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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담과 대문이 없는 명재고택… 그 이유가?

숨기고 감추는 대신 개방 택한 '백의정승'

2022.01.06(목) 15:52:58 | 장군바라기 (이메일주소:hao0219@hanmail.net
               	hao021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명재고택
▲ 명재고택의 상징이 되어버린 장독대 전경1.

사색의 계절 겨울. 논산 지역 대표 고택인 백일헌 이삼 종택에 이어 명재 고택(故宅)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명재고택은 양반가임에도 백일헌 종택에서 보았던 위풍당당한 솟을 대문이 없었습니다. 부녀자들의 공간인 안채를 제외하고 외부의 침입을 막아주는 담장조차 두르지 않았습니다. 마당을 가로지르자 곧장 사랑채가 나왔습니다.
 
조선 후기 대표적 양반가이자 전통 한옥의 모델로 국가민속문화재(제190호)로 지정되고, 건축역사와 디자인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교과서 역할까지 하는 명재고택이 관리소홀(?)로 소실된 대문과 담장조차 복구하지 못한 것일까요?
 
궁금증을 풀어줄 열쇠는 조선 후기 치열한 사림의 당쟁사에 있습니다. 명재 윤증(1629~1714)은 예학에 밝은 학자이자 소론의 영수였습니다. 집권 세력인 노론과 맞선 개혁파 소론의 우두머리로 당쟁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조선의 사림은 선조 때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서고 다시 숙종 때 경신환국을 거치면서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붕당돼 치열한 권력 투쟁을 벌이는 시기였습니다.
 
당연히 노론의 사찰과 감시의 눈은 소론의 영수 윤증에 집중됐을 것이고 그는 대문과 담으로 숨기고 감추는 대신 누가 모이고 무엇을 하는지 모두 공개하고 개방하는 적극 대응을 택한 것입니다. 명재고택은 아들 윤행교와 손자 윤동원이 1709년 신축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윤증이 이곳에 얼마나 거주했는지 정확한 기록이 없는 대신 인근 초가인 ‘유봉정사’에 머물며 고택에 왕래만 했다는 얘기가 전해집니다. 명재고택이 한자로 ‘고택(古宅)’대신 ‘고택(故宅)’으로 기록된 이유입니다.

솟을 대문도 담장도 없는 명재고택 전경. 사랑채 입구 양 편에 배롱나무가 운치를 더해준다.
▲ 솟을 대문도 담장도 없는 명재고택 전경. 사랑채 입구 양 편으로 배롱나무가 심어져있다.

치열한 당쟁 속에서도 윤증은 학자로 명성을 알린 29세부터 85세 노령으로 별세할 때까지 대사헌, 이조판서, 우의정 등 20여 차례 관직이 제수되었지만, 한 번도 출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생이 징소(徵召:벼슬을 권유해 조정에 부르는 것)와 사직의 과정이라 할 것입니다.
 
어떠한 분란의 여지도 남기지 않으려 했던 그의 처신과 나눔의 미덕을 실천하는 선비정신의 가풍은 후손까지 이어져 명재고택이 300년이 넘는 세월을 보존할 수 있었던 이유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그는 “지나친 이익을 얻어서는 안된다”며 후손에게 양잠을 금지하고 적선을 권해 그의 집안은 동학혁명과 6.25 전쟁에서도 피해를 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명재고택 사랑채 전경.
▲ 서인 소론의 중심 명재고택 사랑채 전경.

명재고택은 부드러운 산세의 노성산을 배경으로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앞서 설명하듯 여느 양반가와 달리 높은 담장과 육중한 대문이 없이 마을을 향해 활짝 열려 있습니다. 대신 넓은 마당과 직사각형의 커다란 연못이 있는데 이곳의 조그마한 섬에는 300년 세월 고택과 함께 한 배롱나무가 운치를 더해주고 있습니다. 여름이면 연못에 피는 연꽃 또한 장관을 이룹니다.

연못을 지나 앞마당에도 마당 양쪽에 커다란 배롱나무가 고택을 꾸며주고 기단 위에 팔작지붕을 한 사랑채가 기품 있게 앉아있습니다. 배롱나무는 매년 허물을 벗는데 선비들은 지난해 잘못을 벗겨내고 새롭게 태어나고자 하는 의미에서 이를 즐겨 심었다고 합니다.

명재고택 연못 작은 섬에는 수령 300여 년의 배롱나무가 운치를 더해준다.
▲ 명재고택 연못 작은 섬에는 수령 300여 년의 배롱나무가 운치를 더해준다.
  
정면에서 바라볼 때 사랑채 왼쪽 뒤편에는 안채가, 그리고 뒤편으로는 사당이 있습니다. 안채는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좌우가 대칭을 이루는 ‘ㄷ’자 구조로 앞에 사랑채와 전체적으로 ‘ㅁ’자형의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지금도 윤증의 후손들이 살고 있어 외부인들의 출입을 자제하도록 요청하는 안내문이 있습니다. 고택의 공간배치는 일조량과 바람의 소통을 조절하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합니다. 겨울철 북쪽의 찬 공기는 속히 내몰고 남쪽의 따뜻한 공기는 오래 머무르게 하는 방식입니다.

명재고택 안채. 후손들이 거주해 일반인 출입은 거절되고 있다.

▲ 명재고택 안채. 후손들이 거주해 일반인 출입은 거절되고 있다.

  
사랑채 오른편에는 2칸의 대청마루가, 아래쪽으로는 툇마루와 누마루가 왼편에는 쪽마루가 있습니다. 특히 누마루 창문 비율은 전통 한옥의 실용과 과학을 상징이기도 합니다. 세로와 가로의 비율이 16대 9의 황금비율이기 때문입니다.

16대 9 황금 비율로 한옥의 과학을 상징하는 사랑채 창문.

▲ 16대 9 황금 비율로 한옥의 과학을 상징하는 사랑채 창문.

  
안쪽 미닫이문을 바깥쪽 여닫이문과 겹쳐 여닫을 수 있도록 안고지기 문을 설치한 것도 특징입니다. 미닫이문을 열었을 때 반은 가려지는 것을 보완해 여닫이문의 기능을 합친 것으로 사랑채에 손님이 많으면 안고지기 문 뒤쪽 유휴공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입니다.

안고지기 문이 설치된 명재고택의 사랑채.

▲ 공간활용을 높이기 위해 안고지기 문이 설치된 명재고택 사랑채.


사랑채 옆 마당으로 가지런히 놓인 수백 개의 항아리에는 된장과 간장이 농익어 가고 있습니다. 장독대와 오른쪽 언덕 위의 느티나무 거목은 볼수록 정겨운 명재고택의 상징입니다. 작은 도서관을 지나 사색의 길을 올라가면 길을 따라 느티나무 3그루 사이로 고택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옵니다. 수령 400년을 넘긴 보호수 가지 사이로 마치 사열하듯 줄지어 서 있는 마당의 장독대를 앵글에 담으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명재고택의 상징이 되어버린 장독대 전경 2. 수백 개 항아리가  사열 하듯 줄지어 놓여 있다..

▲ 명재고택의 상징이 되어버린 장독대 전경 2. 수백 개 항아리가 사열 하듯 줄지어 놓여 있다.


그렇지만 모두가 인정하는 명재고택의 비경은 눈 덮인 겨울입니다. 느티나무 가지 끝에 내려앉는 잔설과 사열하는 병졸처럼 늘어선 항아리 뚜껑에 호빵처럼 소복하게 쌓인 눈, 그리고 서산을 물들이는 황금빛 노을이 어우러진 풍광이 단연 으뜸일 것입니다.

명재고택의 상징이 되어버린 장독대 전경 3.

▲ 명재고택의 상징이 되어버린 장독대 전경 3.

명재고택의 상징이 되어버린 장독대 전경 4.

▲ 명재고택의 상징이 되어버린 장독대 전경 4.


명재고택의 상징이 되어버린 장독대 전경 5.

▲ 명재고택의 상징이 되어버린 장독대 전경 5.


명재고택의 상징이 되어버린 장독대 전경 6.

▲ 명재고택의 상징이 되어버린 장독대 전경 6.


명재고택은 왼편으로 노성향교와 나란히 사이좋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1398년(태조 7년) 창건된 노성향교는 잎으로 명륜당이 뒤로는 대성전이 있는데 현 건물들은 1967년과 1975년에 중수됐습니다.

명재고택과 나란히 있는 노성향교 홍살문.

▲ 명재고택과 나란히 있는 노성향교 홍살문.


명재고택과 나란히 있는 노성항교 명륜당.

▲ 명재고택과 나란히 있는 노성항교 명륜당.


명재고택의 바로 앞에는 열녀 공주이씨 정려가 있습니다. 이곳의 공주이씨는 이장백의 딸로 윤선거의 아내이며 명재 윤증의 어머니입니다.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로 피난을 갔다가 함락되자 오랑캐의 손에 죽을 수 없다며 순절해 정경부인에 증직됐다고 합니다. 나라를 망가트린 사람들은 책임을 지지 않는데 힘없는 여자들에게 자결과 이를 장려하는 정려라니 한편으로 씁쓸하기만 합니다.  

윤증의 모친인 열녀 공주이씨 정려.

▲ 윤증의 모친인 열녀 공주이씨 정려.

 
숨기고 감추기보다 대문과 담장 없이 손님을 맞아주는 명재고택에서 급한 마음 잠시 내려놓고 새해를 시작하는 사색에 잠겨보면 어떨까요? 사랑채 대청마루에 걸린 허한고와(虛閑高臥 비우고 한가로이 누워 하늘을 본다)의 마음으로 사색의 길을 걷는 것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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