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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선비의 정신을 깊히 느낄수 있는 예산 추사고택

2021.10.11(월) 10:44:25 | 임데라스 (이메일주소:limdelas@naver.com
               	limdelas@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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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하여 여행하기 좋은날씨에 예산에 있는 추사고택에 다녀왔습니다.  추사고택은 김정희 선생이 태어난  곳으로 1976년 1월8일에 유형문화재 제43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추사 김정희는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선비로서 추사를 수식하는 단어는 참 많습니다. 예술가지아 문장가이자 시인인 문인이며 우리나라 고증학의 시초로서 경학, 사학, 금석학, 지리 등에 매우 특출 났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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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고택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바로 넓은 잔디밭인데 이곳에는 김정희와 첫째부인 한산 이씨, 둘째부인 예안 이씨 세 분이 함께 묻힌 합장묘가 있습니다.
유배지에서 돌아온 김정희는 아버지 무덤이 있는 경기도 과천에서 학문과 예술에 몰두하다가 71세에 생을 마치게 되었는데 죽기 전까지 글씨 쓰기를 계속했으며 봉은사 판전을 쓴것이 죽기 사흘 전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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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를 중심으로 넓게 펼쳐진 잔디밭이 펼쳐저 있는데 이곳 옆에는 소나무밭도 함께 있는데 소나무아래에서 잠시 쉴수 있도록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어 피크닉 장소로 사용되도 좋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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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추사고택을 비롯해 추사기념관, 앞에서 설명한 추사묘, 추사체험관, 예산 용궁리 백송 등이 모여 있는데 한마디로 추사 김정희의 유적지라고 해도 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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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기념관에는 추사의 생애와 업적, 그리고 후세에 남긴 작품과 그의 위상을 느낄수 있는 것이 있는데 제가 방문한 날에는 수리중이라 내부는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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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고택의 입구입니다.
이곳 고택은 추사의 증조부이며 영조대황의 부마이신 월성위 감한신께서 1700년대 중반에 건립한 53칸 규모의 양반 대갓집으로 추사 선생이 태어나서 성장한 곳이라고 합니다.

53칸 규모의 고택은 당시 충청도 53개 군현에서 한 칸씩 건립 비용을 분담하여 지었다고 합니다. 1976년 그중 일부만 복원해 현재 고택의 모습을 갖추었으며 월성위궁은 서울의 저택으로 김정희가 관직 활동을 할때 주로 지냈던 곳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예산은 조상의 터전이 있는 곳이라 추사는 성묘와 독서를 위해 자주 왕래하며 이곳에 머물렀던 곳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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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추사고택은  사랑채와 안채, 사당만 남아있으며 뒤로는 야트막한 산이 받쳐주고 앞으로는 넒은 예산평야와 그 평야를 가로지르는 물길이 나있는 배산임수의 전형적인 풍수지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뒷 산이 집을 보호해주고 햇빛이 잘 들어오는 양지바른 곳에 유치해 있으며 맨 먼저 대문을 들어서면 'ㄱ'자의사랑채가 나오고 그 뒤로는 'ㅁ'자 안채가 나오는 구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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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는 'ㄱ'자 남향집으로 온돌방이 남쪽에 한 칸, 동쪽에 두 칸 있으며 나머지는 대청과 마루로 되어 있습니다. 대청쪽으로 난 문은 모두 들어열개 문으로 위로 활짝 열수 있어 개방적이며 손님을 접대하고 문학적인 유희를 즐기는 곳인 사랑채의 특성이 잘 살아 있는 구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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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는 'ㅁ'자 모양으로 6칸 대청에 안방, 건너방, 부엌, 광(창고) 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6칸 대청은 흔치 않은 구조와 규모의 마루이며 대청 대들보에는 추사가 쓴 것으로 보이는 글씨가 붙어 있습니다. 여성들의 생활공간인 안채는 밖에서 바로 들여다 보이지 않는 구조의 'ㅁ'자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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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들보마다 추사의 글씨가 걸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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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것은 안채에 있는 부엌은 난방용으로만 쓰이고 요리를 위한 부엌은 따로 두었다고 하는데 이는 왕실 주택구조로서 왕실 사람인 화순옹주가 살았던 곳이기 때문이라고 하며 아궁이 위쪽에는 다락이 있습니다.
화순옹주는 남편김한신이 죽자 곡기를 끊어 14일 만에 남편의 뒤를 따랐다고 하며 이를 통하여 사람들은 화순옹주의 지조와 절개를 칭송했고 조선시대 왕실에서 나온 유일한 열녀가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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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의 대청마루에서 보이는 뒷편의 풍경이 아늑하고 평온한 느낌이 드는 공간이었습니다.
안채 뒷편에는 영당이 자리잡고 있는 데 김정희의 초상을 모셔준 영당으로 김정희가 세상을 떠난 뒤 아들 김상무가 세운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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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에는 추사작품중 빼놓을수 없는 세한도가 걸려있습니다.  세한도는 조선 헌종때 제주도에 유배 중이었던 추사가 그린 그림으로 국보 제180호로 지정되어있으며 자신의 처지를 표현한 그림이라고 하며, 세한도의 진품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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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 옆에는 돌담과 작은문이 있는데 이곳으로 나가면 우물과 김저희묘소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특히 우물은 가문 대대로 이용해온 우물이라고 하는데 우물에는 추사김정희와 과련된 일화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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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우물에 대한 이야기는 민규호가 쓴 "완당김공소전"에 따르면 어머니 유씨가 임신한 지 24개월만에 김정희를 낳았다고 하며 그 무렵 우물물이 갑자기 마르고 뒷산에 있는 나무들이 시들었다가 김정희가 태어나자 우물물이 다시 샘솟고 나무들이 생기를 되찾았다고 전해내려오로고 있습니다.

추사 고택은 학문을 사랑한 선비의 집으로 선비의 소탈하고 정갈한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곳입니다. 왕실의 옹주와 명성 높은 사대부가 살았던 곳임에도 화려하거나 권위적인 모습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고 고택에서 느껴지는 자연스러움과 고풍스러움, 그리고 소박함까지 잘 느껴지는 고택이었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선비 중의 선비이자 예술가, 문인이었던 추사 김정희의 성품을 마치 들여다 보는 듯한 추사 고택여행을 가을여행지로 추천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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