 현판.
▲ 서산 송곡서원 담장. 기와를 이용한 문양이 눈길을 끈다.
사원에 배향된 선현 가운데는 천문학자 류방택이 눈길을 사로 잡습니다.
류방택은 고려말 천문학자로 새로운 왕조인 조선의 개국에 협조하지 않고 고향인 서산에서 은둔했지만, 조선을 기점으로 하는 주체적 천문학을 위한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地圖) 제작에는 참여했던 과학자로 그가 만든 지도는 국보(228호)이자 100대 민족문화 상징물로 1만원권 지폐 배경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의 업적을 기려 송곡사원 옆에는 류방택천문과학관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 송곡서원 행나무 뒤편으로 류방택천문과학관이 보인다.
경내에는 위패를 모신 사당과 유생들의 기숙사 역할을 한 동재와 서재, 출입문 등이 남아 있습니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습니다. 현재 서원 내부는 공개되지 않아 아쉬움을 주지만 향나무를 만난 것만으로도 찾아간 보람은 충분히 보상받을 것 같습니다.
▲ 서산 송곡서원 내삼문과 담장.
▲ 서산 송곡서원 사당. 천문학자 류방택 등 선현 9명의 위폐를 모시고 있다.
나무에서 향이 나와 아예 나무 이름이 되어버린 향나무. 연필을 깍아 쓰던 초등시절 기억 속에서는 향나무 연필의 은은한 향내가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천수만 철새도래지를 찾거나 홍성 남당리, 류방택천문과학관 등을 찾을 때 잠시 들러보면 여행이 더욱 향기로워질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