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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못 이룬 사랑 용이 되고 돌이 되어서라도

온 도량이 황금빛으로 물드는 ‘서산 부석사’

2022.02.03(목) 09:36:27 | 장군바라기 (이메일주소:hao0219@hanmail.net
               	hao021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멀리 서해를 바라보며 도비산에 세워진 서산 부삭사.

▲ 서산 부석사 낙조 포인트.


뜬 돌이라는 뜻의 부석사
(浮石寺)가 전국 여러 곳에 있고 엇비슷한 설화를 갖고 있는데요, 그중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영주 부석사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충남의 서산 부석사도 못지않게 유명합니다.
서산 부석사(충남문화재자료 제195)677(문무왕 17)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천년고찰답게 여러 스토리텔링과 이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설화에 의하면 당에 유학 갔던 신라 의상대사를 연모한 중국 여인(선묘)은 귀국하는 그에게 사랑을 고백했지만 뜻을 이룰 수 없게 되자 낙담해 바다에 빠져 용이 되었답니다.
이를 가엾게 여긴 의상은 절을 지어 위로하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반대하며 절을 허물어버리려 하자 선묘의 화신 용이 크게 노해 큰 바위를 공중에 날리며 위협해 이들을 내쫓아 무사히 절을 지었다 합니다.

그 돌은 현재 부석사 앞 10지점의 바다에서 바위섬(검은여)이 되었는데 자연스레 절의 이름도 떠 있는 바위부석사(浮石寺)가 되었습니다.
이 설화가 영주 부석사와 내용이 같다 보니 일부에서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하지만, 가슴 절절한 선묘의 사랑 이야기만큼은 안쓰럽고 어쩐지 공감이 갑니다.

또 다른 설에는 고려 말 충신 유금헌이 망국의 한을 품고 이곳에다 별당을 지었는데 그가 죽자 승려 적감이 별당을 절로 개조하고 바다 가운데 바위섬이 뜬 것이라며 부석사라 지었다는 얘기도 전해지지만 약간 건조해 보입니다.
 

부석사 회랑.

▲ 부석사 회랑.

 

부석사는 도비산을 의지해 서해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도비산을 오르다 일주문을 거쳐 인왕문을 마주하는데 금강역사 2명이 불법을 훼손하려는 악귀가 침입하지 못하도록 지키고 있습니다.
정진선원은 스님의 수양 공간으로 외부인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부석사 일주문.

▲ 부석사 일주문. 

부석사 인왕문.

▲ 부석사 인왕문. 

부석사 정진선원.

▲ 부석사 정진선원.


경내에는 극락전
, 안양루, 관음전, 산신각, 심검당, 무량수각(목룡장) 등이 있습니다.
중심에는 대웅전 역할을 하는 극락전에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습니다.
참고로 사찰에서는 석가모니불을 모시면 대웅전, 비로자나불을 모시면 대적광전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고려시대 건축 양식으로 정면과 측면이 각 3칸씩 크기로 맞배지붕을 올렸습니다.

 

부석사 극락전.

▲ 부석사 극락전. 

부석사 극락전 단청과 현판.

▲ 부석사 극락전 단청과 현판.


극락전 옆으로는 특이하게 심검당과 목룡장을 연이어 건축했는데, 사람들은 건물배치가 마치 소가 누워 있는 모습과 같다고 합니다
. 마당의 약수를 그래서 우유약수라고 부릅니다.

 

부석사 무량수전과 심검당. 마당에 우유약수터가 있다.

▲ 부석사 무량수전과 심검당. 마당에 우유약수터가 있다.


극락전의 왼편으로는 금종각이 있습니다
.
범종을 달아 놓은 전각인데 입구에 운판이, 안쪽으로 법고와 목어가 있습니다. 1
1669
(현종 10)에 조성된 부석사 극락전 범종은 현재 수덕사 성보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극락전 정면으로는 서해를 바라보며 안양루가 세워져 있습니다.
정면 5, 측면 2칸 크기에 맞배지붕을 올렸습니다.

 

부석사 금종각.

▲ 부석사 금종각 전경. 

부석사 금종각의 단청.

▲ 부석사 금종각 단청과 현판. 

부석사 안양루.

▲ 부석사 안양루 전경.

 

부석사 안양루의 불상.

▲ 부석사 안양루의 불상.

 

극락전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면 5개의 부도가 나란히 세워져 있고 계단길을 오르면 산신각이 나오는데 이곳에는 산신을 중심으로 용왕과 선묘낭자가 좌우에 모시져 있습니다.
산신각의 왼쪽 아래쪽으로는 창건 설화에 나오는 검은여를 바라보며 마애아미타여래석불이 조성돼 있습니다.
서방정토의 극락세계에 머물며 불법을 설하여 중생을 구제한다고 합니다.
이어 계단을 오르면 선풍 운동으로 한국불교의 중흥을 주도했던 만공스님이 수도했다는 만공토굴이 나옵니다.

 

부석사 산신각.

▲ 부석사 산신각. 

부석사 아미

▲ 부석사 마애아미타여래석불.

 

부석사 만공토굴.

▲ 부석사 만공토굴.


부석사의 또 다른 매력은 산사의 차를 마실수 있는
도비다원입니다.
석사 신도들로 구성된 전통사찰음식연구회
공양청회원들이 운영 중으로 대추차가 가장 인기가 높습니다. 다원에 앉으면 멀리 천수만이 훤히 보이는 운치를 느낄 수 있어 SNS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차를 한 잔 마시러 왔다가 고풍스런 사찰인 부석사 매력에 푹 빠지게 됩니다.

 

부석사 도비다원.

▲ 부석사 도비다원.

 

부석사 도비다원.

▲ 부석사 도비다원.

 

서산 부석사는 여러 차례 문화재를 약탈당한 아픔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일본 사찰에 있다가 10년째 소유권 다툼을 벌이는 고려 금동관음보살좌상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불상은 왜구가 약탈해 일본으로 넘어간 뒤 대마도 관음사에 모셔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2012
년 절도범들이 일본에서 이를 되훔쳐 국내로 밀반입했다가 검찰에 몰수돼 현재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보관 중입니다.
부석사는 불상의 법적 소유자를 가려달라며 인도 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승소한 뒤 올해 2심이 진행 중입니다.

불상의 환수 재판은 부석사뿐 아니라 불교계와 문화, 예술계에서도 중요 관심사입니다.
불상 안에 봉안된 결연문(복장 기록물)에는 “1330년 서주 사찰에 봉안하려 불상을 제작했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습니다.
서주는 고려시대 서산의 명칭으로 부석사는 이를 근거로
왜구 약탈을 주장하며 되돌려 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불상을 보관해오던 일본 관음사(간논지) 역시 왜구 두목이 1526년 창건한 것으로 부석사 불상이 간논지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왜구에 의해 약탈이라는 합리적 결론이 제시되는 것입니다.

부석사에서 왜구에 약탈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관음보살좌상.

▲ 부석사에서 왜구에 약탈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관음보살좌상. 

천년고찰에 수많은 설화와 애환이 깃든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오랜 세월 풍파 속에 사연과 사연이 씨줄과 날줄처럼 엉킨 이야기를 만들어 냈을 것입니다.
부석사를 방문하신다면 도비다원에서 따듯한 차 한잔을 드시거나 춥지만 않다면 마애아미타여래석불 인근의 나무 의자에 앉아 낙조를 감상하시길 권해드립니다.
참으로 많은 회한이 밀려올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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