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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백제 계백 장군의 얼을 더듬어 보는 황산성

백제 최후의 보루 황산성과 황산벌

2021.12.12(일) 08:04:26 | 대로 (이메일주소:dried@naver.com
               	dried@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황산벌전투 하면 누가 생각나시나요?
대부분 승장인 김유신보다는 패장인 계백장군을 떠올리지 않을까요?
계백장군은 백제의 최후를 직감하고 가족들을 자신의 손으로 죽인 후 황산벌에 나가 불과 5천의 군사로 5만의 신라군과 맞서 4차례나 승리를 거둡니다.
여기서 신라 품일 장군의 아들 화랑 관창이 등장하지요.
계백은 불과 16살의 나이에 겁 없이 달려드는 관창을 죽이지 못하고 돌려보내기를 거듭하다가 결국은 그의 목을 베어 말에 태워 적진으로 돌려보냅니다.
이에 격분한 신라군이 일시에 공격을 감행하여 수적으로 열세인 백제군은 일망타진하게 됩니다. 이 전투를 우리는 황산벌전투라고 부릅니다.

백제계백장군의얼을더듬어보는황산성 1

황산벌은 충남 논산시 연산면(連山面) 일대를 차지하는 넓은 들을 말합니다.
황산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연산면 관동리와 표정리 일대에 황산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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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리온 산줄기가 향적산을 이루고 산줄기가 끝나는 지점에 황산이 있습니다. 현재의 황산은 주산이라고 불리는데 주민들은 예로부터 이 산을 놀뫼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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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성 주차장까지는 임도가 설치되어 있고 ‘황산성 약수터’를 안내하는 표지판을 따라 비교적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표정리 산20’으로 주소 검색을 하시는 게 찾기가 더 쉬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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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옆에는 깔끔하게 단장된 현대식 약수터가 있습니다. 임도를 따라 산책을 하는 주민들이 있어서 이곳에 운동 시설과 쉼터를 조성하고 약수터까지 만들어 놓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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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성은 성벽 전체를 돌로 쌓은 석성으로, 황산의 정상부를 중심으로 둘레 830m. 해발 264m의 산봉에서 남향한 비탈을 긴 마름모꼴로 에워싼 사모형(紗帽形)의 옛 성입니다. 황성(黃城)·북산성(北山城)·성황산석성(城隍山石城)이라고도 기록되어 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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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황산성으로 인도하는 산길을 따라 올라가 봅니다.
황산성은 문터가 사방에 있는데 남문 쪽이 가장 낮으며, 문의 안쪽에 우물과 건물터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서문 부근을 통해 성곽길을 따라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걸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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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은 후대에 개·보수를 했는지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가장 잘 남아 있는 곳은 높이 2m에 이르는 구간도 있습니다. 부대시설로는 문지 3개소와 건물지 4개소, 장대지 1개소, 우물터 1곳 등이 있다고 하는데 찾아보기 쉽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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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중에 휴게소도 있어서 잠시 쉬어갈 수 있습니다. 성곽길에는 야자매트가 깔려 있으며 비교적 완만한 편이라서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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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앞에 보이는 산봉우리 아래 벌판이 황산벌이겠지요.
백제 의자왕은 빼앗긴 한강 유역을 되찾기 위하여 북으로는 고구려, 남으로는 일본과 손을 잡고 신라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다급해진 신라는 660년 당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여 나당연합군을 결성하고 백제를 공격하였습니다.
 
김유신과 당나라 소정방(蘇定方)이 이끄는 나당 연합군이 백제의 요충지인 탄현(대전 동쪽 마도령)과 백강으로 쳐들어오자 백제의 계백 장군은 좌평 충상, 달솔 상영과 함께 결사대 5천여 명을 이끌고 황산벌(충청남도 연산)로 나가 싸웠습니다.
 
계백은 싸움터에서 군사들에게 옛날 월나라 왕 구천이 5천 명의 군사로 오나라 왕 부차의 70만 대군을 무찌른 예를 들면서, 전쟁의 승리는 군사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력에 있다며 군사들의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5천 명의 백제군은 김유신이 이끄는 5만의 신라군과 네 차례의 싸움에서 모두 이겼다고 해요.
하지만 5만의 신라 대군과 대적하기에는 백제군의 숫자가 너무 적었고, 결국 계백 장군과 5천 결사대는 모두 전사하였습니다. 이후 나-당연합군은 사비성을 함락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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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 대부분 허물어지고 성을 쌓았던 돌들과 낙엽이 함께 뒹굴고 있습니다. 성내에서는 연화문 와당과 인장와(印章瓦)를 비롯한 다양한 기와와 토기 조각이 수습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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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시기의 다양한 유물이 발견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백제시대에 축조한 산성이지만 그 후 통일신라와 고려, 조선을 거치기까지 지속해서 중요하게 활용되었던 산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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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주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여기서부터 산줄기를 따라 향적산까지 올라갈 수 있지만, 그 거리가 무려 8km에 이르러 좀 더 시간 여유가 있을 때 다시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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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을 바라보니 바다처럼 넓은 호수가 보입니다. 탑정호입니다. 충청남도에서 두 번째로 큰 저수지로서 어족자원이 풍부합니다. 깨끗한 수질과 겨울철에도 잘 얼지 않고, 주변의 논산평야 등 대규모 농경지가 위치해 풍부한 먹이로 철새들의 서식에 적당하여 겨울철새들의 월동지로 이용되고 있는 곳입니다.
논산시에서 2010년부터 탑정호수변생태공원을 추진하여 수생식물원, 자연학습원, 분수, 팔각정 등 산책코스를 만들어 논산 여행의 필수 코스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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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소 가파른 내리막길을 따라 황산성을 내려옵니다. 황산성은 자연 지세를 최대한 이용하였으나 북서쪽으로 멀리 바라다보이는 노성산성(魯城山城)이 산봉으로 가로막혔음을 극복하기 위하여 북문터에서 300m쯤 북쪽 산봉우리에 작은 보루를 두었던 흔적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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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거의 다 내려왔습니다. 소나무 그늘 의자에서 잠시 쉬면서 다시 한번 황산성과 계백장군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황산은 오늘날 충남 논산시 연산지역에 해당하며 계룡산 줄기의 남쪽 끝자락에 위치하여 대전과 논산을 가르고 있습니다. 북서쪽에 있는 노성산성과 함께 논산벌을 지키며 대전에서 논산을 거쳐 부여로 침입하는 신라군을 막았을 것입니다.
 
최근에 정밀 지표 조사가 이루어졌지만, 아직도 복원 작업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계백장군과의 관계도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황산성은 황산벌과 가까운 거리에 자리하고 있으므로 일찍부터 황산벌 전투와 관련이 있는 백제 산성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황산성과 황산벌전투, 10대 1의 열세 속에서 나당연합군에 맞서 싸운 계백 장군의 충절과 용기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황산성>
지정종목 : 충청남도 기념물
지정일 : 1985년 7월 19일
소재지 : 충남 논산시 연산면 표정리 산20번지
시대 : 백제시대
크기 : 둘레 87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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