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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당진 띠울골망에서 3.1독립만세운동 민족대표 의암 손병희 선생 흔적을 엿보다

의암손병희 선생 유허지; 고택 복원 완료

2021.12.23(목) 01:38:57 | 헵시바 (이메일주소:hannana153@naver.com
               	hannana153@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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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시가 수청2지구 학교 부지에 있었던 의암 손병희 선생 고택 이전 복원사업을 2021년 8월 완료했습니다. 수청 2지구 근린공원 내 조성된 손병희 고택은 대지면적 573㎡, 건물면적 74㎡의 규모로 안채와 담장, 바깥채(주춧돌만 복원)를 복원했습니다. 의암 손병희 선생은 1919년 3.1독립만세운동 민족대표 33인의 대표로서 동학의 3세 교주를 지냈습니다. 충북 청원군(현 청주시) 출생인 손병희 선생은 1894년 북접의 통령으로 동학농민혁명을 주도하다가 실패해 은신 생활을 했는데요. 1898년 8월부터 1899년 10월까지 1년 3개월간 당진 수청리 모동에서 대도소를 두고 활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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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회사에 따르면, 손병희가 띠울마을에 와서 보니 집 앞에 샘이 있었으나 물이 말라버려 사용할 물이 없었다고 합니다. 손병희 선생은 샘 밑에 쌓인 낙엽을 치우고 바닥을 깊이파자 물이 솟아나왔고 마을의 30여호가 물을 흡족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됐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음해 12월 손병희가 청양으로 떠나자 샘물은 다시 말라버렸다는 기록이 전해져 옵니다.이동초 천도교종학대학원 교수의 주제발표(2019년 의암손병희와 당진 대도소 고택복원 재조명 학술대회)에 따르면, 이동초 교수는 오래전부터 손병희가 살았다는 ‘당진군 모동’을 찾기 위해 이곳 저곳을 수소문했다고 합니다.모동(茅洞)과 한자가 비슷한 저동(苧洞)을 찾아 고대면 진관리(옛 이름 상대면 저동)을 찾아보기도 했으나 우물터를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또한 순성면에 모시골이 있다해 확인해 봤으나 역시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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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당진시로 승격하면서 당진읍지 참여를 계기로 ‘당진지역의 천도교 활동’을 집필하게 됐고, 윤성의 향토사학자와 함께 모동(茅洞)이 ‘띠울골망’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합니다. 이후 수청리 일대에서 옛우물을 수소문 끝에 손병희 고택을 고증했다고 합니다. 2014년 충남개발공사의 수청2지구 도시개발 사업이 시작된 후 2015년부터 2년간 문화재 지표조사 및 발굴조사 과정에서 손병희 고택의 보존방안이 이슈로 떠올랐는데요. 이에 시민단체들과 당진시, 충남개발공사가 서로의 입장을 조정하고, 2017년 김홍장 당진시장의 현장방문을 통해 수청 2지구 근린공원으로 고택을 이전해 복원하는 방향으로 확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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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시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에 걸쳐 고택에 대한 정밀실측용역과 목재해체 및 보존처리사업, 실시 설계 사업을 진행하였습니다. 이를 기초로 이전 복원사업에 대한 토대를 마련하였는데요. 이후 2020년에 4억 원의 시비를 투입해 2021년 8월 복원 사업을 마무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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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 127주년을 기념해 손병희 선생 유허지 고택에는 당진의 문화 유산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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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제 6회 승전목전승기념제의 일환으로 기지시줄다리기 박물관 해오름 풍물팀에서 문화공연을 펼쳐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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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쾌한 태평소 소리에 맞춰 '덩기덕 더덕쿵' 장구 가락에 공연이 펼쳐지며 어깨춤이 절로 납니다. 당진의 농악은 기지시 줄다리기와 더불어 당진지역민들의 애환과 얼이 담겨져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인데요. 두레농악의 소박한 전통에 뿌리를 두고있는 공연성이 뛰어난 농악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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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종학대학원 교수의 발표문에 따르면, 고택 옆집에 살았던 차윤영 씨는 백부 등으로부터 어린 시절에 손병희가 1년 남짓 살았다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다고 합니다. 집앞 5미터 쯤에 우물이 있었으나 20여년쯤 우물을 메우고 향나무를 심었다고 하네요. 손병희 고택을 찾으려는 이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수청2지구 도시개발과정에서 그냥 오래된 집으로 인식된 채 철거됐을지도 모릅니다. 그럼 지금 이자리에 있는 당진의 소중한 문화유적 손병희 고택은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손병희 선생이 당진에 머물렀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실증이 없이 기록과 구전으로만 남겨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아찔합니다. 손병희 선생이 살았던 생가는 청주와 당진 두 곳에만 존재해 기념물적 특성이 우수한 장소입니다. 앞으로 당진시는 3·1독립만세운동의 민족대표로서의 인물적 상징성을 살려 시민들에게 나라사랑 정신을 함양하는 교육적 장소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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