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여행

계룡시 사계고택 은농재와 사계 솔바람길

조선시대 예학의 거두 김장생 선생이 살던 곳

2021.12.20(월) 06:45:58 | 대로 (이메일주소:dried@naver.com
               	dried@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요즈음 유학을 논하면 고리타분하다는 말을 듣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더구나 예학이 어쩌고 하면 들으려고 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법도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지탄받고 손가락질을 당하기는 예나 지금이 다를 바 없습니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예절을 만들어 지킨다는 것이지요. 예로부터 어느 종족이든 자신들 만의 예법이 있었으며 시대에 따라 변천을 거듭하였습니다.


계룡시사계고택은농재와사계솔바람길 1

유학은 인간의 도리가 무엇인지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그중에서 예학은 인간 간에 서로 지켜야 할 도리와 예법에 대하여 자세히 파헤치는 학문을 말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유학을 근본으로 하여 모든 사회생활이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예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조선의 예학자 하면 첫 번째로 떠오르는 분이 김장생, 김집 부자입니다. 그중에서 사계 김장생 선생은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에서 성장하고 활동하신 분입니다.
사계 선생이 거주하면서 예학을 연구하고 제자를 가르쳤던 사계고택은 계룡시 두마면 사계로 122-4에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사계 김장생 선생 초상화 - 출처 네이버
▲ 사계 김장생 선생 초상화 - 출처 네이버

김장생 선생은 1548년(명종 3) 한양 정릉동(貞陵洞. 지금 서울 중구 정동)에서 선조 때 큰 벼슬을 한 김계휘(金繼輝, 1526∼1582)와 호조판서를 지낸 신영의 딸 평산신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10세 때 어머니를 여의기는 했지만 성년이 될 때까지 양반 자제로서 학문을 닦으며 성장하였습니다.

김장생은 12세 때 예학의 대가인 송익필에게서 사서(四書)와 [근사록] 등을 배웠으며, 19세 때 율곡 이이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고, 토정 이지함을 찾아 공부하는 등 이분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김장생은 젊은 시절 지방 관료 등을 지냈으며, 30대 이후 꾸준히 예학을 연구하였습니다. 이 기간 동안 전례문답(典禮問答), 가례집람(家禮輯覽) 등 예학과 관련한 수많은 집필 활동을 하고 사계전서(沙溪全書) 51권 24책으로 정리하였습니다.

인조반정 이후 서인의 거두로서 벼슬에 나가기도 했지만, 곧 낙향하여 지금의 사계고택에서 만년에 머물면서 저술과 제자 양성에 전념하였습니다.
김장생의 제자로는 당대를 호령하던 송시열ㆍ송준길ㆍ이유태ㆍ강석기ㆍ장유ㆍ최명길 등이 있습니다. 특히 그의 둘째 아들 김집은 아버지 김장생과 더불어 예학의 기본적 체계를 완비하였으며, 송시열에게 학문을 전하여 기호학파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계룡시사계고택은농재와사계솔바람길 2
 
충남기념물 제190호로 지정된 사계고택(沙溪古宅)은 사계 김장생(金長生)이 55세 되던 1602년에 건립했으며, 사계와 정부인인 순천 김씨가 거주하던 곳이기도 합니다. 68세인 1613년 계축옥사(癸丑獄事)가 일어나자, 이곳에 낙향하여 여생을 우암 송시열, 송준길 등 많은 후진을 양성하며 말년을 보낸 곳입니다.



계룡시사계고택은농재와사계솔바람길 3
 
사계고택은 사랑채인 은농재(隱農齋)만 원형이 보존되고 다른 건물들은 중간에 개·보수를 했다고 전해집니다. 사계고택은 사계의 여덟째 아들인 김규(1606~1677)의 자손이 장자 물림으로 대대로 살아온 집이며, 현재 사계의 16대손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사계 7세손의 호를 따 은농재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계룡시사계고택은농재와사계솔바람길 4
 
사계고택에는 은농재를 비롯하여 안사랑채, 안채, 문간채, 광채, 부속채 등이 하나의 커다란 건축 군을 형성하면서 나지막한 구릉을 배경으로 배치돼 있습니다.
 


계룡시사계고택은농재와사계솔바람길 5
 
소각문이라는 쪽문을 지나면 성례당(省禮堂)이라는 편액이 걸린 건물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예학을 공부하셨나 봅니다.
 


계룡시사계고택은농재와사계솔바람길 6
 
건물 뒤편에 영당이 있습니다. 영당은 1631년 사계 선생이 돌아가시자 출상하기 전 이곳에 시신을 모셨던 곳입니다. 영당은 돌아가시면 출상하기 전에 시신을 모시는 곳으로, 왕은 150일 후에, 사대부는 90일 후에 출상하는 제도입니다.



계룡시사계고택은농재와사계솔바람길 7
 
지금도 살림을 하고 있는 지 담장 아래는 장독대가 있습니다.
 


계룡시사계고택은농재와사계솔바람길 8
 
행랑채는 대문 옆에 붙어 있는 하인들이 생활하는 공간입니다. 그래서인지 초가지붕의 허름한 집입니다. 사립문이 굳게 잠겨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은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계룡시사계고택은농재와사계솔바람길 9
 
사계고택에서는 각종 체험 및 행사를 수시로 하고 있습니다. 사계블루밍 축제, 사계문화살롱, 전통 의례체험 등 다양한 전통 교육과 체험 활동을 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사계고택 홈페이지를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http://xn―989a3b275f1ip.com/
 


계룡시사계고택은농재와사계솔바람길 10
 
사계고택 주변에는 솔바람길이 조성되어 있어 거닐어 보았습니다.
사계솔바람길은 사계고택에서 출발해서 왕대산 입구, 모원재와 입구, 왕대산 정상, 쉼터바위, 이편한세상아파트 입구를 지나 다시 사계고택으로 돌아오는 약 3km의 코스입니다.



계룡시사계고택은농재와사계솔바람길 11
 
사계고택 주변에는 자그마한 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봄이 되면 철쭉꽃이 만발할 것 같습니다.
 


계룡시사계고택은농재와사계솔바람길 12
 
사계고택은 계룡시내에서 가깝고 아름다운 나무와 꽃, 쉼터인 정자도 있으며 솔바람길도 조성되어 있어서 계룡시민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켜주고 있습니다.



계룡시사계고택은농재와사계솔바람길 13
 
솔바람길에는 은행나무도 많습니다. 아무도 주워가지 않는 은행들이 발에 밟혀서 진한 냄새를 뱉어냅니다. 그래도 사각거리는 소리가 좋아서 연신 밟아 봅니다.



계룡시사계고택은농재와사계솔바람길 14

솔향을 맡으며 소나무 숲을 거닐어 봅니다. 사계 김장생 선생과 그 제자들도 이 길을 가끔 거닐었겠지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충과 효는 무엇인지, 정치는 어떻게 해야 백성들이 편안하고 살기 좋은지~~

물질문명이 크게 발달하여 편리한 세상이 되었지만, 사람 사는 태도는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돈과 권력을 탐하고 다투면서도,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길인지 고민합니다.
사람답게 사는 게 무엇인지 풀리지 않는 숙제를 안고 또 하루를 시작합니다.
 


 

대로님의 다른 기사 보기

[대로님의 SNS]
  •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22775540405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