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여행

초겨울 비오는 날의 풍경 ‘한진 포구’

우리 문학의 한 획을 남긴 필경사까지

2021.12.01(수) 09:30:26 | 장군바라기 (이메일주소:hao0219@hanmail.net
               	hao021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당진 한진포구 전망대 데크길.
▲ 당진 한진포구 전망대 데크길.

배가 정박하는 곳을 포구라고 합니다. 큰 강의 어귀나 바다에 접해 교역선이나 어선이 머무는 항구로 조선말까지 해로와 수운을 중심으로 발달하였던 교통망 덕분에 서해안을 끼고 있는 충남에는 기다란 해안선을 따라 수많은 크고 작은 포구가 줄을 이었습니다.

충남의 포구는 근대화가 가속되면서 늘어나는 철도와 신작로 등 육로교통으로 대체되는 수운기능의 쇠퇴에 따라 서서히 쇠락했고, 이제는 전통적인 해운과 어업의 전진기지 보다 관광과 레저의 중심으로 새롭게 각광받고 있습니다.

당진 한진포구의 어선들. 예전의 어업보다는 낚시배가 주종을 이룬다.
▲ 당진 한진포구의 어선들. 예전의 어업보다는 낚시배가 주종을 이룬다.

심훈의 농촌계몽소설 ‘상록수’의 지리적 배경이면서 충남의 가장 북단에 위치해 서해대교를 사이로 수도권과 마주보는 당진시 ‘한진포구’를 찾아 초겨울 비오는 날의 풍경을 담아봤습니다.

당진 한진포구 전망대.
▲ 당진 한진포구 전망대.

한진포구 옛 이름은 대진(大津)입니다. ‘큰 나루’라는 뜻의 우리 고유명사 ‘한’을 훈차 한 것입니다. 이미 삼국시대인 백제 때부터 당나라를 오가는 상인과 사신이 이곳을 통해 왕래했고 조선 시대에도 홍주(홍성) 감영과 한양을 해상으로 연결하는 해상 포스트였습니다.

1970년대 까지 인천을 오가는 여객선이, 1980년대 초까지는 경기도 평택을 왕복하는 배가 운행됐습니다. 지금이야 서해안고속도로로 수도권과 가까워 졌지만, 예전에는 서해안을 따라 운행되는 여객선으로 서울로 왕래했고 지금까지 인천에 충남 출신이 많이 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해상교통의 쇠락으로 주춤했던 한진포구는 포구를 중심으로 500만㎡(151만평) 규모의 아산국가산업단지 ‘고대지구(1999년)’와 ‘부곡지구(2000년)’가 연이어 준공돼 충남 등 중부권 경제성장의 핵심 산업집적지역으로 성장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당진 부곡산업단지
▲ 당진 부곡산업단지

당진 한진포구에서 바라본 산업단지의 전경.
▲ 당진 한진포구에서 바라본 산업단지의 전경.

서해안 고속도로를 통해 수도권의 관광레저 수요도 날이 다르게 밀려오고 있는데 서해대교가 한눈에 보이고 그 뒤로 떠오르는 일출과 일몰의 아름다운 풍광으로 사진작가 사이에선 사계절 출사 명소로도 유명합니다.

선진포구를 찾은 날은 제법 굵은 겨울비가 내렸고 거센 바닷바람에도 전망대 데크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해경치를 즐겼습니다. 바닷물이 들어오고 나감에 따라 발아래 풍경이 달라지는 것은 이곳만의 매력인데요, 전망대에 올라 빗속에 우산을 쓰고 바다가 만드는 파도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것도 가슴에 쌓인 시름과 걱정을 떨쳐내는데 좋은 치료제 같았습니다.

당진 한진포구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해.
▲ 당진 한진포구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해.

당진 한진포구에서 갈매기가 비를 맞고 있다.
▲ 당진 한진포구에서 갈매기가 비를 맞고 있다.

해양산책로는 끝의 맞은편은 경기도 평택인데요, 날이 좋으면 서해대교가 또렷하게 보입니다. 현재 200여m만 만들어졌지만 연장공사를 추진 중이라고 합니다. 높이 20m의 전망대는 사방을 감상하는 열린 공간입니다.

당진 한진포구 전망대에 바라본 포구 전경.
▲ 당진 한진포구 전망대에 바라본 포구 전경.

포구 선착장과 제방에는 비가 오는 와중에도 거센 바닷바람을 맞으며 여유롭게 낚시를 담그거나 투망을 가져와 바다를 향해 넓게 펼치는 사람들도 있다. 투망을 던지는 사람을 한참 지켜보니 한번 던질 때마다 꽤 튼 물고기가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당진 한진포구에서 투망질을 하는 어부.
▲ 당진 한진포구에서 투망질을 하는 어부.

한진 앞바다에서는 원래 준치와 숭어가 유명했다고 하지만, 지금은 이들 생선은 자취를 감추고 넓은 갯벌에서 잡히는 바지락이 유명합니다. 아미노산과 타우린성분이 풍부하고 특유의 감칠맛에 소화까지 잘되는 오동통한 한진포구 바지락 살을 듬뿍 넣은 칼국수는 이곳만의 별미입니다. 여기에 포구의 어시장에서 팔리는 문어, 소라, 낙지 등을 즉석해서 썰거나 어패류를 담은 빨간색 다라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치 않습니다.

당진 한진포구 어시장 풍경.
▲ 당진 한진포구 어시장 풍경.

한진포구에서 출하되는 박하지. 여수 등으로 팔려나간다.
▲ 한진포구에서 출하되는 박하지. 여수 등으로 팔려나간다.

한진포구 풍경은 심훈의 소설에서도 정겹게 등장합니다. 소설 속 주인공 박동혁과 채영신의 동지적 사랑이 농촌계몽운동으로 열매를 맺은 ‘한곡리’는 어촌마을인 ‘한진리’와 농촌마을인 ‘부곡리’에서 한자씩을 따와 지은 것이라 합니다.

소설 속 영신이 조그만 발동선을 타고 온 ‘큰덕미’는 실제 지명을 그대로 사용했는데 영신이 한곡리를 떠나 사흘 만에 보낸 편지에서 “큰덕미 나루터의 커다란 바윗덩이와 같이 변함이 없으실 당신의 사랑을 얻고…” 라며 동혁에 대한 존경이 사랑으로 옮겨갔음을 고백합니다.

당진 필경사의 상록수 주인공 박동혁과 채영신.
▲ 당진 필경사의 상록수 주인공 박동혁과 채영신.

그런데 큰덕미는 포구가 아니라 작은 동산으로 1998년 67만 평의 고대공단이 들어서고, 인근 염전이 있었던 곳은 2000년 94만평의 부곡공단이 입주해 지금은 상전벽해를 이뤘습니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제철 먹거리도 상록수에 등장하는데 “새우를 잡아 말리고, 준치나 숭어 잡는 철”이라지만 앞서 밝히듯 이들 생선이 자취를 감춘 지 오래고 봄철 숭어만 조금 잡힌다고 합니다. 대신 사철 우럭과 놀래미, 주꾸미, 갑오징어를 잡으려는 낚싯배들로 북적입니다.

당진 한진포구는 예전의 준치와 숭어보다는 우럭이 사철 잡히고 있다.
▲ 당진 한진포구는 예전의 준치와 숭어보다는 우럭이 사철 잡히고 있다.

한진포구를 찾았다면 인근 ‘필경사’는 필수 코스입니다. 우리 문학의 대표작을 생산한 필경사가 지척인데 찾지 않았다가는 나중에 두고두고 서운할지 모릅니다. 필경사는 상록수 작가 심훈이 1932년 당진 부곡리로 내려와 직접 설계해 지은 집입니다. 겨울바다의 알싸한 허전함을 우리 문학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필경사에 메우는 것은 어떨까요?

당진 필경사 전경.
▲ 당진 필경사 전경.

당진 심훈 문학기념관 전경.
▲ 당진 심훈기념관 전경.
 

장군바라기님의 다른 기사 보기

[장군바라기님의 SNS]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