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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홍성 성삼문(成三問) 유허지

성삼문 유허지에서 만나는 그의 충정

2021.08.18(수) 21:43:44 | 이병헌 (이메일주소:ichmount@naver.com
               	ichmount@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성산문유허지 ▲ 성삼문유허지

홍성에는 역사인물을 많이 배출했다. 만해 한용운, 최영 장군, 김좌진 장군 그리고 사육신 성삼문 등이 있다. 홍성군에서는 이들을 기리기 위하여 역사문화축제를 거행하기도 한다. 홍성읍의 홍주성 밖에 가면, 이 네 명의 흉상이 있어 지나가면서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홍주읍성 성산문 흉상
▲ 홍주읍성 성산문 흉상 

사육신(死六臣)은 조선 세조 2년(1456)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발각되어 처형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그리고 유응부 등 여섯 명을 말한다.

무궁화길
▲ 무궁화길

예산에서 홍성 쪽으로 가다 보면 도로변에 이정표가 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옆에는 무궁화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무궁화꽃을 피워서 보기에도 참 좋다. 이곳은 평화로운 농촌마을로 풍경 그 자체로도 아름답다.

성산문유허지 마을
▲ 성산문유허지 마을

마을 입구에서 자동차로 5분 정도 가면 오른쪽으로 성삼문 아버지인 성승 장군 부부의 합장묘가 있다. 그는 세종조 무과에 급제하여 의주목사와 종지동지원사를 거쳐 도총관에 이르렀다. 아들 삼문등과 단종 복위를 꾀하던 중 김질의 밀고로 발각되어 모의하던 이들과 함께 붙잡혀 능지처참을 당했다. 좀 더 마을쪽으로 가면 성산문 처의 묘가 있다.

성산문부모묘
▲ 성산문부모묘

이곳에서 5분 정도 더 올라가면 성삼문유허지가 있다. 이곳은 성삼문 선생의 외가가 있던 곳으로 그가 태어난 집터이다. 노은골에서 출생할 때 하늘에서 “낳았느냐” 하고 묻는 소리가 3번 들려서 삼문(三問)이라 이름 지었다는 일화가 있다.

성산문유허비
▲ 성삼문유허비

1435년(세종 17) 생원시에 합격하고, 1438년에 식년시에 응시, 급제하였다. 집현전학사로 뽑힌 뒤 세종의 명으로 훈민정음을 만들 때 신숙주와 함께 당시 요동에 귀양 와 있던 명나라의 한림학사 황찬에게 열 세 차례나 오가면서 정확한 음운을 배웠고 명나라 사신을 따라가서 음운과 교장(敎場)의 제도를 연구해오는 등 1446년 훈민정음 반포에 큰 공헌을 했다.

훈민정음 세종대왕 서문(문화재청)
▲ 훈민정음 세종대왕 서문(문화재청) 

성삼문은 세종대왕을 도와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하였고, 단종 복위 운동을 추진하였다. 1450년 어린 세손을 부탁한다는 세종의 유지를 받들다가 세조 찬위 이후 단종 복위 운동을 주관하였으나, 신숙주, 정인지 등이 세조의 편에 서고 김질 등이 밀고함으로써 실패하고 만다.

성산문유허지
▲ 성산문유허지 사당    

유허지에는 사당이 있고 언덕에 묘가 있다. 마을 아래 길옆에는 유허비가 있는데 성삼문 선생의 유허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있다. 선생은 현재의 홍북면 노은리에서 태어났고 선생을 비롯한 육신의 절사를 기린 후 유허비가 세워지는 과정을 설명하였다.
 
사당
▲ 사당

유허비는 1668년 민유중이 홍주관찰사로 왔다가 선생이 살았던 유허를 돌아본 후 선생을 추모하고자 비석을 세우고자 하였고, 이에 송시열이 글을 짓게 되었다고 기록되어있다.

유허지 근처에 피어난 칡꽃
▲ 유허지 근처에 피어난 칡꽃

1691년(숙종 17)에 관직이 회복되었으며, 1758년(영조 34)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충문(忠文)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숙종 2년(1676)에 이량과 호서의 유림 등이 선생의 옛 집 근처에 사당을 세우고 사육신을 같이 모실 것을 청하자, 나라에서 녹운서원이라 하였고, 뒤에 노은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폐되었고, 후에 유생들이 사육신의 위패를 모시고 노은단이라고 하고 제사를 지냈다.(홍성군청 홈페이지 참조)

단심가
▲ 단심가 시조

1456년 성삼문이 극형을 당하여 찢긴 육신이 팔도에 조리돌려질 때 한 지체(肢體)가 고개를 넘게 되었는데 운반하던 사람이 귀찮은 생각에 독설을 하자 "아무데나 묻어라" 하는 소리가 들려 지금의 자리에 묻었다는 전설이 있다. 묘는 논산시 가야곡면 도로변에 있는데 묘의 둘레는 30m, 지름은 13m로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81호로 지정되었다.

성산문 묘로 오르는 길
▲ 성산문 묘로 오르는 길   

성산문유허지
주소 : 충남 홍성군 홍북면 노은리
홍성군청홈페이지 : http://tour.hongseong.go.kr/mai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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