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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의 외침이 백마강에 울렸다

충남기행-부여 신동엽문학관

2021.11.05(금) 13:28:40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scottju@korea.kr
               	scottju@korea.kr)

신동엽 시인 가옥터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있는 시인 신동엽이 살았던 집의 터. 국가등록문화재 제339호이며, 이 자리에 있던 가옥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결혼한 뒤에도 살았다.

신동엽 시인 가옥터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위치한 신동엽 시인이 살았던 집터. 국가등록문화재 제339호이며,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결혼한 후에도 살았다.



정갈한 시인의 방과 유품 보존돼
문학적 고뇌 엿보이는 육필 원고
소박함 추구한 시인의 숨결 간직해
백마강 건너 문화 창작 공간 자온길

 
삼국시대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였던 부여 땅을 밟았다.

바람결이 시원스레 머릿결을 쓰다듬고 하늘이 높고 맑은 만추의 가을날. 발걸음이 향한 곳은 신동엽문학관이었다. 국어 교과서에 실려 이미 유명해졌고 수능 모의고사에도 자주 출제된 시 ‘껍데기는 가라’의 주인인 바로 신동엽 시인의 문학관이다.

문학관 앞에 서니 생가를 보수한 가옥 터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시인의 방은 특별함보다 정갈하고 소박한 문인의 방 그대로였다. 문학관 내부에 전시한 시인의 유품은 보존상태가 좋았다. 이게 다 부인 인병선 씨의 전적인 기부 덕분이었다고 한다. 몇 번이나 고쳐 쓴 신동엽의 육필 원고를 보니 좋은 시를 쓰기 위한 시인의 고뇌가 선하게 다가왔다.

신동엽 시인의 친필 시 ‘곡(哭)’

▲ 신동엽 시인의 친필 시 ‘곡(哭)’


바로 옆 풀씨 갤러리에서 바라본 신동엽문학관 전경

▲ 바로 옆 풀씨 갤러리에서 바라본 신동엽문학관 전경


신동엽은 1959년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문단에 나왔다. 이후 ‘껍데기는 가라’, ‘금강’,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등으로 민족문제와 역사의식을 일깨우는 시를 발표하며 민중시가 정착하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한 시인이다. 민주화를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을 위로할 때 신동엽 시인의 시를 낭송하는 게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만 39세에 요절한 그가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다.

중정 같은 내부 옥상을 보니 문학관 건축양식이 예사롭지 않다. 특이한 건축미를 자랑하는 건물을 누가 지었나 했더니 승효상 건축가였다. 승효상은 2019년 오스트리아 학술예술 1급 십자훈장과 2020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은 유명한 건축가로, 공주 전통불교문화원도 그의 작품이다.

방향을 틀어 규암면 부여자온길로 향했다. 이곳은 번성한 옛날은 가고 빈집 빈 상가만 남은 백마강변 아름다운 마을 규암리에 작가들의 창작공간을 활성화한 ‘로컬 콘텐츠타운’이다.

오래전 마을의 작은 요정(料亭)이었다는 카페 ‘수월옥’에서 차를 마셨다. 금방이라도 부서져 내릴 거 같았지만 안으로 들어가니 보수한 흔적이 단단했고, 젊은 층의 인스타그램 명소로 나름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책방 세간’은 옛날 담뱃가게를 리모델링해 책방과 카페를 함께 운영하고 있으며 역시 인스타그램 명소였다. 강 쪽은 123사비 전망대와 아트큐브, 창작센터 등이 들어설 ‘공예마을 규암’을 조성 중이다.

거리 곳곳에 새 단장에 열심인 가게들이 보였다. 작가들이 모여 한땀 한땀 정성을 들인 부여자온길이 완성되면 부여는 백제 유산 말고도 젊은 층의 눈길을 사로잡는 새로운 볼거리가 풍성해지겠다.
/노준희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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